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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기의 反 금병매] (116)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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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금련은 중들의 지시에 따라 불상 앞에서 향을 피우고 남편의 위패를 태워도 좋다는 글이 적힌 종이에 서명을 하였다. 중들은 소복을 입고 곱게 화장을 한 금련의 모습을 자꾸만 훔쳐보느라 독경을 하다가 틀리기도 하고 북을 두드리다가 박자를 놓치기도 하였다.

촛대를 잡으려던 중은 향 그릇을 집어들기도 하고 향을 사르던 중은 옆에 놓인 꽃병을 넘어뜨리기도 하였다. 축문을 읊을 때도 대송(大宋) 어쩌고 하는 구절을 대당(大唐) 어쩌고 라고 읽고 무대랑을 대무랑이라고 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무대랑을 대무랑이라고 할 때는 중들도 자기들끼리 킥킥거리며 웃음을 참느라 애를 썼다.

가장 큰 실수는 경쇠를 치던 중이 방망이를 잘못 휘둘러 수좌승의 까까머리를 치고 만 것이었다. 그래도 다행히 수좌승의 머리는 깨어지지 않고 혹만 불거져 나왔다.

금련은 중들이 자신의 모습에 반하여 정신들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시치미를 떼고 다소곳이 제사를 거들기만 했다. 그 모습을 보고 누가 남편을 독살한 여자라고 여길 것인가.

제사에 함께 참여하면서 비용까지 대어준 서문경은 중들이 금련에게 은근히 추파를 던지는 것을 눈치채고 언짢아졌다.

'세상에 중들도 다 마찬가지야. 예쁜 여자를 보면 저렇게들 침을 흘리니. 그래서 옛말에 아무리 덕을 쌓은 스님이라도 여자를 탐하지 않는 자는 드물다고 하였구먼. 중들에게 자기 여자를 빼앗긴 남자들이 중을 놀리는 말이 일리가 없는 것도 아니야. 중을 한 글자로 하면 승(僧)이고, 두 글자로 하면 화상이고, 세 글자로 하면 귀락관이고, 네 글자로 하면 색중아귀(色中餓鬼)라고 하더군. 중들에게 얼마나 당했으면 그런 말들까지 나돌까.'

서문경은 중들이 금련을 흘끔흘끔 훔쳐볼 적마다 속으로 '저 색중아귀들'하며 신경을 곤두세웠다. 귀락관이라고 하는 것은 색중아귀와 비슷한 말로 귀신같이 쾌락을 즐기는 자들이라는 뜻이다. 정말이지 종교의 탈을 쓴 색마들은 귀신도 모르게 여자를 농락하며 쾌락을 즐기는 비법을 터득하고 있는 자들이다.

제사를 도와주는 왕노파도 중들이 금련에게 마음이 빼앗겨 있는 것을 보고는 고개를 돌리고 혀를 찼다.

'제사에는 관심이 없고 제사 드리는 여자한테만 정신이 쏠려 있군. 독이 변하면 독이 된다더니(轉禿轉毒).'

독(禿)은 대머리 독으로 중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중들은 점심 때 채소로 식사를 하고 나서 저녁 무렵 다시 금련네로 오기로 하고 일단 절간으로 돌아갔다. 그 사이에 서문경과 금련, 왕노파 들은 중들의 추태에 대해 한 마디씩 하며 웃음보를 터뜨리기도 하였다.

"중들만큼 편한 직업도 없을 거요. 신도들이 바치는 시주로 먹고 사는 문제 다 해결되니 걱정할 것 없고. 우리 같은 남자들은 돈 버느라 신경 쓰고 어쩌고 하느라고 정신과 몸이 피곤하여 밤에 여자 안을 힘도 없을 때가 많은데, 중들은 마음이 편하니 기운도 넘쳐나 정력으로는 다른 남자들이 당해낼 재간이 없지."

"그래서 사람들이 중이 절간에서 무슨 짓을 하든 상관할 바 아니지만 집안으로 끌어들여서는 안 된다고들 하나 봐요. 제사 드리기 위해 부득이 오도록 했는데도 제사에는 통 관심이 없으니."

"불교가 처음에 우리나라에 들어왔을 때는 고매한 스님들도 많았다던데 불교가 널리 퍼진 요즈음에 와서는 중들도 돈과 여자에 눈을 떠 신도들에게서 뜯어낼 궁리만 하고 몰래 여자들 농락하기나 하고."

"아이구, 나 같은 나이가 되면 나를 농락해줄 중이라도 하나 있으면 좋겠다. 그럼 나도 가서 잠시 쉬다가 오리다."

왕노파가 물러가고 서문경과 금련은 집에 남아 다시금 깊은 애무를 나누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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