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이럴 땐 ‘산 넘어 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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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표심을 잡기 위한 대통령 후보들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정책 대결 못지않게 비방전도 가열되는 양상이다. 이때 자주 등장하는 표현이 ‘산 너머 산’이다.

“문재인·안철수 양강 구도가 형성된 가운데 갈 길 바쁜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의 대통령 후보 단일화는 ‘산 너머 산’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지지율이 급상승했지만 조폭, 차떼기, 딸 재산 공개 등 대선 승리까지는 ‘산 너머 산’이다”와 같이 표현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럴 때는 ‘산 너머 산’이 아니라 ‘산 넘어 산’이 올바른 표현이다. 단순히 산 뒤의 공간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갈수록 더욱 어려운 지경에 처하게 됨을 산을 넘는 행위에 빗대 설명한 것이기 때문이다.

‘너머’는 높이나 경계로 가로막은 사물의 저쪽 또는 그 공간을 이르는 말이다. “철책 너머 북한 마을에는 적막감이 흘렀다” “유리창 너머 광고판으로 그의 시선이 쏠렸다”처럼 사용한다. 철책을 넘고 유리창을 넘는 게 아니라 철책과 유리창 저편의 마을과 광고판을 가리키는 것이므로 ‘너머’가 오는 게 적절하다.

‘넘어’는 동사 ‘넘다’를 활용한 표현이다. 산이나 담장 따위의 높은 부분의 위를 지나가다, 강이나 국경 등 경계를 건너가다 등의 동작을 나타낸다. “재를 넘어 겨우 마을에 도착했다” “말들이 목장주의 감시가 소홀해진 틈을 타서 울타리를 넘어 밖으로 나갔다”와 같이 쓰인다.

어떤 장소를 지칭할 때는 ‘너머’를, 움직임을 나타낼 때는 ‘넘어’를 사용한다고 이해하면 쉽다. ‘산 너머’가 산 뒤의 공간을 가리키는 것이라면 ‘산 넘어’는 산을 넘는 동작을 말하는 것이다.

이은희 기자 e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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