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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펙트! 시공간 꿰뚫는 장인의 숨결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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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2호 08면

새 브로치(1924)

스페인 발레리나 클립(1941)

스페인 발레리나 클립(1941)

엔펠로프 베니티 케이스(1925)

엔펠로프 베니티 케이스(1925)

바루나 요트(1907). 반클리프 아펠 하이 주얼리 아카이브의 대표작이다.

바루나 요트(1907). 반클리프 아펠 하이 주얼리 아카이브의 대표작이다.

포도 나뭇잎 클립(1951)

포도 나뭇잎 클립(1951)

용 클립(1969)

용 클립(1969)

세 마리의 새 클립(1946)

세 마리의 새 클립(1946)

아르데코 브로치(1937)

아르데코 브로치(1937)

새장(1935)

새장(1935)

안도 로쿠잔이 상아조각으로 만든 ‘감’(20세기 초)

안도 로쿠잔이 상아조각으로 만든 ‘감’(20세기 초)

나미카와 야소유키가 칠보 에나멜로 만든 나비와 꽃 아라베스크 패턴의 항아리(19세기 말)

나미카와 야소유키가 칠보 에나멜로 만든 나비와 꽃 아라베스크 패턴의 항아리(19세기 말)

교토 경치를 담아낸 투각 항아리(19세기 말)

교토 경치를 담아낸 투각 항아리(19세기 말)

킨코잔 소베이의 나비와 꽃으로 장식된 그릇(19세기 말)

킨코잔 소베이의 나비와 꽃으로 장식된 그릇(19세기 말)

메종을 설립한 알프레드 반클리프와 에스텔 아펠의 결혼식 사진(1895)

메종을 설립한 알프레드 반클리프와 에스텔 아펠의 결혼식 사진(1895)

파리 방돔 광장에 문을 연 반클리프 아펠 최초의 부티크(1906)

파리 방돔 광장에 문을 연 반클리프 아펠 최초의 부티크(1906)

1906년 파리 방돔 광장 22번지에서 시작된 반클리프 아펠(Van Cleef & Arpels)은 하이 주얼리 메종의 종가(宗家)로 꼽힌다. 창의적인 디자인과 자신만의 정교한 기법으로 진귀한 보석을 더욱 빛나게 다듬어낸다. 이곳에서 최고의 솜씨를 발휘하는 보석 장인들을 ‘맹도르(Mains d’Or·황금손)’라 부른다. 111년 역사의 반클리프 아펠은 2011년부터 거의 매년 각국의 유명 뮤지엄을 순회하며 자신들의 헤리티지 컬렉션을 다양한 스타일로 선보이고 있는데, 올해 손을 잡은 곳은 일본 교토의 국립근대미술관이다.

반클리프 아펠의 하이 주얼리, 일본 전통 공예품을 만나다

일본의 옛 수도로서 전통 문화의 본고장인 교토는 완성도가 뛰어난 공예품으로도 이름이 높다. 특히 메이지 시대(1868~1912) 이후 서양과의 교류를 통해 스스로를 독립적인 예술가라고 생각하게 된 장인들이 등장해 공예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이같은 장인들의 섬세한 내공을 일본인들은 ‘초제츠기코(超絶技巧)’라 칭한다.

양국 장인들의 유서 깊은 숨결이 깃들어 있는 교토국립근대미술관 소장 공예품과 반클리프 아펠의 보석 330점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름하여 ‘마스터리 오브 아트(Mastery of an Art·4월 29일~8월 6일)’다. 일본어 전시 제목을 우리 말로 풀면 ‘궁극의 기술’ 정도가 된다. 고도로 숙련된 기술을 익힌 장인들이 예술의 경지에서 만들어낸 작품을 통해 동양과 서양, 근대와 현대, 전통과 미래를 느끼고 비교해볼 수 있는 자리다. ‘맹도르’와 ‘초제츠기코’가 일합을 겨루고 있는 그 곳에 중앙SUNDAY S매거진이 다녀왔다.


등나무와 공작을 수놓은 벽걸이 자수(1905), 작가 미상

등나무와 공작을 수놓은 벽걸이 자수(1905), 작가 미상

후지모토 소우 “인간의 문화가 만들어낸 궁극의 경험”

왼쪽부터 알반 벨루아 반클리프 아펠 일본 사장, 야나기하라 마사키 교토 국립근대미술관장, 마츠바라 류이치 교토 국립근대미술관 학예과장, 오디오 가이드를 녹음한 배우 마츠유키 야스코, 니콜라 보스 반클리프 아펠 회장, 건축가 후지모토 소우.

왼쪽부터 알반 벨루아 반클리프 아펠 일본 사장, 야나기하라 마사키 교토 국립근대미술관장, 마츠바라 류이치 교토 국립근대미술관 학예과장, 오디오 가이드를 녹음한 배우 마츠유키 야스코, 니콜라 보스 반클리프 아펠 회장, 건축가 후지모토 소우.

