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틴경제]메기 잡아 가둔 어장 '은산분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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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케이뱅크의 성공적 출범으로 ‘은산분리 규제’에 대한 논란이 커지고 있습니다. 은산분리는 산업자본(기업)이 은행ㆍ보험ㆍ증권 등 금융회사를 소유하지 못하도록 법적으로 막아놓은 조치입니다.  예컨대 산업자본은 은행의 지분을 10%까지만 소유할 수 있습니다. 의결권 있는 주식은 4%까지만 보유가 가능합니다. 대기업이 금융회사를 소유할 경우 여러 가지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만들어졌습니다.

산업자본이 금융자본 지분 10%까지만 소유 허용 #의결권 있는 주식은 4%까지만 소유할 수 있어 #대기업의 '은행 사금고화' 막기 위한 규제지만 #일괄적 규제는 핀테크 시대에는 부적절 지적

대표적인 부작용은 대기업이 은행을 개인 금고처럼 사용하며 감시·감독의 눈을 피해 자금을 유용하고 횡령하는 범죄입니다. 대기업이 은행에 영향력을 행사해 돈을 불법대출한 뒤, 사적으로 사용할 거란 것이 ‘은행의 사금고화’ 주장의 핵심입니다.

이런 ‘일괄적 규제’로 인해 이제 막 출범한 케이뱅크는 앞길이 막힌 상황입니다. 케이뱅크의 지분을 8% 보유한 주요 주주인 KT의 경우 증자를 하더라도 지분율과 의결권이 각각 10%, 4%로 묶이게 됩니다. 케이뱅크 준비단계부터 사업을 주도해 온 KT로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입니다.

 때문에 인터넷전문은행에 대해선 은산분리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실제 산업자본이 34~50% 지분을 소유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은행법 개정안 등 은산분리 규제 완화와 관련한 5개의 법안이 국회에 제출돼 있습니다. 하지만 첨예한 대립 속에 관련 법안이 표류 중인 터라 케이뱅크와 출범 준비 중인 카카오뱅크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습니다.

물론 과거 ‘저축은행 파산사태’나 ‘동양증권 사태’ 등을 돌이켜봤을 때 은산분리 규제를 해소하기 위해선 ‘엄격한 관리·감독’이 필수적입니다. 2011년 상호저축은행의 대규모 파산 사태는 대주주가 상호저축은행을 사금고화해서 운영할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화한 사건입니다. 2013년 동양증권 사태 당시에도 동양증권이 동양그룹을 지원하기 위해 발행한 회사채와 기업어음(CP) 총 1조3032억원 중 9942억원이 지급불능 처리돼 개인투자자 4만여 명이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럼에도 은산분리 규제를 해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것은 ‘은행의 경쟁력 확보’ 때문입니다. 전세계적으로 거센 핀테크(금융+기술) 열풍에 뒤처지며 ‘금융 후진국’으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핀테크 사업인 인터넷전문은행마저 은산분리에 가로막혀 활성화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이는 한국 은행산업의 경쟁력을 갉아먹는 암초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철 지난 규제를 해소하면서도 동시에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신의 한수’가 필요한 때입니다.

정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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