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격 지명 전효숙 헌재재판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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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법부 역사상 첫 여성 헌법재판소 재판관에 지명된 전효숙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사기사건 재판 중 그 소식을 들었다. 재판이 끝난 뒤 만난 그는 평소 말수 적고 침착한 분위기와 달리 상기된 표정이었다.

"개인적으로 영광이지요. 소임이 맡겨지면 충실히 하도록 노력할 겁니다."

그의 파격적 발탁은 여성법관 선두주자라는 점뿐 아니라 '탁월한 법해석 능력을 가진 실무형 법관'이라는 주변 평가와도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그는 이영애(李玲愛.사시 13회).전수안(田秀安.사시 18회) 부장판사와 함께 서울고법 '여성 부장 트로이카'중 한 사람이다.

논문도 여러 편 발표했고, 특히 특허 관련 분야에 조예가 깊은 특허 전문가다. 1999년 전문성을 인정받아 이영애 부장판사에 이어 두번째로 차관급인 특허법원 부장판사에 임명됐다.

지난 2월엔 고등법원 첫 여성 형사부장으로 임명돼 김대중(金大中)전 대통령의 3남 홍걸(弘傑)씨 재판 등 굵은 사건을 맡아왔다. 지난 1일 대법관.헌법재판관 시민추천위원회로부터 김영란(金英蘭) 부장판사와 함께 대법관 후보로 추천됐던 주인공.

'수사과정에서 가혹행위가 없었더라도 무리한 구속수사로 인해 피해를 보았다면 국가가 이를 배상해야 한다'(97년 7월 서울지법 부장판사)

'제일은행장과 임원은 부실 경영으로 손해를 입은 소액주주들에게 4백억원을 배상하라'(98년)

그가 내린 주요 판결이다. 특히 소액주주들의 권익을 보호해 주는 첫 승소 사례를 그는 남겼다.

"절차의 공정성이나 판결의 내용이 치우침이 없다며 내 판결을 인정해 줄 때가 가장 기쁘지요."

최근 한 성폭력범을 재판하면서 40분의 긴 최후진술을 끝까지 들어준 일화도 있다.

민사.형사.가정법원 판사와 대법원 재판연구관 등 다양한 직책을 거쳤지만 그는 개인적으로 "사법연수원 교수시절이 정말 좋았다"고 한다. 서울지법에 근무할 때 여성관계법 연구회장직을 맡아 후배 여판사들을 독려하기도 했다.

휴일에 가끔 테니스를 함께 치는 그의 남편은 서울고법 이태운(李太云.55.사시 16회) 부장판사. 사상 첫 고법 부장판사 부부다. 자녀(1남1녀)는 둘 다 대학생.

"남편에게서 축하를 받았느냐"는 질문에 그는 "항상 서로를 격려하니 특별히 격려가 필요없지 않으냐"며 웃었다.

서울고법의 한 부장판사는 全지명자를 한마디로 평가해 달라는 기자의 주문에 "한눈 팔지 않고 외길로만 가는 진짜 판사"라고 말했다. "여성 특유의 섬세함으로 사건 처리가 꼼꼼하고 '판사는 판결로만 말한다'는 원칙을 그대로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좋은 점수를 줬다.

전남 승주 출신으로 순천여고와 이화여대를 졸업한 그는 노무현(盧武鉉)대통령과 사법시험 17회 동기생이다. 그가 헌법재판관이 되면 고시 11회~사시 10회인 현재의 재판관(9명) 기수 구성은 확 낮아진다.

김현경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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