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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바지 정리 중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뭐니뭐니해도 신경이 날카로와 질대로 날카로와 진 딸아이의 비위를 맞추는 게 제일 어렵습니다. 발소리·문소리·말소리를 다 죽이고 수도물도 소리 안나게 가만가만 틀면서 그야말로 숨죽이고 살지만 언제 무슨 이유로 짜증을 부릴는지 아무도 모르거든요』 이정애씨 (43·주부·서울강남구대치동)는 고3짜리 딸 못지 않은 심리적 압박감과 피로 때문에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만 같은가 하면 자포자기해버리고 싶은 충동을 이겨내느라 불면증과 신경쇠약에 시달리다 최근 40일 새벽기도 (매일 상오4시)를 시작하면서 가까스로 마음을 추스르고 있다고 털어놓는다.
딸이 부탁한 시간에 깨워도 못 일어나서 30분이나 1시간쯤 후에 다시 깨워주면 『왜 이제 깨웠냐』며 화내고, 저녁마다 따뜻한 밥을 지어 학교로 갖다줘도『국이 미지근해졌다』는 등 하면서 도시락을 그냥 가져오는가 하면, 한밤중에 간식을 갖다주면 『내가 공부 안하고 잘까봐 그렇게 야단이냐』며 신경질을 부리는 통에 『도대체 누굴 위해 하는 공부길래 그리도 유세냐』고 한바탕 야단이라도 치고 싶지만 『그래, 엄마가 미안하다』며 웃어 주자니까 때론 비참한 생각조차 든다는 것.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신경이 과민해진 수험생들과 그 가족들은 팽팽한 긴장속에서 식욕부진·소화불량·두통·신경성 위장병 등으로 시달리는 예가 흔하다. 아이템플 화신학원 정신상담실장도 『두통약과 소화제를 찾는 재수생들이 하도 많아 늘 갖춰두고 있다』며 심지어 『차라리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호소하는 재수생들을 갖은 위로의 말로 달래느라 진땀을 뺀다고 전한다.
『수험생들은 요즘 총정리 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강박관념에다 원서접수를 앞두고 대학과 학과선택에 따른 심리적 갈등까지 겹쳐 가장 괴로운 시기』라는 서울 대원여고 남봉철 교감은 『그런 상황에 부모의 초조한 심정까지 드러낸다면 불에다 기름을 붓는 격』이라며 부모의 여유있는 자세를 강조한다.
입시철이 가까와지면서 매스컴에 잇따라 보도되는 예상합격선이나 경쟁률 등에 놀란 학부모의 불안으로 수험생까지 동요되어 가장 중요한 막바지 황금시기를 허송하는가 하면, 생활리듬이 깨져 병이 나는 바람에 정작 대학입시에서는 평소의 실력조차 발휘하지 못하는 수험생도 흔하다는 것.
『수험생이 지나친 긴장을 풀고 편안한 마음으로 마지막 총정리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은 물론, 학부모나 그 밖의 가족들도 「우리뿐 아니라 70만 수험생과 그 가족들 모두가 겪는 어려움」이라는 생각으로 지나치게 과민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수험생이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돕는 길』이라고 고교입시담당 교사 및 진로상담 전문가들은 임을 모은다.<김경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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