지난달 28일 오전 교토 국립근대미술관 3층. 이제 곧 전시 개막식이 열리고 150명이 넘는 국내외 기자들이 행사장을 점령할 터다. 개막식 직전, 전시 공간을 디자인한 건축가 후지모토 소우(藤本壯介·46)를 미리 만났다. 도쿄대 건축학과를 졸업한 그는 2012년 베니스 건축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은 일본관을 꾸민 주역이다. 2013년 런던 서펜타인 갤러리 여름 파빌리온을 디자인한 최연소 건축가이자 2016년 파리 도심 재창조 프로젝트에서 우승하는 등 요즘 세계 건축계에서 가장 핫한 인물 중 하나다. 건축가가 어떻게 보석-공예전 공간을 디자인하게 된 걸까.

“반클리프 아펠의 회장이자 수석 디자이너인 니콜라 보스와 몇년 전 도쿄에서 대담한 적이 있었다. 당시 건축과 주얼리의 여러 측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는데, 매우 흥미로워 했다. 그 때의 즐거웠던 기억을 되살려 불러준 것 같다.”

전시 공간 디자인은 어떤 컨셉트인가.
“공예와 주얼리의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하고 싶었다. 둘 다 크기가 작아서 넓은 공간에서 주목받게 하는게 중요했다. 심플·퓨어·클린을 내세운 이유다. 또 유럽의 전통과 일본의 전통을 접목하고 싶었다. 일본 공예의 순수함과 진정성, 완성도를 위해 타협이라고는 없는 반클리프 아펠의 장인 정신에 대한 리스펙트다.”
제2, 제3 전시장의 경우 키 큰 유리 진열대들이 나란히 겹겹으로 설치돼 있어 공간이 미로 같다.
“유리에 빛이 부딪치고 또 반사하는 것을 활용해 깊은 바닷속 같은 공간감을 연출했다. 관람객 자신의 모습이 유리에 비치는 데, 사람과 보석과 공예품이 하나되는 느낌을 주려고 했다. 2전시장은 진열대를 나란히, 3전시장은 불규칙하게 배치해 각각 정돈된 느낌과 역동적인 느낌이 나게 만들었다.”
전시하면서 작품들을 보니 어땠나.
“소재와 기능, 기법이 다 다르지만 궁극의 기술을 갈고 닦아 ‘작품’을 만드는 것은 일본과 프랑스가 놀랄만큼 비슷했다. 인간의 문화가 궁극에 도달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바로 그것을 보여주는 전시라 할 수 있다. 물고기나 나비 같은, 전세계 공통의 생물에 대한 표현이 절묘하게 다른 것을 보면서 궁극의 기술이 만들어 내는 다양한 감동에 전율했다.”  
반짝이 미노디에르(2006). 모리구치 쿠니히코의 유젠 염색 기모노 ‘스노우 댄스’(2016)

반짝이 미노디에르(2006). 모리구치 쿠니히코의 유젠 염색 기모노 ‘스노우 댄스’(2016)

반클리프 아펠의 하이 주얼리와 일본 전통 공예품의 만남 ‘마스터리 오브 아트(Mastery of an Art)’
4월 29일부터 8월 6일까지 일본 교토 국립근대미술관(www.momak.go.jp)
성인 1500엔(약 1만5000원), 월요일·6월 13일·7월 18일 휴관. 문의 +81-75-761-4111 

핫토리 슌쇼의 잠자리 옻칠함(2016)과 잠자리 루비 클립(2014)

핫토리 슌쇼의 잠자리 옻칠함(2016)과 잠자리 루비 클립(2014)

보석과 근대 공예품의 조화, 일상이 빛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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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전시장은 반클리프 아펠의 주얼리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공간이다. 총 길이가 18m에 달하는 길다란 편백나무 판 위에 80점의 보석을 나란히 진열해 놓았다. 녹색의 벽옥 파도를 헤치고 나가는 금제 ‘바루나 요트’(1907)부터 꿈틀거리며 승천하는 용을 112.44 캐럿의 에메랄드와 진주와 다이아몬드로 표현한 목걸이 ‘구름의 숨결’(2012)까지, 반클리프 아펠 주얼리 아카이브의 정수가 거기 있었다.

