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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기상캐스터의 외모와 실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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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양영유
양영유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양영유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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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창한 봄에 불청객은 염치를 모른다. 목구멍에도, 눈에도 달라붙는다. 기상캐스터들은 이 녀석에 대해 어떤 멘트를 날릴까. “미세먼지가 나쁨 수준이니 외출하실 때 마스크를 쓰세요.” 별 감흥이 없다. 문득 1970~80년대 스타였던 김동완 통보관이 떠오른다. “미니스커트 입기에는 추운 날씨입니다.” “장마는 아내의 잔소리라고 합니다.” “여우가 시집가는 날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생활 속담을 곁들인 그의 멘트는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구수하면서도 촌철살인의 한 방이 있었다. 그가 맑다고 하면 맑고, 비가 온다고 하면 비가 올 것으로 믿었다. 그랬다가 낭패를 당해 거친 말을 쏟아내기도 했지만.

텔레비전 날씨 예보는 영국 BBC방송이 1954년 처음 시작했다. 캐스터는 기상청 직원인 조지 카울링(1920~2009). 영국 지도를 붙여 놓고 연필로 기압도를 그려 가며 설명했다. 당시로선 파격이었다. 우리나라는 72년 TBC(동양방송)가 원조다. 국립중앙관상대(현 기상청)에서 일하던 김동완씨가 라디오에 이어 TV의 첫 기상캐스터가 됐다. 그는 늘 정장 차림이었다.

기상캐스터는 90년대부터 화려해졌다. 전문성·남성에서 외모·여성 중심으로 바뀌었다. 시청률 전쟁의 산물이었다. 국내 여성 1호 캐스터는 이익선씨다. 비가 오면 우비를, 눈이 오면 하얀 옷을 입었다. 다른 캐스터들도 따라 했다. 2000년대 들어 남성 캐스터는 거의 볼 수 없게 됐다. 연예인 뺨치는 미모와 몸매의 여성 캐스터 전성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런데 여성 캐스터는 대부분 계약직이다. 치열하게 노력해 인기를 끌다가도 결혼 등의 이유로 물러난다. 고민하던 한 지상파 방송이 몇 해 전 저녁 메인 뉴스에 남성 기상캐스터를 출연시키는 모험을 했다. 남성 시청자들의 항의를 받고 결국 두 손을 들었다고 한다. CNN·NBC·BBC 등 세계 유력 방송사들은 어떤가. 중후한 여성이나 남성이 대부분이다. 오랜 기간 진행해 안정감과 친근감이 있어 보인다.

그 이유가 있다. 미국은 기상캐스터 인증제가 엄격하다. 기상학 분야 전공자가 기상학회의 필기·실기시험을 통과해 인증을 받아야 마이크를 잡을 수 있다. 그런 캐스터가 900여 명이다. 영국은 대부분 기상 관련 전공이나 예보관 과정 이수자, 일본은 공인 기상예보사 시험에 합격한 사람만 캐스터가 될 수 있다. 전문성을 중시하니 전문직으로 장수한다. 우리 방송사들도 고민해야 한다. ‘전문성 불문, 외모 지상주의’로는 제2의 김동완은커녕 2년 근속자도 보기 어렵다.

양영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