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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속 패션 읽기]교복은 언제부터 섹시한 남자의 상징이 됐나

중앙일보

입력

'프로듀스 101' 시즌2에서 타이틀 곡 '나야 나'를 부르는 합동 무대. [사진 방송 캡처]

'프로듀스 101' 시즌2에서 타이틀 곡 '나야 나'를 부르는 합동 무대. [사진 방송 캡처]

감히 자신한다. 제아무리 정치·경제·사회분야에 해박한 지식인이라도 한없이 작아지는 영역이 있다는 것을. 바로 아이돌이다. 한 해에만도 수없이 쏟아져나오다보니 한 그룹에 몇 명이 있는지조차 파악이 안 되는 게 당연하다. 영어와 조어가 섞여 뭐가 그룹 이름이고 뭐가 멤버 이름이지 알 수도 없을 때도 많다. '나이들면 다 그렇지'하며 점점 '건널 수 없는 강'으로 치부하게 된다. 하지만 한번쯤 더 늦기 전에, 아니 지금 인기를 구가하는 정도만이라도 제대로 마스터해보겠노라는 의지가 생기지 않나.

'프로듀스 101' 이번에도 교복 컨셉트 #신인 이미지에 10대 눈높이 맞춘 선택 #엑소·방탄소년단 등 선례 많아

케이블 채널 Mnet에서 방영 중인 '프로듀스 101(발음에 주의하자! 일공일이 아니라 원오원이라야 또래 소년 소녀들에게 한 소리 듣지 않는다) 시즌2'는 이 목적을 달성하기에 최적화된 프로그램이다. 서로 다른 소속사 53곳에서 온 연습생 101명이 아이돌 그룹으로 데뷔하기 위해 서바이벌 게임을 펼친다. 데뷔 전, 그것도 매주 TV프로그램을 통해 얼굴을 익힐 수 있으니 보다 보면 절로 학습이 된다. 2016년 여자 아이돌 그룹 만들기에 이어 올해는 남자 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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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자들이 동일하게 입는 교복 콘셉트 의상. 컬러를 맞추되 보우타이, 매듭줄 등으로 차별화 한다. [사진 프로듀스 101 공식 홈페이지]

출연자들이 동일하게 입는 교복 콘셉트 의상. 컬러를 맞추되 보우타이, 매듭줄 등으로 차별화 한다. [사진 프로듀스 101 공식 홈페이지]

성별이 바뀐 걸 제외하고는 시즌2에서도 지난해와 비슷한 포맷을 그대로 이어간다. 대표적인 게 올해도 어김 없이 펼쳐진 합동 무대다. 참가자 모두가 한 무대에 서서 타이틀 곡 '나야 나'(PICK ME)'를 부른다. 수십 번을 본다 해도 절대 따라하지 못할 동작들을 어떻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이 움직이는지, 그 어떤 오디션 프로에서도 볼 수 없는 장관이라 할 만하다.

감탄은 여기까지.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게 바로 출연자들의 의상이다. 이들이 입은 교복은 일사분란한 공연에 한 몫을 한다. 출연자 일부는 20대, 머리를 울긋불긋하게 염색하고 귀고리·타투까지 한 이들에게 웬 교복이냐고? 하지만 교복은 이 프로가 택한, 택할 수밖에 없는 신의 한 수다.

엑소의 '으르렁' 무대. 교복이 잘 어울리는 아이돌임을 입증했다.

엑소의 '으르렁' 무대. 교복이 잘 어울리는 아이돌임을 입증했다.

방탄소년단의 '상남자' 뮤직 비디오. 교복 재킷을 벗고 역동적 춤동작을 선보였다. 

방탄소년단의 '상남자' 뮤직 비디오. 교복 재킷을 벗고 역동적 춤동작을 선보였다.

이해를 돕기 위해 잠시 남자 아이돌에 관한 '복습'이 필요하다. 교복은 신인 남자 아이돌 그룹이라면 으례 한 번쯤 입었던 가장 안전한 무대 의상이다. 일단 엑소가 있다. 첫 정규 앨범 타이틀곡 '으르렁(2013)'의 앨범 재킷과 뮤직비디오에서 회색 교복을 입었던 이들은 무대에서도 단체로 '으르렁' 후렴구를 거칠게 내뱉었다. 교복이라고 스타일링이 지루하지만도 않았다. 어느 날은 차이나칼라의 일본식 교복, 어떤 날에는 밀리터리 교복이나 남색 교복 등을 다양하게 선보였다. 뒤이어 나온 방탄소년단 역시 교복이 무기였다. 2014년 활동곡 '상남자'에서 멤버들이 교복을 차려 입고 각 잡힌 칼군무를 펼쳤다. 흰 셔츠와 타이로만 멋을 내는 식의 변주도 있었다. 이들 그룹의 '교복 아우라'가 얼마나 컸던지 당시 이를 두고 팬들 사이에선 교복 컨셉트 표절 공방이 있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지난해 말 데뷔한 SF9(다시 한번 발음 주의! 에스에프나인이다) 역시 예외는 없다는듯 교복을 꺼내 들었다. 이쯤이면 교복이 보이 그룹의 공식 의상이라 해도 무방한 수준이다. 신인으로서의 순수함을 보여주는 옷, 주 팬층인 10대들의 공감대를 살 수 있는 옷으로는 교복만한 대안이 더 없기 때문이리라. 거기에 가끔씩 오빠에서 남자로의 변신인냥, 셔츠를 들쳐 탄탄한 복근을 보여주는 퍼포먼스로 반전을 꾀하기도 좋다.

아이돌의 교복 콘셉트를 이어가며 신곡 '쉽다'를 발표한 SF9 

아이돌의 교복 콘셉트를 이어가며 신곡 '쉽다'를 발표한 SF9

이쯤이면 '프로듀스 101'이 꽃길만 갈 수 있는 교복을 포기하는 게 더 이상한 거다. 더구나 이 프로그램 목표가 뭔가. 노래 잘하는 가수를 발굴하는 오디션 선발이 아닌 '아이돌' 만들기 아닌가. 가창력·춤실력만큼이나 '당신의 소년은 누구냐'며 시청자 투표에 비중을 둔다. 데뷔 전부터 흥행성을 보장받겠다는 전략에 굳이 옷으로 무리한 도전을 할 필요가 없다. 또 하나, '누구나 촬영 현장에서는 똑같다'는 동질성을 드러내기도 좋다. 대형기획사도 개인 참가자도. 열일곱 소년부터 서른 살 최고령 청년도 이곳에서만큼은 평등하다는 암묵적 상징이다.

복장 자체를 별개로 생각하더라도 아이돌과 교복은 연결고리가 있다. 엄격한 지도와 쉼 없는 훈련, 거기에 냉혹한 평가가 이어지는 아이돌 연습생의 생활은 교복을 입던 학창 시절과 묘하게도 일치한다. 그들처럼 우리에게도 더 높은 점수를 얻기 위해, 더 나은 미래를 보장 받자며 고군분투 하던 나날이 있었다. 중요한 건 아직 젊고 어리기에, 실패도 잘못도 마지막이 아니었다. 앞으로 방송에서 하나둘씩 교복을 벗고 떠날 소년들이 간직했으면 하는 한 가지다. 이도은 기자 dangd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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