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만의 참회 편지, 택시비 6만원 마음에 걸려 10배로 기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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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 남성이 강릉경찰서에 보낸 편지. [사진 강릉경찰서]

60대 남성이 강릉경찰서에 보낸 편지. [사진 강릉경찰서]

35년 전 6만원의 택시비를 내지 못해 양심의 가책을 짊어지고 살아온 한 남성이 택시비의 10배인 60만원을 기부했다.
1일 강릉경찰서에 따르면 지난달 25일 강릉경찰서장 앞으로 한 통의 편지가 배달됐다. 보내는 사람에 ‘영월’이라고만 쓰여 있는 봉투 안에는 한 통의 편지와 함께 5만원권 12장이 들어있었다. 편지엔 60만원을 경찰서로 보낸 사연이 자세히 쓰여 있었다.
편지는 “35년 전 나는 학생이었다. 지금은 60이 되었고 그때는 아르바이트하며 춘천에서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는 내용으로 시작됐다.

영월 거주 추정 60대 남성 편지 속에 60만원 담에 강릉경찰서에 보내 #경찰 범죄 피해로 봉합 수술받은 70대 택시 기사 돕는데 기부금 쓰기로

이 남성은 편지에 “갑자기 한 친구가 찾아와 강릉에 놀러 가자는 제안을 해 다음 날 친구 둘, 모르는 아저씨 둘과 함께 총 다섯이서 강릉에서 밥도 먹고, 구경도 하며 하루를 보냈다. 아저씨들이 비용을 모두 계산했지만 해가 저물면서 돈도 없고 마음은 불안해지고 자꾸 조바심이 났다. 아저씨 한 명이 술에 취해 일어서지 못하자 아저씨들을 내버려 둔 채 도망쳐 나왔다”고 적었다.

이어 “하지만 그제야 돈도 없고 낯선 곳에서 깜깜한 밤을 보내야 한다는 현실이 느껴졌다. 파출소에 가자고 했으나 한 친구가 “내가 알아서 할게” 하더니 택시를 세웠다. 친구는 “춘천에 가면 돈이 있다”고 말했지만, 춘천에 도착하자 돈을 빌릴 곳이 없다는 사실을 털어놨다. 결국 다음에 택시비를 보내드리기로 하고 택시를 돌려보냈다. 알아서 하겠다더니 사기를 친 친구 탓에 졸지에 6만원을 떼어먹은 공범이 돼 가슴에 미안하고 죄송한 맘을 묻고 세월을 보냈다”고 털어놨다.

이 남성은 또 “아는 것이라곤 당시 택시 기사가 중년남성으로 ‘최 씨’ 성을 가졌다는 것뿐이다. 문득문득 6만원을 벌려고 밤새 강릉에서 춘천까지 오셨던 기사님을 마음에서 지울 수가 없다”면서 “죽기 전에 짐을 덜고 싶고, 기사님이 어찌 살고 계시는지 궁금하지만 이제 찾을 수도 없어 좋은 일에 써주기를 부탁한다”고 끝맺었다

경찰은 보낸 사람을 수소문했으나 끝내 찾지 못했다. 보내온 돈은 고심 끝에 최근 폭행을 당해 봉합 수술을 받은 범죄피해자 한모(71·택시 기사)씨를 돕는데 쓰기로 했다.
경찰 관계자는 “사연을 보낸 남성도 자신이 기부한 돈이 가정형편이 어려운 범죄피해자에게 전달된 사실을 알면 기뻐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릉=박진호 기자 park.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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