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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잼쏭부부의 잼있는 여행] ⑮ 아시아의 마추픽추, 미스터리한 고대도시 시기리야

중앙일보

입력

정글 한 가운데 우뚝 솟은 시기리야 바위. 꼭대기에 고대 도시가 세워졌던 흔적이 남아있다. 세계 8대 불가사의로 꼽히는 스리랑카 대표 유적지다. 

정글 한 가운데 우뚝 솟은 시기리야 바위. 꼭대기에 고대 도시가 세워졌던 흔적이 남아있다. 세계 8대 불가사의로 꼽히는 스리랑카 대표 유적지다.

시기리야 바위 꼭대기에는 과거 도시가 조성됐던 흔적이 있어요. 도시 역사는 고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요. 5세기 카사파 왕은 당시 왕이었던 아버지를 죽이고 왕위에 오른 뒤 보복이 두려워 바위 꼭대기에 왕궁을 지었다고 해요. 바위 위의 도시이자 요새인 셈이죠. 왕궁은 14세기까지 수도원으로 쓰이다가 지금은 터만 남아 있답니다.

시기리야에 관개 수로가 정비돼 있는 모습. 

시기리야에 관개 수로가 정비돼 있는 모습.

시기리야에 가기 위해서는 모로 가도 담불라(Dambulla)로 가면 된답니다. 담불라는 시기리야에서 약 20km 떨어져 있는 마을이에요. 두 개의 국도가 교차하는 교통의 중심지이기 때문에 콜롬보·캔디 등의 도시에서 버스를 타고 쉽게 이동할 수 있어요. 우리는 캔디에서 약 2시간 달려 담불라에 도착했어요. 버스비는 일반버스 100루피(800원), 에어컨 버스는 350루피(3500원)이에요. 정말 저렴하죠?

시기리야로 향하는 로컬 버스.

시기리야로 향하는 로컬 버스.

담불라 버스정류장에 내려서 시기리야행 로컬 버스로 갈아탔어요. 햇볕이 너무도 뜨거워서 출발하기 전까지는 숨이 턱턱 막혔는데, 출발하고 나니 창문에서 시원한 바람이 들어와서 살 만하네요. 그렇게 30분가량 시골길을 달려 시기리야 마을에 도착했어요. 도로변에 숙소와 레스토랑이 늘어져있는 작은 마을인데 여행 성수기가 아니라 그런지 매우 한산했어요. 저 멀리 시기리야가 보여요. “와아~!” 하고 감탄이 절로 나올 만큼 어마어마하게 큰 바위에요.

눈앞에 드러난 시기리야 바위.

눈앞에 드러난 시기리야 바위.

동네구경을 하다가 경쾌한 철판 소리가 들리는 한 식당에 들어갔어요. ‘탕탕탕’ 이 경쾌한 소리는 스리랑카 음식인 ‘꼬뚜(Kottu)’를 만드는 소리였어요. 꼬뚜는 볶음밥과 비슷해 보이지만 밥 대신에 넙적한 밀가루 팬케이크인 로티를 잘게 썰어 볶은 스리랑카 요리에요. 일종의 볶음면인데, 잘게 썰려 있어 식감이 독특해요. 넙적한 철판에 로띠와 여러 야채, 고기들을 넣고 경쾌한 소리를 내며 바로 볶아 주는데 눈과 귀로 먹는 재미가 있더라고요. 참고로 스리랑카 음식들이 대체로 짜기 때문에 소금을 적게 넣어달라고 미리 요청하는 게 좋아요.

스리랑카 음식 꼬뚜.

스리랑카 음식 꼬뚜.

꼬뚜와 함께 주문한 카레도 나왔어요. 분명 하나를 시켰는데 반찬마다 숟가락이 얹어져 있어요. 처음엔 ‘왜 이렇게 많은 숟가락을 주는 걸까?’ 갸우뚱했는데 알고 보니 스리랑카 사람들은 밥을 손으로 먹기 때문에 카레를 옮길 때 숟가락이 꼭 필요한 것이었어요. 카레를 시키면 우리나라의 정식처럼 여러 반찬이 나와요. 우리나라와 다른 점은 고춧가루 대신 카레가 들어갔다는 점뿐이에요.

스리랑카 소울 푸드 격인 카레.

스리랑카 소울 푸드 격인 카레.

점심을 먹고 나니 시기리야에 가기에는 약간 늦은 것 같아서, 시기리야 옆 산인 피두랑갈라 바위(Pidurangala Rock)로 석양을 보러 가기로 했어요. 피두랑갈라 바위는 시기리야에서 북쪽에 있는 또 다른 바위산이에요. 시기리야의 전체 풍경을 조망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인데, 입장료도 상대적으로 저렴해서 시기리야만큼이나 인기 있는 관광명소에요. 시기리야 입구에서 2㎞ 정도 더 들어가야 해서 주로 툭툭을 타고 이동해요. 하지만 저희는 시간이 많아서 천천히 걸어갔는데 탁월한 선택이었어요. 가는 길에 야생 이구아나와 얼굴이 새까만 원숭이가 걸어 다니는 모습, 파랑새까지 볼 수 있었거든요.

스리랑카에서 마주친 원숭이.

스리랑카에서 마주친 원숭이.

킹피셔라 불리는 파랑새.

킹피셔라 불리는 파랑새.