나폴레옹 3세의 부인으로 파리 사교계를 주름잡았던 유제니 황후와 시녀들의 모습을 그린 F.X. 빈터할터의 그림(1855)을 루비·사파이어·다이아몬드 등으로 재현한 담배 케이스(1942)가 눈에 띄었다. 아르 데코 스타일의 기하학적 문양을 새긴 목걸이(1936), 발물림이 보이지 않아 원석의 광채를 극대화해 보여주는 반클리프 아펠만의 특화된 기법 ‘미스테리 세팅’을 적용한 ‘국화 클립’(1937), 루비와 다이아몬드로 만들어진 ‘날개 달린 요정’(1941), 지퍼 스타일로 만든 목걸이 겸 팔찌(1954), 네잎 클로바에서 영감을 얻은 ‘알함브라’ 목걸이(1973) 역시 돋보였다. 중국풍 라펠 시계(1924)를 들여다보고 있는데 브랜드 관계자가 “이것은 시계가 아니라 ‘시간을 알 수 있는 보석’이라고 부른다”고 들려주었다. 그는 “역사적 가치가 있는 옛날 작품들은 경매를 통해 꾸준히 사들이고 있는 중”이라고 귀띔했다. 작품 설명 패널에 한글도 있어 반가웠다.

칠보 에나멜로 만들어진 등나무 장식 화병(19세기 말)

칠보 에나멜로 만들어진 등나무 장식 화병(19세기 말)

제2전시장은 일본 공예품과의 합동 전시가 열리는 곳이다. 일본 공예품에는 숫자 앞에 대문자 J를 붙여 구분이 쉽게 했다. 이번 전시의 예술감독을 맡은 마츠무라 류이치(松原龍一) 교토국립근대미술관 학예과장은 전시를 위해 미술관 소장고와 반클리프 아펠의 아카이브를 샅샅이 훑어 적합한 작품들을 골라냈다. 그는 “에도 막부가 막을 내리고 메이지 유신으로 새 세상이 열리면서 사무라이용 칼과 무기를 만들던 재주 좋은 장인들이 부유한 상인을 위한 최고급 일상용품 제작자로 변신했다”며 “게다가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는 일본 장인들, 특히 천황을 위한 물건을 만들던 ‘황실기예원’들에게 새로운 자극이 됐다”고 공예가 발전한 이유를 설명했다. 실제로 유선칠보 장인 나미카와 야스유키, 무선칠보 장인 나미카와 소스케, 금속장인 우노 쇼민 같은, 자신의 이름을 내세운 장인들이 나오기 시작한 것만 봐도 공예를 예술로 대하는 일본 사회의 문화의식이 얼마나 일찍부터 자리잡았는지 알 수 있다.

마츠무라 감독은 제2전시장에서 양국 문화의 공통점 비교에 주력했다. ‘미스터리 세팅’에는 유선칠보 작품을, 목걸이에서 팔찌로의 변형이 가능한 ‘지퍼’에는 동물 형태의 움직이는 금속공예품 ‘지자이 오키모노(自在置物)’를 내세우는 식이다. 일례로 장인 타카세 코잔의 ‘잉어’(20세기 초)는 지느러미 등이 부드럽게 움직이는데, 이는 무사의 갑옷 비늘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다. 또 왁스로 몰드를 만들어 보석 요정을 만드는 반클리프 아펠의 기술에는 상아를 깎아 옥수수나 죽순을 만든 장인 안도 로쿠잔을 불러내 대응했다.

보석으로 만든 화장품 케이스나 미니 이브닝백 ‘미노디에르(Minaudière)’ 등의 일상 소품을 일본의 함과 연결하고, 자연의 생명체를 서로 다르게 해석한 배치 역시 흥미로웠다.

제2전시장과 제3전시장 사이는 잠시 쉬어가는 공간이다. 방돔 광장 앞 보석 공방을 재현했고, 소파 탁자에는 보석을 분해결합해보는 디지털 게임기도 설치했다. 온통 하얀 색인 바람벽에는 보석을 크게 확대해 붙여 놓아 기념 사진도 찍을 수 있게 했다.

제3전시장에서는 일본 현대 공예작가들과의 컬래보래이션을 추구했다. 진열대 배치도 제각각이라 자연스럽게 동선이 흩어진다. 옻칠 장인 핫토리 슌쇼가 만든 ‘잠자리가 그려진 함’(2016)은 ‘루비 잠자리 클립’(2014)과 기가 막히게 어울렸다. 비단 직조 부문 중요무형문화재인 기무라 타케시가 짠 ‘항성’(2008)은 ‘동방의 서약(Voeux d’Orient) ’(2016)과, 전통 목공예 중요무형문화재인 나카가와 키요츠구의 함은 ‘레이디버즈 미노디에르’(2017)와, 유젠 염색 분야의 국보급 장인으로 꼽히는 모리구치 쿠니히코가 지은 기모노 ‘스노우 댄스’(2016)와 ‘반짝이 미노디에르’(2006) 역시 근사한 앙상블을 이뤄내고 있었다. 극과 극은 그렇게 통했다. ●

교토(일본) 글 정형모 기자 hyung@joongang.co.kr,  사진 반클리프 아펠·일본 교토국립근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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