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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정의 공감 대백과 사전] 그대는 어디에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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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0호 면


영국 데일리메일의 보도심리학자와 통계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양말 한 짝을 잃어버릴 확률은 ‘세탁물의 양과 횟수’ 및 ‘세탁물의 복잡성’에 비례하고 ‘세탁을 향한 긍정적 마음가짐’이나 ‘주의’에 반비례한다. 쉽게 말하면 이것저것 빨래를 뒤섞어서 하기 싫은 마음으로 대충 빨래를 하면 양말 한 짝을 잃어버릴 확률이 높다는 것.

이윤정의 공감 대백과 사전

그여자의 사전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무슨 수를 쓰더라도 결국 한 짝은 사라지고 마는 것. 양말, 귀걸이, 장갑 등 짝을 이루는 것이라면 종류를 가리지 않고 잃어버리기에 한 쌍의 물건은 그냥 ‘일회용’이라고 마음먹는 것이 속 편하다고 생각하게 된 것.


바쁜 아침, 스타킹을 신기 위해 여자는 빨래통을 뒤진다. 빨기만 하고 개어놓지 않은 빨래 더미에서 가까스로 한 짝을 찾아낸다. 다시 한번 깊숙이 손을 집어넣어 다른 한 짝을 찾아보지만 잡히는 건 엉뚱한 양말들뿐이다. 빨래통을 다 뒤집어 보아도, 세탁기 안을 휘휘 저어보아도 마찬가지다. 이번에도 역시, 한 짝은 사라지고 말았다.

이럴 때를 대비해 남겨진 양말 한 짝의 상자를 만들어두었다. 그러나 스타킹의 색상은 이럴 때만 다채롭다. 황급히 한쪽 발엔 커피색 1호를 다른 발엔 살색 1호를 신고 나선다. 오늘은 절대 신발을 벗는 식당엔 가지 않을 테다.

스타킹뿐인가. 귀걸이는 살 때만 즐거울 뿐 빼놓기만 하면 반드시 다음엔 한 짝이 없다. 그 또한 잃어버리기 싫어 귀에 꽂고 자는 것을 샀지만 며칠 밤 자고 나면 어느 틈엔가 사라져 버린다. 침대 주변을 아무리 뒤져도 없다.

그래. 나는 원래 짝 맞추는 일과는 인연이 없었어. 대학교 때 짝을 맞춰 만나는 미팅에도 성공한 적이 한 번도 없었고, 연애 경력은 짝사랑이 대부분이며, 평생 짝을 찾았나 싶었다가도 잃어버린 것 같으니까.

잃어버린 양말 한 짝에서 시작해 인생 전체를 투덜댈 때마다 여자는 어렸을 적 끼던 벙어리 장갑처럼 양말도 귀걸이도 모두 끈으로 연결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아니 매일같이 언론들이 주워섬기는 4차 산업혁명은 뭘 하고 있단 말인가. 양말이 사라지지 않는 세탁기를 발명하거나 양말에 작은 칩을 넣어서 서로의 짝을 추적할 수 있는 정도는 발명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인류의 행복을 위한 과학의 발전은 아직 멀고도 먼 길이 남았다.

혹은 양말을 찾아주는 대화형 산신령 인공지능도 가능하겠다. 잃어버린 양말 한 짝의 상자에서 산신령 인공지능은 하나를 들어올리며 “이 짝이 그 짝이더냐”라고 묻는다. 그동안 대충 회색으로 통일해서 산 양말들이다. 그러나 이 또한 쉽지 않아 보인다. “아니옵니다. 그것의 발목엔 ‘나이케’라고 쓰여있지 않습니까. 제 짝은 ‘프로스폭스’이옵니다.”

선거의 계절에 맞게 이 문제의 정치적인 해결을 생각해본다. 내가 대통령이 된다면 독재자라고 욕을 먹을지언정 반드시 양말은 하나의 색깔과 단일한 디자인으로 통일하는 긴급조치를 발동시키고 싶다. 경제적 근거도 있다. 영국의 한 과학자의 분석에 따르면 영국인들이 한 달에 잃어버리는 양말 짝은 평균 한 달에 1.3개, 1년이면 15개. 평생 1인당 잃어버리는 양말 짝 1264개의 값을 다 합치면 무려 3600달러를 넘는다고 하니 국민경제를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 아닐까. 모두 똑같은 양말이라면 누구나 급할 때 양말을 주고 받는 ‘양말 공유경제’도 가능할 것이다. 사라지는 양말 한 짝에 대한 인류 공통의 스트레스에 비하면 양말을 통일하는 정도의 디자인은 양보해도 괜찮지 않겠느냐며 설득할 것이다.

그런데 잃어버린 한 짝들은 도대체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차마 버릴 수 없어 남겨진 한 짝들이 몇 년을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는 그 수많은 양말짝들은, 귀걸이들은, 장갑들은. 유투브에는 ‘양말의 탈출극’을 상상한 애니메이션들이 넘쳐난다. 세상 사람들 대부분이 양말의 탈출 의지를 감지하고 있는 것이다. 틈틈이 인간의 경계심을 뚫고 탈출에 성공한 한 짝들은 알 수 없는 통로로 우주로 빠져나가 분명 어딘가에 ‘사라진 한 짝의 별’을 만들어 신나게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의지가 부족해서 그 별까지 가지 못한 한 짝들은 언젠가는 비실비실 맥없는 모습을 드러낸다. 침대 밑에서, 소파 밑에서, 책장 밑에서 혹은 가방 속에서. 어쨌든 날 버리지 않고 남아준 양말 한 짝을 발견하는 날이면 눈물나는 ‘반가움’이란 바로 이런 것이구나를 느끼게 된다. 그러니 돌아와다오 나머지 한 짝들아. ●

이윤정 : 칼럼니스트. 사소하고 소심한 잡념에 시달리며 중년의 나이에도 영원히 철들지 않을 것 같아 고민인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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