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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팅 앱 170개, 러브 택시까지 … 속전속결 데이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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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2030 달라진 연애 풍속도 

최근 들어 젊은층을 겨냥한 이색적인 데이트 이벤트가 부쩍 늘고 있다. 한 소셜데이팅업체가 마련한 행사인 ‘소개팅 택시’가 대표적이다. 소개팅을 위해 만난 30대 직장인 남녀를 태운 소개팅 택시가 서울 강남 압구정동 거리를 지나고 있다. [사진 이음소시어스]

최근 들어 젊은층을 겨냥한 이색적인 데이트 이벤트가 부쩍 늘고 있다. 한 소셜데이팅업체가 마련한 행사인 ‘소개팅 택시’가 대표적이다. 소개팅을 위해 만난 30대 직장인 남녀를 태운 소개팅 택시가 서울 강남 압구정동 거리를 지나고 있다. [사진 이음소시어스]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강남역. ‘러브 택시’ 등(燈)을 단 택시가 모습을 드러냈다. ‘일일 택시기사’가 된 소셜데이팅업체 직원이 대기업 직원 박모(31·남)씨와 은행원 홍모(26·여)씨를 태웠다. 두 사람은 소개팅을 목적으로 처음 만난 사이다. 직원이 간식을 제공하며 분위기를 띄우자 두 사람 간 서먹함이 조금씩 깨졌다. 양재역, 양재시민의숲을 경유해 출발지로 돌아오는 40분 동안 차 안에는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택시가 목적지에 닿자 “이제 막 친해졌는데…”란 아쉬움의 탄식이 흘러나왔다. 김씨는 “서울 시내를 돌아다니며 낯선 이성과 가까워지는 경험이 신선하고 독특했다”고 말했다.

SNS 확산돼 지인 소개 미팅 퇴조 #“알음알음식 만남에 지루함 느껴” #‘소개팅 택시’ 이벤트 인기 끌어 #“시내 돌아다니며 데이트 신선해” #업체·지자체서 단체 미팅 주선 #서초구청“3년간 커플 30쌍 매칭” #소개팅 앱에 허위 정보 적지 않아 #그릇된 외모지상주의 부추기기도

최근 한 소셜데이팅업체가 마련한 ‘소개팅 택시’ 이벤트다. 이 업체는 미혼 남녀 60명(30쌍)을 모집했다. 1000명이 넘게 지원할 정도로 관심이 높았다. 공무원, 대기업·스타트업 직원, 전문직 종사자 등 지원자의 배경도 다양했다. 업체 관계자는 “‘택시 안’이란 제한된 공간을 데이트 장소로 활용, 신선함을 선호하는 젊은층의 취향을 만족시켰다”며 “여성 신청자 비율(60%)이 남성보다 더 높았다”고 말했다.

소개팅 문화가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소개팅 택시 같은 이벤트형 만남, 사진을 보며 이성을 골라 만나는 스마트폰용 소개팅 앱 등 ‘속도’와 ‘효율성’을 중시하는 데이트 문화가 젊은 세대 사이에서 빠르게 자리 잡고 있다. 과거 이성과 만나기 위해선 지인 주선의 소개팅이나 대학 미팅이 흔한 공식이었다.

소개팅 앱은 앱에 올려진 이성의 사진에 호감을 표한 뒤 상대방이 이를 받아들이면 ‘매칭’돼 실제 만남으로 이어진다. 일부 앱은 회원 가입 절차도 까다롭다. 이미 가입한 이성 회원들이 가입 희망자 사진을 확인한 뒤 점수를 매긴다. 일정 점수를 넘겨야 가입이 가능하다. 한국소비자보호원은 시중의 소개팅 앱이 170개, 회원 수가 330만 명(2015년 기준)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소개팅 앱 ‘아만다’(아무나 만나지 않는다)의 장경원 마케팅팀장은 “전체 회원 중 20대와 30대 비율이 각 70%, 30%가량 된다”고 말했다.

손동영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확산, 소셜데이팅업체 증가 등의 요인으로 소개팅 문화가 바뀌고 있다”며 “알음알음식 만남에 지루함을 느낀 이들이 눈길을 돌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결혼 앞둔 남녀는 ‘단체 미팅’=단체 미팅도 인기를 끌고 있다. 미혼 남녀 30~40명이 한 공간에 모여 5~10분간 개별 만남을 가지며 짝을 찾는 만남이다. 주요 결혼정보업체가 2000년대부터 열기 시작했다. 서초구청(2011년)을 시작으로 몇몇 자치단체도 최근 들어 이런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관내 직장인 남녀가 대상이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한다는 취지다. 유현숙 서초구청 여성보육과장은 “한 번의 행사에 50~60명의 미혼 남녀가 참여한다. 지난 3년간 80쌍이 참여해 30쌍의 커플이 매칭되는 등 만족도도 높다”고 설명했다.

소개팅 앱을 통해 이어진 30대 남녀 직장인들이 오프라인에서 만나고 있다. [사진 아만다]

소개팅 앱을 통해 이어진 30대 남녀 직장인들이 오프라인에서 만나고 있다. [사진 아만다]

대학은 연애·사랑학 강의를 잇따라 개설하고 있다. 사회 진출을 앞둔 대학생에게 올바른 연애관을 키운다는 취지다. 학생 커플이 단돈 1만원으로 하루 데이트를 즐기도록 하는 ‘결혼과 가족’(중앙대), 학생 커플이 함께 벽화마을을 걸으며 문화 체험을 하는 동명(同名) 강의인 ‘결혼과 가족’(동국대) 등이 대표적 인기 강의다.

