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퓰리처상 수상자들 가운데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등 권력자들의 그늘을 조명한 기사들이 많았다. 지난해 공화당 대선 후보였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기부 활동을 추적하고 그의 여성혐오 발언 녹취 파일을 보도한 데이비드 파렌트홀드 워싱턴포스트(WP) 기자가 국내 부문에서 수상했다. 논평 부문은 지난해 대선의 트럼프 현상을 분석한 페기 누넌 월스트리트저널(WSJ) 기자에게 돌아갔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패권 야욕을 파헤친 뉴욕타임스(NYT)가 국제 부문에서, 필리핀 정부의 무자비한 인권 탄압 현장을 포착한 프리랜서 사진기자 다니엘 베레훌락이 사진 속보 부문에서 상을 차지했다.
약자를 향한 권력 기관의 횡포를 폭로한 기사도 대거 수상했다. 경찰의 불법적 이민자 추방 실태를 파헤친 타블로이드지 뉴욕데일리뉴스와 탐사보도 전문매체 프로퍼블리카가 퓰리처상 최고 영예인 공공 부문을 수상했다. 이날 뉴욕데일리뉴스 임직원들은 자사 뉴스룸에서 이 소식을 접하고 축배를 들었다(동영상 참조). 아이오와주의 작은 마을 부에나비스타 카운티에서 가족과 함께 소규모 매체 스톰레이크타임스를 운영하는 아트 컬렌은 지역 수질 오염을 방치해 농민들의 생계를 위협하는 시 당국이 농장주들의 이익단체인 전미농장협회로부터 자금을 지원받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해 사설 부문에서 수상의 영광을 차지했다.이번 수상자 발표는 끈질긴 사실 추적이라는 언론의 본령이 격동하는 디지털 환경에도 불구하고 흔들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재차 확인시켰다.
오히려 디지털 기술은 기자들의 취재력을 강화하는 무기가 됐다. 국내 보도 부문에서 수상한 파렌트홀트는 지난해 1월 트럼프 대통령이 참전용사 후원 단체에 600만 달러(69억원)를 기부한다고 발표하자 네 달 뒤 미국 각지의 313개 후원 단체를 전수조사해 트럼프 대통령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또 파렌트홀트는 일일이 수기로 작성한 취재 수첩을 트위터에 공개해 시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지난해 4월 사상 최대 규모의 조세회피처 자료 '파나마 페이퍼스'를 폭로해 해설보도 부문을 수상한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의 기사는 전 세계 300여 명의 기자들이 디지털로 협력한 결과물이다. 이 기사를 위해 세계 각지의 기자들은 인터넷으로 서로 소통하며 자료를 비교·분석하는 데이터 저널리즘 도구를 동원해 1150만 건의 문서를 빠른 시간 내에 기사화했다.
이날 발표를 맡은 마이크 프라이드 퓰리처상 선정위원회 사무국장은 "올해 수상자들은 기사를 통해 강력한 정치인과 제도에 도전하고 약자를 향한 구조적 착취를 드러냈다"며 "최근 대중들은 언론의 쇠락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이 기사들은 언론이 쇠락이 아닌 혁신 중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켜줬다"고 평했다.
프라이드는 이어 "디지털 시대는 오늘날 기자들에게 과거엔 상상도 못했던 도구와 자원을 준다. 이런 것들이 기자들이 가진 스토리텔링의 힘을 더 강하게 만들었다"며 그 사례로 동영상과 기자들의 협업, 데이터 저널리즘을 예로 들었다.
또 프라이드는 "기자들이 불편한 진실을 전달하기 때문에 늘 쉽게 비판의 대상이 된다"며 "그러나 비록 언론에 흠결이 있을지라도 왕성한 자유 언론은 민주주의의 주춧돌로 남아 있다. 비판적 언론의 힘은 갈수록 강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1917년 언론인 조셉 퓰리처의 유산으로 창설된 퓰리처상은 미국에서 가장 권위있는 보도·문학·음악상으로 보도 14개 부문, 문학·드라마·음악 7개 부문에서 수상이 이뤄진다. 올해 상금은 각 부문별로 1만5000달러(1724만원)다. 최고의 영예로 꼽히는 공공보도 부문 수상자에겐 금메달이 수여된다.
이기준 기자 foridealist@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