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세금 날리는 공연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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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이 같은 문화 소외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1지자체 1문예회관' 정책을 펴고 있다. 공연장을 포함한 문예회관을 지을 때 자치단체가 부지나 자체 예산을 확보할 경우 국비에서 20억원을 보조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90년대 중반부터 시.군.구마다 문예회관을 짓는 것이 붐을 이뤘고 현재 140개의 자치단체가 문예회관을 갖고 있다. 또 30개의 기초자치단체가 현재 건립 중이다. 대한민국은 '공연장 공화국'이라는 지적이 있을 만큼 문화의 향기가 스며들 수 있는 외형적인 기반은 어느 정도 갖춰졌다.

요즘 들어 전시장이나 체육시설 등은 주민들이 많이 이용한다. 그러나 공연장은 문을 닫는 날이 더 많다. 주부 합창대회나 유치원생 연극 발표 등을 합쳐도 문화행사 일수가 연간 열흘을 넘지 않는 곳이 수두룩하다. 공연이 열리는 날에도 1000석짜리 대형 공연장은 빈자리가 훨씬 많다.

강원도 화천문화예술회관의 경우 지난해 공연장 사용은 모두 91건. 이 가운데 연극 '춤추는 모자' 공연 등 11건만 문화예술과 관련된 것일 뿐 80건은 영농교육이나 신협 등 각종 단체의 행사였다. 다른 지역도 상황은 대동소이하다.

이 같은 문제점은 일단 공연장을 지어 놓고 보자는 데서 비롯된다. 상당수의 시장.군수들은 주민 세금 200억~300억원을 쏟아부어 자신의 재임기간 중에 번듯한 공연장을 완공하는 데에만 관심을 쏟고 있다. 그 속을 어떻게 채울지에 대해서는 별로 고민하지 않는다. 기획공연을 할 수 있는 예산을 배정하지 않는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 조명.음향 등의 전문가를 채용해야 하지만 이를 지키는 자치단체는 거의 없다.

춘천의 문화기획자 박동일씨는 이렇게 제안한다. "인접한 3, 4개 자치단체가 전문인력을 공동으로 활용하고 공연기획을 함께한다면 적은 인력과 예산으로도 지금보다 훨씬 공연장을 잘 운영할 수 있다."

이찬호 사회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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