소개팅 앱을 통해 이어진 30대 남녀 직장인들이 오프라인에서 만나고 있다. [사진 아만다]

소개팅 앱을 통해 이어진 30대 남녀 직장인들이 오프라인에서 만나고 있다. [사진 아만다]

장재숙 동국대 가정교육학과 외래교수는 “연애학 강의는 자신을 아끼는 자존감과 이성을 고르는 분별력을 길러준다”며 “미래의 배우자를 선별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소개팅 앱 신원 검증 불안=새로운 유형의 만남에 대한 불안감도 있다. 소개팅 앱 등은 신원 검증이 취약하고, 외모지상주의를 부추긴다는 지적이다. 김예리 동작구 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장은 “소개팅 앱은 외모로만 상대방을 평가토록 하는 그릇된 연애관을 주입시킨다”며 “일부 앱은 상대방에 대한 정보를 얻을 때 돈을 여러 차례 지불해야 하는 등 불건전한 소비 습관도 만든다”고 우려했다.

반론도 있다. 아만다를 운영하는 넥스트매치의 신상훈 대표는 “회원 가입 시 휴대전화 번호를 인증해야 하고, 상시 신고 제도를 운영하는 등 회원 관리가 철저하다”며 “실제 만남까지 최소 수십 만원이 드는 결혼정보업체에 비해 이용료(6000~7000원)도 훨씬 저렴하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지혜로운 소개팅 앱 사용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박두현 한국소비자보호원 홍보팀장은 “소개팅 앱에 기입된 (사진·직업 등) 상대방의 허위 정보와 관련된 민원이 적지 않다”며 “소개팅 앱으로 알게 된 이성은 가급적 공공장소에서 처음 만나길 권한다”고 말했다.

결혼정보업체는 회원 매칭, 단체 미팅에 치중하는 한편 단발성 이벤트는 자제하는 분위기다. 이재목 듀오 이벤트팀장은 “얼마 전까지 승마·애견 데이트 등 단발성 행사를 열었다. 그런데 ‘회원의 진솔한 만남을 이끌어내지 못했다’는 부정적 평가를 받고 끝내 접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젊은층의 소통력이 높아진 만큼 (회원 매칭, 단체 미팅 등) 복고(復古)식 만남 주선에 주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이 팀장은 2012년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솔로대첩’을 반면교사의 사례로 들었다. ‘여의도광장에 모여 짝을 찾자’는 몇몇 SNS 유저들의 제안으로 약 3000명이 모인 행사다. 이 팀장은 “참가자 대부분이 남성으로, 성별 비대칭 문제로 실패한 행사였다. 프라이버시를 중시하는 여성 성향을 무시한 결과”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김예리 센터장은 “한국 사회는 신뢰를 기반으로 한 만남을 여전히 중시한다”며 “반짝성 이벤트 등은 일시적인 유행에 불과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S BOX] 일본선 지역별 대규모 미팅 ‘마치콘’ 인기 … 경제 파급효과 1조6500억

해외에서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기반으로 한 만남이 활성화돼 있다. ‘민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소셜 데이팅’ ‘강아지를 키우는 사람들의 소셜 데이팅’이 대표적이다. 정치 성향, 취미, 특기 등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처음 만난 뒤 실제 연인 관계로 발전하는 것이다. 손동영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관심사를 접점으로 한 만남에 인터넷·SNS가 촉매제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단체 미팅도 활발하다. 실제로 미드 ‘섹스앤더시티’ ‘닥터하우스’를 보면 주인공들이 단체 미팅을 통해 연인을 찾는 장면이 적지 않다. 이재목 듀오 이벤트팀장은 “미국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미팅 행사를 연다. 한국에선 업체와 자치단체가 미팅을 주선한다”며 “‘지인’ ‘기관’이란 신뢰 기반을 우선시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일본에선 현지식 단체 미팅인 ‘마치콘’이 인기를 끌고 있다. 마치콘은 거리·지역을 뜻하는 ‘마치(街)’와 미팅을 의미하는 ‘고콘(合コン)’의 합성어로, 지역 단위로 이뤄지는 대규모 미팅이다. 소액의 참가비를 내면 주최측이 제공한 팔찌를 차고 동성 2인1조로 지역 음식점을 돌아다니며 이성과 만난다. 최근 간사이대학은 마치콘의 경제적 파급 규모를 1431억엔(1조6500억원)으로 추정하며 상권 활성화 효과가 크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관련 학계 연구도 활발하다. 자신의 저서인 『댄 애리얼리 경제 심리학』에서 ‘외모가 뛰어난 사람끼리, 외모가 부족한 사람끼리 연애한다’는 ‘동류 짝짓기 ’ 개념과 그 연구 결과를 소개한 댄 애리얼리 미국 듀크대 경제학과 교수가 대표적인 이 분야 학자다. 그는 최근 소개팅 트렌드와 관련해 본지와 인터뷰에서 “SNS·소개팅 앱을 통한 만남이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건 사실”이라며 “다만 사용자가 ‘초기 감정’에 매몰돼 인스턴트식 만남을 반복할 우려가 있다. (속도와 재미보다는) 이성을 고를 선택권이 넓다는 데 의미를 두는 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조진형 기자 enis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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