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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충기의 긴가민가] 전인권 작업실 습격사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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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실은 바위벽에 붙어있고 뒤는 바로 숲이다. 지붕에는 마른 솔잎 수북하고, 집이 오래 돼 빗물받이가 뒤틀렸다. 대문의 번지수는 지웠다

작업실은 바위벽에 붙어있고 뒤는 바로 숲이다. 지붕에는 마른 솔잎 수북하고, 집이 오래 돼 빗물받이가 뒤틀렸다. 대문의 번지수는 지웠다

[긴가민가] 이번 타자는 말이 필요 없는 국민형아 전인권의 집이다. 삼청동 꼭대기에 있다.지지하는 대선후보를 밝혔다고, 몰려댕기며 형아를 못살게 구는 이상하고 황당하고 야릇한  빠돌아재 빠순언냐들은 왜 전인권이 국민형아냐며 또 악악대기 있기? 없기?  4차, 10차, 20차 촛불 무대에 세 번을 오른 형아다. 형아가 부르는 애국가를 들으며 다들 가슴을 부르르르 떨었을 테다. 누구를 지지하건 말건 삽자루는 그 노래가 좋을 뿐이다.

스케치북을 끼고 형아네 집에 두 번을 갔다. 물론 정재숙 언냐기자와 세트다.  3월25일 토요일, 약속은 오후 4시였다. 그런데 이게 뭐냐. 서울역에서 삼청동까지 가는 차편이 마땅찮아 택시를 타려니 경찰 횽아들이 길을 막고 있지 뭔가. 시청에서 태극기 집회가, 광화문에서는 촛불집회가 있는 날이었지만 규모가 줄어 차는 다닐 거라 생각한 게 잘못이었다. 길이 막히니 택시도 다니지 않았다.

결국, 서울역에서 이화여고 앞까지는 걸어서, 영천시장까지는 버스로, 다시 걸어서 사직터널 지나 경복궁역까지, 겨우 택시타고 삼청동까지 갔다. 마을버스 종점 길바닥에서 거의 한 시간을 서서 기다리고도 내색 않는 재숙언냐, 멋진 언냐.

형아네 집은 가파른 골목길 끝이다. 머리 처박고 헥헥 대며 한참을 올라가다 고개를 드니 거대한 바위덩이들 옆으로 대문이 덜컥 나타난다. 숲속에 우뚝 선 새하얀 대문은 현실과 비현실의 세계를 나누는 경계처럼 보인다. 늘어선 바위가 담벼락을 대신한다. 작업실은 바위벽에 바짝 붙어있고 살림집은 그 옆으로 난 돌계단 아래에 있다. 마침 장비를 바꾸는 날이라 작업실이 어수선해 이날은 스케치를 하지 못했다. 공간은 생각보다 많이 작다. 장정 너 댓이 들어서면 꽉 찬다.  (이 장면에서 형아와 재숙언냐와의 휘황찬란하고 역사적이고 감성 돋는 이너뷰를 걍 넘어가면 체한다. 아래 링크 누르면 장강보다 유장한 그 대하서사시가 출렁출렁.)

인권 형아와 재숙 언냐의 대하서사시를 보시려면, 클릭

삽: 재숙 언냐는 글을 쓰구 지는 작업실을 그리려구유.
전: 그림이요? 저도 그림 좋아해요. 어릴 때 지프를 그렸는데 할머니가 칭찬을 해줬어요. 학교 다니며 푹 빠졌지요. 여기 삼청동에서 남산동에 있던 명지중고에 다니다가 69년에 학교가 모래내로 옮겨가 그리로 다녔어요. 열일곱 살, 고1 때였어요. 그림 그리는 게 너무 좋은데 선생님이 공부하래요. 대들었다가 맞았어요. 공부 할래? 관둘래? 그러기에 몇 대 맞고 그길로 학교 안 갔어요. 학교 그만둔 거 이 동네에선 창피하지 않았어요. 내가 중퇴라도 이 동네에선 고학력자였거든요. 하하하하. 앞으로 서울 가까운데 파주 같은데다 널찍한 작업실을 만들어 그림 그리며 살 생각이에요.

전인권 작업실

전인권 작업실

음악과 미술은 소리와 색을 매개로 하지만 본질은 다르지 않다. 둘 다에 능한 예인들이 꽤 있다. 최백호의 그림은 전업 작가가 울고 갈 정도다. 한국화가 조용식은 북채를 잡고 판소리를 하며 기타 드럼까지 두드린다.

집 안팎을 둘러보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아래 동네 밥집으로 내려갔다. 맨발에 스니커즈를 신고 터덜터덜 걷는 형아 손에는 여전히 담배.

밴드 멤버들까지 모이니 모두 11명이었다.

