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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몸과 영혼' 일디코 엔예디 감독

중앙일보

입력

[매거진M] 제18회 전주국제영화제(JIFF)가 지난 5월 6일 열흘간의 축제를 끝마쳤다. 어떤 영화를 봐야 할지 고민이 많아질 만큼 수작이 많은 한 해였다. magazine M은 개막작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몸과 영혼’(이하 ‘몸과 영혼’)을 연출한 일디코 엔예디 감독 등을 비롯해 화제를 모은 영화인을 전주에서 만났다.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의 정윤석 감독 ‘노무현입니다’의 이창재 감독 등 JIFF를 뜨겁게 달군 한국 다큐멘터리 감독 5인의 이야기도 함께 전한다. 사진=라희찬(STUDIO 706)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 감독 인터뷰

편안한 삶을 깨뜨려 찾는 진정한 자신

개막작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몸과 영혼' 일디코 엔예디 감독

한 쪽 팔이 편치 않은 권태로운 중년 남성과 아름다운 외모를 지녔지만 평범한 인간관계를 맺지 못하는 젊은 여성. 일터인 도축공장에서 만난 둘은 우연한 기회에 매일 밤 서로 같은 꿈을 꾼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꿈속에서 둘은 두 마리 사슴이 되어 겨울 산을 헤맨다. 호기심으로 시작된 사랑은 두 사람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까. ‘몸과 영혼’은 관계와 교감이라는 보편적 주제를 현실과 꿈을 넘나드는 독특하고 아름다운 영상에 담아낸 작품이다. 헝가리 감독 일디코 엔예디(61) 감독이 18년 만에 내놓은 장편으로, 올해 제67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수상했다.

일디코 엔예디 감독

일디코 엔예디 감독

오랜만에 내놓은 장편영화에서 이 주제를 다룬 까닭은.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는 동물이기 때문에 타인과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는 인류 역사상 반복됐던 주제다. 한정된 삶 속에서 행복하게 살아갈 길은 무엇인가. 이는 내가 살아가면서 스스로 물었던 질문이기도 하다. 이 영화에선 재무 이사 안드레(게자 모르크사니)와 품질 관리원 마리아(알렉산드라 보르벨리)를 무미건조한 삶 속에 몰아넣으려 했다. 말하자면 가축 같은 삶이다. 가축은 우리 안에서 단조롭게 사는 대신 안전을 부여받는다. 두 인물이 이런 환경에서 빠져 나오는 상황, 그러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을 그리고 싶었다.”

그걸 이끌어내는 건 같은 꿈을 꾼다는 설정이다. 꿈속에서 둘은 사슴이 되어 겨울 산을 돌아다닌다. 

“야생의 사슴은 이상적인 삶을 산다고 할 수 없다. 힘겹게 먹이를 찾아다니다 사냥꾼의 총을 맞을 수도 있다. 이것이 완벽하진 않지만 그 자체로 온전한 삶이라고 봤다. 이 꿈을 통해 안드레와 마리아도 조금 불안해도 행복한 삶을 사려는 노력을 하게 된다. 본래 살던 삶의 방식을 깨는 데 무척 서툰 사람들인데도 말이다.”

그들의 일터에서 벌어지는 소 도축 장면이 충격적이었다. 교감이라는 주제와 다소 거리가 멀어 보이기도 하는데. 

“일상적으로 매일 벌어지는 일을 그대로 담았을 뿐인데, 관객이 이상하게 느낀다는 건 유감스런 일이다. 이 영화에선 교감을 넘어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을 하고 싶었다. 많은 사람들이 고기는 먹지만 고기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는 외면한다. 불편한 것을 직시하지 않으려는 태도. 현대 서구는 이런 작은 위선으로 가득하다. 더 나아가 예를 들면, 출산과 죽음마저도 의사나 장의사에게 모두 맡기며 정작 본인은 그 중요한 순간을 잃어버린다. ‘난 신경 안 써도 돼, 전문가가 다 할 거야’라는 태도는 자신을 어린 아이 같은 미숙한 위치에 놓는 게 아닐까. 그런 맥락에서 도살 장면을 공장 직원들이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는 일상처럼 무덤덤하게 보여주려 했다.”

현대 사회의 개인은 보다 편안하게 살기 위해 회피하고 외면하는 게 아닐까. 

“이런 예를 들어보자. 고대 그리스 시대엔 원형 극장에서 연극이 상영됐다. 로마 시대엔 같은 곳에서 잔혹한 전투 경기를 선보였다. 사람들은 둘 다 좋아했다. 인간은 자신이 속한 환경에 익숙해지는 경향이 있다. 그러면서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마주하지 못하게 된다. 현대 사회에선 폭탄처럼 쏟아지는 대중문화가 인간을 더욱 그렇게 만든다. 진짜 자신의 삶을 찾기 위해선 익숙한 편안함을 박차고 나서야 한다.”

안드레를 연기한 배우가 헝가리의 한 출판사 이사라고. 

“안드레는 복잡한 감정을 요하는 인물이 아니어서 비전문 배우를 기용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를 연기한 게자 모르크사니는 동료 작가들을 통해 알고 있었다. 그는 몸가짐·생김새·성격 모든 면에서 눈에 보이는 그 이상의 카리스마를 가진 특별한 사람이다. 배우인 아내 주디트 발로그의 적극적인 지지와 추천으로 이 역할을 맡기게 됐다. 진짜 영웅은 그녀다(웃음).”

헝가리의 부다페스트 연극영화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현재 헝가리 영화계는 어떻게 변화하고 있나. 

“지원 시스템이 안정되고 있다. 감독이 자유롭게 자신만의 표현 방식을 담은 영화를 만들 수 있는 환경이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다른 세대의 감독들이 함께 작업하며 중요한 변화를 이끌어 내는 중이다. 2014년 JIFF의 ‘디지털 삼인삼색’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자유 낙하’를 연출한 기요르기 폴피 감독도 그 중 하나다. 이런 환경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 모르지만 현재는 아주 희망적이다.”

구상 중인 차기작은. 

“나무가 주인공인 영화를 준비 중이다. 나무의 입장에서 삶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를 담아 내는 것이 핵심이다. 1960년대 식물의 소통 방식에 관한 실험이 있었다. 이를 테면 나무가 주변 새를 인식하고 반응하는 것에 관한 실험이다. 이를 영화에 반영하는 게 쉽지 않다(웃음). 이 작품이 투자를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희망을 갖고 있다.”

김나현 기자 respir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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