여권에서도 나오는 '견문발검'비판…노무현정부 군 인사 비리 파동과 데자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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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오산공군기지에 도착한 미군 수송기에서 사드 장비가 내려오고 있다. 일부는 성주에 배치됐다. [ 중앙포토]

지난 3월 오산공군기지에 도착한 미군 수송기에서 사드 장비가 내려오고 있다. 일부는 성주에 배치됐다. [ 중앙포토]

‘사드(THAADㆍ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추가반입 보고 누락’ 이 위승호 국방부 정책실장의 육군 전보 조치로 일단락됐다.
야권에선 "태산명동서일필"이란 비판이 나왔고, 여권에서도 “큰 일이 난 것 처럼 하더니 본전도 못 건졌다”는 반응이 나왔다.
사드 배치의 환경영향평가 조사를 제대로 실시하도록 하는 성과는 물론 있었다. 하지만 청와대가 전했던 내부의 '격노' 분위기에 비해선 미미한 결과라는 것이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견문발검(見蚊拔劍·모기를 보고 칼을 뺀다는 뜻)에 비유했다. 그는 “환경영향평가 조사가 미비했다는 건 이미 알려진 사실”이라며 “군 개혁의 절호의 기회였는데 이럴 거면 차라리 칼집에서 칼을 빼지 않는 편이 나았을 것 같다”고 말했다.

6일 오전 서울시 동작구 동작동 국립현충원에서 열린 제62회 현충일 추념식에 참석한 문재인대통령이 한민구 국방장관 앞을 지나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6일 오전 서울시 동작구 동작동 국립현충원에서 열린 제62회 현충일 추념식에 참석한 문재인대통령이 한민구 국방장관 앞을 지나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보고 누락 파문은 당초 대대적인 군 ‘물갈이’ 작업의 신호탄으로 해석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매우 충격적”이라고 말하고, 청와대가 이 발언을 공개한 만큼 파장이 만만치 않았다. 여당에서는 ‘알자회’ 등 군 내 사조직을 공개 거론하며 비판하는 등 보조를 맞췄다. 하지만 청와대의 고강도 조사 결과 ‘배후’로 지목됐던 김관진 전 청와대 안보실장과 한민구 국방부장관은 관여하지 않은 것으로 결론났다.

김관진 전 청와대 안보실장.

김관진 전 청와대 안보실장.

일각에서는 ‘보고 누락→군 지휘부 문책 압박’의 구도를 들어 '노무현 정부와의 데자뷔(Deja-vu)'를 염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의원은 “노무현 정부 당시 청와대와 남재준 당시 육군참모총장의 갈등이 재연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노무현 정부는 임기 초 국방백서에서 ‘주적(主敵)’ 표현을 삭제하고, 군 복무 기간 단축 등을 추진하며 군 지휘부와 마찰을 빚었다. 2004년 7월엔 북한 경비정의 북방한계선(NLL) 침범 보고 누락사건이 벌어졌고, 청와대는 '기강 해이를 넘어선 항명'으로 인식해 고강도 조사를 지시했다.

자이툰 부대를 방문하고 귀국하는 남재준 전 육군참모총장 [연합뉴스]

자이툰 부대를 방문하고 귀국하는 남재준 전 육군참모총장 [연합뉴스]

뒤이어 4개월 후 군 장성 인사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가 시작되면서 군이 발칵 뒤집혔다. 2004년 11월 국방부 앞엔 그해 10월 있었던 준장 진급 심사를 비난하는 괴문서가 뿌려졌고, 오후에 군 검찰단이 육군본부를 압수수색했다. 전례가 없을 정도로 전광석화 같은 속도로 진행돼 큰 주목을 받았다.

2004년 충남 계룡시 계룡대 연병장에서 열린 육군참모총장 이·취임식. 남재준 전임 총장(右)과 김장수 신임 총장(中)이 육군 기수단을 사열하고 있다. [연합뉴스]

2004년 충남 계룡시 계룡대 연병장에서 열린 육군참모총장 이·취임식. 남재준 전임 총장(右)과 김장수 신임 총장(中)이 육군 기수단을 사열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사건으로 남재준 당시 육군 참모총장이 전역지원서를 제출하는 등 큰 파장이 일었다. 군 검찰에서는 소위 ‘남재준 라인’이 인사에 개입됐다는 혐의를 집중 조사했지만 결국 증거를 찾지 못한 채 흐지부지 됐다. 청와대는 남 전 총장의 전역지원서를 반려했고, 그는 이듬해 5월 임기를 마치고 퇴임했다. 하지만 대대적인 수사에도 불구하고 ‘용두사미’로 마무리 되면서 비판이 일었다. 애초에 신빙성이 떨어지는 ‘괴문서’를 근거로 무리하게 압수수색까지 벌였다는 이유였다. 이후 남 전 총장은 노무현 정부의 각종 국방 정책을 앞장서 비판했고, 군 개혁도 속도를 내지 못했다.

국회 국방위에 출석해 군 인사비리 투서 파동과 관련해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을 준비하는 윤광웅 전 국방부장관

국회 국방위에 출석해 군 인사비리 투서 파동과 관련해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을 준비하는 윤광웅 전 국방부장관

남 전 총장은 이후 언론 인터뷰에서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실 주도로 내 주변을 샅샅이 조사했다. 군 검찰단이 민정수석실로 매일 보고서를 올렸다"고 회고했다. 한 예비역 장성은 "당시 일련의 사건 때문에 문 대통령에겐 군에 대한 근본적 불신이 있을 것"이라며 ”최고 통수권자인 대통령과 군 지휘부의 갈등이 장기간 지속되면 전방 지휘부관들이 동요하며 정치권의 눈치를 보게 된다“고 우려했다.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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