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참에 국민이 납득할 인사청문회 세부 기준 마련해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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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3호 02면

사설

문재인 정부의 첫 내각 출범이 일부 후보자의 위장전입 문제로 삐걱대고 있다. 이낙연 국무총리·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에 이어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의 두 차례 위장전입 의혹이 불거지고 있어서다.

새 정부의 첫 인사청문 대상 후보자 6명 중 3명이 위장전입으로 실정법을 위반한 게 드러난 현실을 보는 우리는 실망과 함께 서글픔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적폐 청산, 특권과 반칙 없는 사회를 표방하고 출범한 정부이기에 어느 때보다 높은 도덕성을 갖춘 능력 있는 인사의 발탁에 기대를 걸었던 때문이다. 동시에 진보·보수를 떠나 지도적 위치에 있는 인사들의 준법 정신과 도덕적 해이가 얼마나 심각한지, 그 민낯을 또 한 번 목격하게 된 데 대해 참담함마저 느끼게 한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고 강조하면서 병역 면탈, 부동산 투기, 세금 탈루, 위장전입, 논문 표절 등 5가지 비리와 관련 있는 사람은 고위 공직자로 임명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밝히며 투명한 사회를 강조했다. 그랬던 새 정부가 조각(組閣) 인선에서부터 위장전입이란 암초에 부닥쳐 난기류에 휩싸이고 있는 작금의 상황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내각 인선을 마무리해 국정 공백을 메우고 개혁 과제를 추진해 나가야 할 새 정부가 자칫 골든타임을 놓쳐 국정 개혁에 차질을 빚지 않을까 우려된다.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이 그제 “인사가 국민 눈높이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에 대해 국민 여러분에게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부랴부랴 인사원칙 위반 논란 진화에 나선 것도 이런 사태의 심각성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임 실장은 그러나 “빵 한 조각, 닭 한 마리에 얽힌 사연이 다르듯이 관련 사실에 관한 내용을 들여다보면 아주 다르다”며 “후보자가 가지고 있는 자질과 능력이 관련 사실이 주는 사회적 상실감에 비춰 현저히 크다고 판단되면 관련 사실의 공개와 함께 인사를 진행 중”이라고도 했다. 같은 위장전입이라도 부동산 투기 목적이 아니고 자녀들의 진학과 배우자의 취업을 위한 것이라면 양해할 수 있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여기에 호응이라도 하듯 어제는 “과거 부동산 투기 목적의 위장전입은 국민적 반감이 많았던 게 사실이지만 이 후보자의 경우는 그렇게 민감하게 대처할 문제는 아니다”라는 논평이 더불어민주당(강훈식 원내대변인)에서 나왔다. 강 원내대변인은 또 “야당이 소모적인 논쟁으로 이번 건을 포장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보여준 야당과의 협치·상생 의지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라며 공격성 발언을 쏟아내기도 했다.

하지만 투기성 위장전입이 아니라 하더라도 이렇게 어물쩍 넘어갈 일은 아니다. 여론을 볼모로 한 여야의 정치 공방으로 몰아갈 일은 더더욱 아니다. 문재인 정권으로의 교체는 지난 수개월에 걸친 촛불시민들의 고뇌에 찬 투쟁의 산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촛불시민들의 염원은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하는 사회, 법치에 따른 투명하고 정의로운 사회, 다양성이 존중되는 평화로운 사회가 아니었던가. 그런 만큼 새로운 시대의 개막에 맞춰 인사청문회의 기준과 잣대도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

문제가 된 위장전입 역시 의도성·반복성 등을 따져 국민의 공감대를 얻을 수 있는 세부적 기준을 세워야 할 때다. 투기 목적이 아니라는 이유로 슬쩍 덮고 가자는 발상은 자칫 법을 안 지켜도 자질이 있으면 된다는 뜻으로 국민들의 무의식 속에 자리 잡을 수도 있다.

2000년 인사청문회 제도가 도입된 이래 정치권은 공직 후보자의 검증 기준을 놓고 정치 공방을 되풀이해왔다. 같은 위법 사안을 놓고도 여야가 뒤바뀔 때마다 공수를 교대해가며 서로 다른 잣대와 기준을 들이댔다. 능력과 자질에 대한 검증 대신 인신 공격과 신상털기식 정치 공세의 장으로 변질되면서 청문회의 품격을 떨어뜨리고 국력을 낭비하는 일이 반복됐다.

이제 이런 소모적 인사 청문회와 결별해야 한다. 여야는 이번 위장전입 사안을 계기로 국민적 관점에서 용인될 수 있는 흠결과 그렇지 못한 사안을 엄격히 가려내도록 정치적 합의를 도출하는 게 바람직하다. 마침 주호영 바른정당 원내대표는 “인사청문회 기준을 정하기 위한 소위원회를 구성해 바람직한 공직자 기준을 설정하자”고 제안했다. 이 제안을 받아들여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인사청문회의 세부 기준과 잣대를 마련하는 게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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