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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떠난 세월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533호 29면

삶과 믿음 

붓다의 경전에 ‘숫타니파다’가 있다. 읽기는 쉬워도 한편으론 깊은 의미를 지닌 책이라서 일반인들이 접근하기엔 그리 녹록하지 않다. 그 경전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칠흑 같은 욕망의 어둠 속에 헤매는 사람들이여, 한 생각 돌리면 그 즉시 욕망의 덫에서 벗어날 수 있다.”

과연 ‘한 생각’을 쉽게 돌릴 수 있는 건가. 수많은 수행자가 한 생각에 어떻게 머물까 하는 수행이 초기 부처의 설법 ‘팔정도’라는 말을 들었다.

사람의 삶은 어떻게 보면 ‘끝없이 밤낮을 달려가는 기차’와 같다. 그 가운에 만나는 행복한 계절도 있고 쓸쓸한 간이역도 있다. 또는 연분홍 꽃도 만나고 깊은 밤 열차에 기대어 차창에 들리는 여우 울음소리를 만날 수도 있다. 다만 그것을 보면서 또는 꽃향기의 냄새를 맡으며 길을 지나거나 떠나간다.

그 가운에 가장 어려운 것이 종착역이다. 종착역은 바로 죽음이다. 예쁘고 싱싱한 꽃이 강물에 흘러갈 때 우리는 이를 낭만이라고 한다. 그러나 젊은 사람이 긴 여행도 아니고 짧은 여행에서 종착역에 도착한다는 것은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당황스러움일 뿐이다.

‘세월호 사건’이 발생한 지 3년이 흘렀다. 그리고 선체(船體)가 건져지고 그날 배에서 나오지 못한 아이들과 끝까지 함께한 선생님의 유해도 찾았다는 뉴스가 나왔다. 그는 우리 종립대학을 졸업한 고창석 선생이다. 그가 자랑스러운 체육 교사가 되어 단원고 학생들을 만났을 때 얼마나 기쁘고 설레었을까.

수학여행차 제자들과 아름다운 추억의 봄 여행을 가다 배가 갑자기 기울어 젊은 학생들과 함께 세상을 마감했다. 그 소식을 접한 학교법당에서는 그의 영혼을 위로하는 의식을 거행했고 안타까운 마음을 감내하면서 법문을 나누었다.

3년. 어쩌면 그렇게 빨리 또는 느리게 흘러간 세월인지도 모르겠다. 그는 참으로 의인(義人)이다. 적어도 자기가 해야 할 일 그리고 책임감을 다했다. 끝까지 남아 이생을 마감하는 안타까움을 우리는 알게 되었다.

법회에 참석한 그날 나는 “종교인들은 과연 무엇인가” 하고 내 자신을 되돌아 봤다. 종교인들은 삶과 죽음의 전공자들이다. 그렇다면 그의 영혼을 어떻게 위로 할 것인가가 가장 우선이었다. 황망한 일에 대한 무심도 아니고 또 위로가 되지 않는다면 나는 수행자도 아닌 헛공부의 그림자일 뿐이다.

위로의 법회를 마치고 사무실에 와서 조용히 법문을 펼쳤다. 소태산 대종사는 이렇게 말씀하시고 계셨다. “이 생에 얽힌 권속의 애정으로 인하여 몸이 죽는 날에 영(靈)이 멀리 뜨지 못하고 도로 자기 집 울안에 떨어져서 사람 만날 기회가 없으면 태어나기 힘드나니 그러므로 예부터 부처님과 조사가 다 집착 없이 가며 집착 없이 행동하라 권장하신 것은 능히 악도를 면하기 위한 방편임이라” 이렇게 말씀하셨다.

젊은 청년의 죽음 앞에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삶이란 한 줄기의 흰 구름 일세. 향기 나는 꽃도 어느 날 우박이 내리면 뜻 없이 꺾이고 마는 것처럼 그대 모든 삶이 무상하니 그것을 알고 마음을 푸소서.

생이란 한편의 뜬구름이요(生也一片浮雲氣), 죽음이란 한편의 구름이 흔적 없이 사라짐이라(死也 一片浮雲滅).

정은광 교무
원광대 박물관 학예사.
미학을 전공했으며 수행과 선그림(禪畵)에 관심이 많다.
저서로 『그대가 오는 풍경』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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