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7개 협력사 ‘을들의 갑질’ … 1조8000억 알루미늄 납품 담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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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우리 이번에는 3264원으로 가고요….”

입찰 전날 순위·금액 등 입맞춰 #4년 동안 1800억대 부당이득 #회장 등 임직원 13명 무더기 기소

2012년 9월 25일 경기도 과천 그레이스호텔에서 한 남성이 이렇게 말하자 옆에 있던 사람들이 “1순위(최저가)로 삼보산업이 60% 납품합시다” “그럼 2순위는 알테크노메탈이 25%” “3순위는 세진메탈이 15%로 가는 겁니다”며 일사불란하게 의견을 모아나갔다.

다음날 이들은 차를 타고 서울 양재동 현대자동차 사옥 8층에 다시 모여 전날 약속한 금액을 그대로 적어 냈고 그대로 낙찰받았다. 이들은 알루미늄합금을 납품하는 협력사 임직원들로, 이를 필요로 하는 현대자동차 등의 입찰 과정에서 알루미늄 공급가를 담합하다 무더기로 재판에 넘겨졌다.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세조사부(부장 이준식)는 현대자동차의 구매 입찰을 방해한 혐의로 알테크노메탈 회장 A씨(69)와 한국내화 부장 B씨(51) 등 7개 납품업체 임직원 13명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27일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7개 사는 2012년 9월~2016년 12월 모두 28차례에 걸쳐 투찰 가격, 낙찰 순위 등을 담합해 총 1조8525억원어치 납품을 낙찰받은 혐의(입찰방해)를 받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주로 울산에 공장이 있는 이들은 입찰 하루 전 경기도 과천이나 인덕원의 호텔에 모여 투찰 가격, 낙찰 순위 등을 담합했다 ”고 설명했다. 또 “일반적인 담합사건의 경우 영업담당 실무자들이 모여 담합을 모의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 사건은 입찰 물량이 막대해 대표이사 등 임원들이 담합회의에 직접 참여했고 이후 기업 총수에게 회의 결과를 즉시 보고해 승인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이에 검찰은 7개 사 중 6개 사의 회장 또는 대표이사를 기소했다. 검찰 관계자는 “이번 사건은 속칭 ‘을’의 위치에 있는 납품업체들 전원이 담합해 갑의 위치에 있는 대기업을 농락한 사건이다”고 말했다.

앞서 검찰은 지난 3월 A회장 등에 대한 조세포탈 및 횡령 사건을 수사하던 중 그를 비롯한 알루미늄합금 납품업체 전부(7개 사)가 참여한 담합 정황을 파악하고 수사에 나섰다. 지난달 현대자동차 등 입찰 담당자를 조사하고 관련 입찰 자료를 확보한 검찰은 최근 7개 사의 회장과 대표이사, 실무자 등을 조사해 이들로부터 “담합한 게 맞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했다.

담합으로 얻은 부당이득 규모는 전체 입찰액의 10% 상당(1800억원대)에 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수사팀 관계자는 “2012년부터 2016년까지 7개 사가 납품한 알루미늄합금은 쏘나타·산타페 등 총 300만 대의 자동차 생산(엔진 실린더, 변속기 등)에 사용돼 이를 구입한 국민들에게 담합 피해가 전가됐다. 계산해 보면 자동차 한 대당 1만원 정도의 생산 비용이 증가한 셈”이라고 설명했다.

현일훈 기자 hyun.il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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