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송길영의 빅 데이터, 세상을 읽다

당연함을 의심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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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송길영 다음소프트 부사장

송길영 다음소프트 부사장

1923년 발행된 신문 속 첫 번째 어린이날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종래에 사람의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자라던 가련한 우리의 어린이들도 이제부터는 부형의 각성함을 따라 사람의 대우를 받게 하자는 의미.” 지금은 당연히 독립된 인격체로서 인정받고 또 우선되는 어린이가 그 당시 ‘사람의 대우’에서 소외되었음을 보여줍니다. 100년도 안 되는 사이에 바뀐 사람들의 인식을 만들기 위한 첫걸음의 흔적을 살펴보니 지금의 당연함은 또 언제 예전의 모습이라 생각될까요.

우리 삶의 방식을 송두리째 바꾼, 휴대전화와 컴퓨터를 결합한 기계의 시작은 겨우 10년 전이었습니다. 3.5인치의 나름 광활한 화면을 품고 있는 기계의 모습은 그때 사람들에겐 너무나 생경했습니다. 당시 제품 광고는 손이 무척 큰 모델을 써서 너무 큰 느낌이 들지 않도록 해 이질감을 줄이려 했다고 합니다. 이제 불과 10년 만에 5.8인치를 넘어선 제품도 우리에게 그리 커 보이지 않습니다. 처음의 생경함이 생활 속에서 조금씩 마모되어 어느덧 당연함으로 대체되었기 때문입니다.

요즘엔 출발하는 날까지 예약하지 않고 떠나는 여행이 인기 있다 합니다. 마지막 순간 떨이로 팔아치우는 호텔의 가격은 수일 전 예약하는 요금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예전엔 미리 예약하는 것이 좋은 조건이었다면 이제는 최후까지 버티는 것이 더 이익이 됩니다. 당일까지 숙소와 교통편을 정하지 않고도 연결된 세상 속 최적의 거래를 찾아주는 휴대전화 하나 들고 유목민처럼 부유하는 삶이,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철마다 해야 할 일들을 1년 속 24절기로 기억하며 근면함을 무기 삼아 살아왔던 우화 속 개미와 같은 삶보다 유리한 선택을 안겨다 주는 세상이 온 것입니다.

이런 시대에 세대 갈등은 문명의 충돌처럼 예견된 참사라 할 수 있습니다. 농업 사회에 태어나 경공업의 시대에 받은 교육으로 중공업의 직업을 얻었던 지금의 어른들이 전 세계가 연결된 정보화 사회 아이들을 이해하길 바라는 것은 알지 못하는 나라에 표류한 이방인이 현기증 없이 바로 적응하는 것을 기대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예측할 수 있는 과거의 삶에서 얻어진 기득지 속, 세상 사는 법의 모범답안이라 희망되는 일상의 느낌을 우리는 당연함이라 쓰고 안정감이라 읽습니다. 점점 더 빨라지는 변화 속, 이제 당연함을 의심해야 적응하게 될 태생적 불편함을 피할 수 없는 현생 인류가 조금은 안쓰럽게 느껴집니다.

송길영 다음소프트 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