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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실적 빼고 보면 … 코스피, 20% 저평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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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기업 실적 호전에 따른 외국인 투자자의 매수세가 이어지면서 4일 코스피 지수가 2011년 5월 2일 기록한 2228.96을 돌파, 사상 최고 지수인 2241.24로 마감했다. 이날 오후 한국거래소 직원들이 서울 여의도 본점 시세 전광판 앞에서 색종이를 뿌리며 최고 지수 돌파 기념행사를 하고 있다. [사진 한국거래소]

기업 실적 호전에 따른 외국인 투자자의 매수세가 이어지면서 4일 코스피 지수가 2011년 5월 2일 기록한 2228.96을 돌파, 사상 최고 지수인 2241.24로 마감했다. 이날 오후 한국거래소 직원들이 서울 여의도 본점 시세 전광판 앞에서 색종이를 뿌리며 최고 지수 돌파 기념행사를 하고 있다. [사진 한국거래소]

‘어게인 2005년’ vs ‘박스권 상향 조정’.

사상 최고치 뚫은 한국증시 앞날은 #올해 상장사 영업이익 130조 전망 #6년 전 최고점 당시 비해 상승 여력 #외국자금 대체 세력 없어 회의론도

4일 사상 최고치(코스피 2241.24)를 돌파한 증시를 바라보는 두 가지 시각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이어졌던 글로벌 양적완화의 종료와 미국 트럼프 행정부 출범에 따른 보호무역에 대한 불안감은 사라졌다. 그러나 사상 최고가(4일 종가 227만6000원)를 경신한 삼성전자의 독주 체제와 외국인 홀로 이끄는 장세는 추가 상승에 대한 의구심을 자아낸다. 이후 코스피는 어떤 길을 갈까.

◆“2005년을 닮았다”=연초 한 펀드매니저는 “20여 년 매니저 하면서 생긴 ‘감’인데 올해가 왠지 2005년 같다”고 말했다. 당시 코스피는 연간 50%나 올랐다. 기업 실적이 좋았고 펀드 자금은 물 밀 듯이 들어왔다.

올 연초만 해도 증권사 리서치센터에선 증시를 이 정도로 좋게 보진 않았다. 그러나 이날 현재 코스피는 2300선을 단 2.6% 남겨두고 있다. 증시 상승에 대한 사후적 해석으로 가장 지지받는 근거는 기업 실적이다. 코스피 최고치를 기록했던 2011년(2228.96, 5월 2일) 상장사의 영업이익은 102조8800억원이었다. 시장은 이를 선반영해 급등했다. 당시 “영업이익 100조원 시대가 열렸다”는 전망이 대세였다.

그러나 2012년 코스피 기업 전체의 영업이익은 95조6600억원으로 줄었다. 영업이익 100조원 시대는 그로부터 4년이 지난 2015년(102조2100억원)에야 다시 왔다. 그나마 삼성전자를 빼면 2011년(약 86조원)보다 10조원 부족한 약 76조원에 그쳤다. 코스피 지수가 그간 박스권에 갇힌 이유다.

지난해부터 실적 개선이 본격화했다. 삼성전자를 뺀 코스피 기업의 영업이익은 93조원에 육박한다. 코스피 지수가 종전 최고치를 기록했을 때보다 좋다. 다만 그간 거짓말에 데인 시장은 실적보다 천천히 움직였다. ‘확인하고 가자’는 흐름이 대세였다. 삼성전자만 독주했다. 삼성전자를 빼면 코스피 지수는 종전 최고치 때보다 여전히 20% 정도 낮다.

이창목 NH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올해 영업이익 130조원 전망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주가는 오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수급도 좋다. 외국인 매수세가 이어지고 있다. 올 들어 외국인은 6조7300억원어치 주식을 사들이고 있다. 실적에 비해 주가가 저평가돼 원화 강세에도 차익 실현보다는 추가 매수에 집중한다.

구조적인 변화도 뒤를 받치고 있다. 기관투자가의 선관 의무를 강조한 ‘한국판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은 기업의 지배구조 투명성을 높일 기회다. 최대 기관투자가인 국민연금이 가입을 미루고 있지만 시장에선 시간 문제로 본다. 조명현 한국기업지배구조원장은 “해외 연·기금들은 북핵 리스크보다 스튜어드십 코드에 큰 관심을 보인다”며 “실적 개선이 없더라도 지배구조만 개선되면 주가가 레벨업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세 상승은 어렵다”=회의론도 상존한다. 시장이 조금 더 오를 수는 있지만 2005년 같은 대세 상승은 어렵다는 시각이다.

이종우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미국과 독일을 빼고는 금융위기 이후 주가 수준을 회복한 나라가 없다”며 “한국이 미국·독일만큼의 경제 여건이 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까지 주가를 끌고 온 동력은 풍부한 유동성과 저금리인데 앞으로도 그걸 유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국 경제가 지금처럼 좋다면 금리 인상 속도가 가팔라지고, 그렇게 되면 글로벌 자금이 국내 시장에서 철수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주가는 실적이 좋아도 수급이 받쳐주지 않으면 못 오른다. 외국인 자금이 빠지면 그걸 대체할 만한 세력이 있어야 한다. 2005년 이후 대세 상승기 땐 적립식 펀드 자금을 실탄으로 기관이 시장을 이끌었다. 지금은 펀드로 돈만 까먹었다는 투자자들의 실패 경험담이 넘쳐나며 오르는 주가는 환매만 부른다. 기관투자가 전체로는 올 들어 5조4600억원을 순매도했다. 이 중 자산운용사가 순매도한 규모는 3조800억원 규모다. 가계부채가 1300조원을 돌파해 매달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통에 개인들이 투자할 돈이 없다는 것도 한계다.

고란 기자 ne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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