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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1년에 비가 2566mm나 내렸다... 언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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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관광객이 서울 광화문광장에 설치된 측우기를 살펴보고 있다. [중앙포토]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관광객이 서울 광화문광장에 설치된 측우기를 살펴보고 있다. [중앙포토]

"비가 내렸는데, 수심(水深)이 여덟 푼이었다." (6월 1일)
"비가 내렸는데, 수심이 일곱 치 다섯 푼이었다." (6월 2일)
"비가 내렸는데, 수심이 두 치 세 푼이었다." (6월 3일)
"비가 내렸는데, 수심이 한 치 한 푼이었다." (6월 4일)
"비가 내렸는데, 수심이 세 치 아홉 푼이었다." (6월 5일)

기상청 1778년 이후 강수량 분석 #순조 21년 1821년 가장 많이 내려 #비 그치게 해달라고 기청제도 지내 #"측우기 덕분에 239년 자료 분석"

조선왕조실록 [중앙포토]

조선왕조실록 [중앙포토]

조선 순조 21년이던 1821년 음력 6월의 조선왕조실록 기록이다. 수심은 한양 궁궐에서 측우기로 측정한 강수량이다. 한 치는 요즘으로 치면 20㎜이고, 한 푼은 2㎜에 해당한다.
이 기록만 봐도 5일간 연속 비가 내렸고, 닷새 동안 강수량이 312㎜나 된다. 장마철 전체 강수량과 맞먹는 양이다.

순조실록의 엄청난 장마와 폭우 기록은 음력 7월 22일까지 이어진다. 6월 1일부터 7월 22일까지 52일 동안 비가 내렸다고 기록된 날이 38일이고, 강수량도 1746㎜나 된다.
승정원일기를 보면 순조실록에 나온 것 외에도 비가 내렸다는 기록이 더 나온다. 결국 1821년 한 해 서울에 내린 눈·비 등 강수량은 모두 2566㎜로 집계됐다.

기상청 국가기후데이터센터 연구팀은 8일 1778~2016년까지 서울지역의 일별 강수량 자료를 바탕으로 연(年) 강수량이 많은 10년(톱10)을 선정한 결과, 1위는 1821년으로 꼽혔다고 밝혔다.
그해 서울의 강수량  2566㎜는 최근 서울의 평년(1981~2010년 평균) 강수량 1450.5 ㎜보다 77%나 많다.

17718~2016년 서울 최다 연강수량 TOP 10

년도

연강수량 (㎜)

1821

2566.0

1879

2462.0

1990

2355.5

1998

2349.1

1832

2242.0

1940

2145.1

2011

2043.5

2012

2039.3

1966

2018.9

2003

2012.0

*자료:국가기후데이터센터

2위는 2462㎜가 내린 1879년, 3위는 20세기 근대 기상관측 이후 가장 강수량이 많은 1990년(2355.5㎜), 4위는 1998년 2349.1㎜다.
이번 분석에서 연구팀은 1778~1907년 사이는 승정원일기에 나오는 측우기로 관측한 자료를 활용했고, 1908년 이후는 근대 강수량 관측자료를 활용했다.

서울대 규장각에 보관된 승정원일기 [중앙포토]

서울대 규장각에 보관된 승정원일기 [중앙포토]

다시 1821년 여름.
장맛비가 1000㎜ 이상 계속 내리자 순조 임금은 기청제(祈請祭)를 올릴 것을 지시한다.
기청제는 기우제의 반대로, 비가 그치게 해달라고 하늘에 지내는 제사다.
신하들은 가을이 오기 전에 기청제를 올려도 되는 지, 전례가 있는 지 등을 논의한 끝에 서울 4대문에서 기청제를 올린다.

하지만 기청제를 올린 후에도 비는 그치지 않았고, 나흘 뒤 다시 기청제를 올렸다. 감옥의 죄수도 석방했다.
다시 7일이 지난 뒤에야 비가 그쳤는지 실록에서 비 이야기가 드디어 사라졌다.
1821년 여름 조선의 '핫 이슈'는 장맛비였던 셈이다.

서울 충정로에 소재한 농업박물관에 전시된 측우기. [중앙포토]

서울 충정로에 소재한 농업박물관에 전시된 측우기. [중앙포토]

국가기후데이터센터 김동수 박사는 "우리 조상의 측우기 덕분에 239년 동안 세계 최장 기간의 강수 시계열 자료 분석이 가능했다"며 "지난 1월 미국 기상 관련 학회에서 이번 분석 결과를 발표했더니 세계기상기구(WMO) 관계자가 깊은 관심을 보였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10~12일부터 부산 해운대 한화리조트에서 열리는 한국기상학회(회장 손병주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의 봄 학술대회에서도 이번 논문을 발표할 예정이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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