피두랑갈라 입구에서 입장료 500루피를 내고 사원을 통과하면 가파른 계단이 이어져요. 계단을 따라 헉헉 대며 오르다 보니 커다란 바위 밑에 누워있는 커다란 부처상도 있고, 20~30분 정도 산길을 오르니 정상에 도착! 눈앞에 시기리야가 모습을 드러냈어요. 넓게 펼쳐진 스리랑카의 정글 평원, 그리고 그 위로 우뚝 솟은 바위 시기리야. 낮에도 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시기리야 바위에 오르고 있었어요.

길이 12.5m에 이르는 와불.

길이 12.5m에 이르는 와불.

피두랑갈라 바위에서 바라보는 시기리야 바위.

피두랑갈라 바위에서 바라보는 시기리야 바위.

피두랑갈라 바위 정상.

피두랑갈라 바위 정상.

피두랑갈라 바위산은 시기리야에 비해 붐비지 않아서 한적하게 경치를 구경할 수 있어요. 특히 아침 일찍 올라와 일출을 보기 좋은 곳이에요. 하지만 저희는 아침형 인간이 아니라서 일출은 일찍 포기하고 대신 일몰만 보기로 했죠. 해가 질 무렵이면 많은 관광객들이 삼삼오오 바위에 둘러 앉아 석양을 바라보며 하루를 마무리 한답니다.

해질녘 환상적인 풍경이 빚어지는 피두랑갈라.

해질녘 환상적인 풍경이 빚어지는 피두랑갈라.

다음 날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 시기리야 바위로 향했어요. 더워지기 전에 한 시간이라도 일찍 바위산에 오르기 위해서였죠. 입장료는 무려 30달러. 시기리야 말고도 스리랑카 전체적으로 외국인 관광객에 대한 입장료가 꽤나 비싼 편이에요. 입구로 들어가니 시기리야 정원이 펼쳐지고, 그 앞에 어제 멀리서 바라보던 시기리야가 떡 하니 자리 잡고 있네요. 아침 안개가 자욱해서 뚜렷이 보이진 않았지만, 실루엣만 보이니 오히려 더 신비로워 보였어요.

아침 안개 속으로살짝살짝 보이는 시기리야 실루엣.

아침 안개 속으로살짝살짝 보이는 시기리야 실루엣.

시기리야는 5세기에 지어졌음에도 뛰어난 수로시설을 갖춘 최고의 고대 계획도시로 평가받고 있어요. 특히 시기리야의 서쪽 벽에 그려져 있는 미인도는 1500년 전에 그려졌다고는 믿겨지지 않을 만큼 섬세한 그림체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서 놀라웠어요. 그리고 그 옆으로 난 자그마한 홈들이 있는데 아마도 1500년 전 사람들이 바위를 오르던 계단인가 봐요. 지금 시대에 태어났으면 프로 클라이머 못지않은 실력의 소유자들일 것 같아요. 전 올려다보기만 해도 아찔하더라고요.

고대인이 이용했던 시기리야 계단.

고대인이 이용했던 시기리야 계단.

중턱쯤 오르니 커다란 사자발톱이 나왔어요. 예전에는 사자의 발톱 위로 사자의 얼굴이 있었다고 해요. 시기리야는 '사자바위'라는 뜻인데, 스리랑카의 국기에도 그려져 있을 만큼 사자는 스리랑카에서 신성한 동물이에요. 사자의 두 발 사이로 이어져 있는 계단을 조금만 더 오르니, 드디어 1500년 전에 지어진 고대 도시 터를 만날 수 있었어요. 마치 페루 마추픽추의 축소판 같아요. 이렇게 높은 바위 위에 어떻게 이런 도시를 지을 수 있었을까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자의 두 발 사이로 정상에 오르는 계단이 있다.

사자의 두 발 사이로 정상에 오르는 계단이 있다.

시기리야는 우리나라의 제주도 같은 유명 수학여행지인가 봐요.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정말 많았거든요. 흰 교복에 남학생들은 형형색색의 선글라스, 여학생들은 리본 달린 챙 모자가 올해의 유행인 것 같아요. 스리랑카 아이들은 사진 찍히는 걸 매우 좋아하더라고요. 저희가 카메라를 들고 있으니 다가와서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네요. 찍은 사진을 보내주고 싶어서 이메일 주소를 알려달라고 했어요. 하지만 인터넷 보급이 잘 되어있지 않아서 그런지 이메일이 없다고 해서 사진은 보내 줄 수 없었어요. 하지만 다들 사진을 소유하기보다는 찍는 순간을 즐기는 것 같아 보였어요.

하얀 교복을 입은 스리랑카 학생들.

하얀 교복을 입은 스리랑카 학생들.

시기리야 정상에서의 풍경과 분위기가 좋아서 더 있고 싶었지만, 정오가 지나니 너무 뜨거워서 오래 머물기가 힘들었어요. 깜빡하고 물을 챙겨오지 않았는데 정상에 가도 물을 팔지 않더라고요. 목이 너무 말라서 아쉽지만 결국 일찍 내려오게 되었어요. 시기리야에 오를 때는 꼭 물을 넉넉히 챙겨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내려가는 계단은 올라올 때보다 더 아찔했지만 풍경 하나는 끝내주네요. 저 멀리 어제 올랐던 피두랑갈라 바위도 보이고요.

시기리야 하산길, 멀리 피두랑갈라 바위산이 보인다.

시기리야 하산길, 멀리 피두랑갈라 바위산이 보인다.

시기리야는 자연과 역사가 어우러진 특별한 여행지였어요. 거대한 바위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데 그곳에 2000년이 넘는 이야기와 생생한 유적들까지 공존하고 있으니까요. 사진 한 장으로 시작된 여행이었지만, 그 이상의 감동을 받고 왔답니다. 그럼 다음 여행에서 뵐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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