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스트리트 초대형 은행 쪼개겠다”는 트럼프의 말은 정치적 수사(修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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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월가의 초대형 은행에서 투자은행과 상업은행의 기능을 분리하는 ‘글래스 스티걸법’을 다시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대형 은행을 쪼개자는 의견을 지지하느냐”는 질문에 “옛날 시스템으로 돌아가고 싶은 사람들도 있지 않느냐. 현재 적극 검토 중에 있다”고 답했다.
대공황 직후 1933년 도입된 이 법은 미국인의 저축이 변동성이 큰 자본시장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1999년 빌 클린턴 행정부가 금융업종 간 장벽을 허물어 규제를 완화하고 경쟁을 촉진한다는 이유로 폐지했고, 이를 계기로 월가에서 상업은행과 투자은행 업무를 함께 하는 초대형 금융회사들이 탄생하게 됐다.
이 때문에 글래스 스티걸법의 부활은 규제 완화를 통한 성장이라는 트럼프의 경제 정책에 역행하는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2월에는 금융 규제를 강화하는 내용의 ‘토드 프랭크법’(2010년)의 일부 내용을 폐지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해 규제 완화의 깃발을 올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운동기간 줄곧 “글래스 스티걸법의 21세기 버전을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2016년도 공화당 강령에도 글래스 스티걸법의 부활과 토드 프랭크법의 수정을 함께 포함시켰다. 당시 CNN방송은 “금융 규제 완화와 강화를 동시에 추진하는 것은 일견 모순되고 혼란스러워 보인다”면서 “거대 은행을 쪼갠다는 공약은 지지자들을 향한 정치적 메시지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CNBC방송도 “글래스 스티걸법의 부활에 반대한 힐러리 클린턴 후보를 공격하고, 이 법의 부활을 지지하는 버니 샌더스 후보의 지지자들을 흡수하려는 전략”이라고 해석했다.
법 개정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정치적 리스크를 질 위험도 없다는 분석이다. 블룸버그는 “오바마케어와 대대적인 세제 개편이 걸려 있는 마당에 대형 은행 분리 방안이 의회에서 빠른 시일안에 처리될 가능성은 낮다”고 전했다. 블룸버그 인텔리전스의 네이선 딘 금융정책 애널리스트는 “글래스 시티걸법이 2017년에 부활할 가능성은 조금도 없다”고 밝혔다.
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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