삽: 어쩔라구 엽연초를 자꾸 태우시는 거유?
전: 아침에 빈속에 피는 맛을 알아요? 핑 도는 맛.
삽: 그래두 노래할 때 목에 나쁘텐데.
전: 괜찮아요. 소리는 뱃속 저 아래서 나와요.
삽: 때는 거르지않구 해 잡숴유?
전: 밥을 주로 집에서 먹어요. 찰보리밥에 강된장 비비면 아주 맛있어요. 집에 있는 게 편해 일주일씩 틀어박혀 있기도 해요. 가끔 내려와 동네식당에서도 먹고요. 뭐 드실래요. 쇠고기도 좋고, 항정살도 좋고. 저는 공연 3일전부터는 안심을 먹어요. 무대에 오르려면 힘을 쌓아놔야죠.

살아오며 검찰에 다섯 번을 불려간 형아, 다시 옛날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의지가 굳다. 약은 물론 술도 끊었다. 반잔 받은 소주도 마시는 시늉만 했다.

전: 제 나이 64예요. 요새는 파고다 공원에서도 제 노래가 나와요. 이제야 정신을 차렸어요.  제가 잘 해야 해요.
삽: 서울이 고향이지유. 저는 저기 충청도 저어기유.전: 아하하하, 저어기서 작년에 공연했어요.
삽: 거기 사람들 속을 잘 드러내지 않아 모으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요.  전: 그 동네 재미있어요. 공연준비 차 내려가서 택시를 탔어요. 기사가 여성분이었는데 그러는 거예요. ○○○ 공연에 30명이 왔대요. △△△가 공연할 때는 체육관이 꽉 찼대요. 그런데 다 초대권이었대요. (○과 △는 무지하게 엄청나게 뜨르르한 카수) 이거 큰일 났다 싶었지요. 자리가 텅 비면 어쩌나 걱정에 바짝 쫄았는데 충주문화회관 연속 공연 좌석이 꽉 찼어요.
삽: 1962년부터 살았으니 삼청동 토박이어유. 그 시절 이 동네는 어땠어유?전: 제가 어릴 때 이 동네는 가난한 동네였어요. 피란민이며 없는 사람들이 몰려 살았지요. 저 옆에는 인디안 부락이라고 부르는 마을이 있었어요. 악만 남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지라 매일 싸움이 일어났어요. 호젓하게 데이트할 데가 별로 없던 시절이니 삼청공원에는 아베크족들이 많이 왔어요. 그래도 나는 이 동네가 좋아요. 삼청동은, 이 집은, 내게 자유를 줬어요.
삽: 이제 광고 같은 건 안 찍어유?
전: 안하려고 그래요. 어느 광고를 찍는데 24시간을 잡아놔요. 힘들어서 돈 돌려주고 집에 가고 싶더라고요. 뭐든지 나랑 안 맞는 건 빨리 포기하는 게 좋아요.

순수 영혼, 아이 심성. 재숙 언냐는 형아를 네 글자로 표현했다.

3월 30일 오후 3시에 다시 대문을 들어섰다.

전인권 작업실

전인권 작업실

삽: 성니임~우리 성니임~ 또 왔어유?(아니 얘가 약 먹었나? 하는 표정의 형아)
전: 뭐 좋은 일 있어요?
삽: 성님 얼굴 보는 기 좋은 일이지유.
전: 하하하하삽: 작업실이 좁지 않어유. 멤버들 모이면 꽉 차겠어유.전: 이래봬도 녹음까지 가능해요. 비틀스도 이 정도는 안됐어요. 이만하면 부족하지 않아요.
어지럽던 작업실은 며칠 새 말끔해졌다. 삽자루가 스케치를 하는 동안 형아와 재숙언냐는 뭐라뭐라 쏼라쏼라 알콩달콩 한참을 인터뷰.

-요즘 음악은 화장이 너무 진해. 화장 없는 게 최고야. 주관 없는 노래는 소음이지. 자신이 있으면 시끄럽지 않은데.형아는 하얀 시트를 씌운 침대에 앉아 기타를 조율하며 들릴 듯 말 듯 혼잣말을 했다.

맨발로 딛고 선 바닥, 형아의 노래는 밑바닥을 향한다. 더는 내려갈 수 없는 곳, 거기서는 모두가 같고 서로 마음이 통한단다. 그러고 보니 김훈 아재의 막장론과 인권 형아의 밑바닥론은 통한다. 밑바닥과 막장은 끝이 아닌 시작인 셈이다.

대문에는 형아 이름과 주소가 영글리로 붙어있는데 SAMCHUNG에서 N을 빼먹어 SAMCHUG으로 돼있다. 업자가 실수인지 일부러 그런 건지 물어보지 않았으나, 형아의 어눌한 말투와 허술한 궤적과 오버랩이 돼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

<새로운 꿈을 꾸겠다 말해요>
전인권의 세종문화회관 첫 단독공연 타이틀이다.  두 번으로 계획했다가 무더기 해약사태로 한 번만 연다.
6일 오후 4시.

그림·글=안충기 기자 newnew9@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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