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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반조각의 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가령 미국에서도 켄터키대학 농구팀과 캘리포니아대학팀이 맞붙는 경우 특별한 경우나 이유가 아니면 켄터키 사람은 켄터키 팀을, 캘리포니아 사람은 캘리포니아 팀을 지지·응원하는 것이 보통이다.
호남의 해태야구팀과 영남의 삼성팀 지지·응원도 마찬가지다. 같은 도내에서도 군과 군, 군내에서도 면과 면, 면내에서도 이 마을과 저 마을 팀이 무슨 경쟁·경주를 벌인다면 역시 같은 조건이면 자기 고향, 자기 마을팀을 부추겨 세우는 것이 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럽다.
문제는 이렇게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런 「지방기준」의 행동성향이 무지·무분별·편견의 산물인 「지역감정」이나 지역감정에 근거한 폭력으로 번지는데 있다. 「토인비」는 이 세상에서 가장 추악스런 것으로 민족적·인종적·종교적 편견을 들었다. 국제화시대·우주시대·지구촌치대에 사는 우리가, 더구나 급변하는 국제정치경제환경의 소용돌이 속에서 아직도 편집광적 권력아집의 굴레를 벗지 못하거나, 극히 퇴영적이고 시대착오적인 「지역감정」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은 오늘 한국정치의 빈곤이요, 비극이다.
중앙일보의 조사 (1987년 10월26일자) 에 의하면 대통령이 갖추어야 할 자격요건은 신뢰성 (56%), 건강 (18.9%), 소속정당(11.4%), 식견 (10.5%) 순이고 다행히도 출신지역은 1.4%라는 극히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경우 투표권자가 대통령을 선택하는 기준으로 보통 대통령후보의 소속정당, 그의 인간 됨됨이, 그리고 그의 정치 및 정책 청사진등 크게 세가지를 든다.
소위 3P(Party, Personality, Policy) 이외에도 투표권자의 입장에서 보면 대통령후보가 그와 같은 종교나 종파인가, 같은 민족·인종(폴란드인·이탈리아계·백인·흑인등)인가, 같은 이념적 정향(보수·진보·중도등)을 갖고 있는가, 같은 지역(동부·남부·중서부·서부등) 출신인가등 대통령후보를 선택하는 준거기준이 많다. 따라서 같은 주 또는 지역출신을 선호하는 것, 즉 지방기준은 투표행위의 여러 기준 가운데 「하나」일뿐이다.
만약 어느 투표권자와 A라는 대통령후보가 모두 같은 공화당소속이며, 동부 출신이며, 백인이고, 침례교 신자며, 이념적으로도 다같이 보수적이라고 가정한다면 이 투표권자는 「일관성있는 압력」(consistent pressuer) 때문에 A후보를 아무런 무리나 주저없이, 흔쾌히 지지할수 있다. 문제는 미국과 같이 다문화·다인종 복합사회에서는 위와같은 경우는 극히 드물고 대부분은 투표권자와 A후보가 당소속은 같은데 서로 정책정향이 다르다든지, 정책지표는 같은데 당소속이 다르다든지 등등 후보를 쉽게 지지·선택하기 힘든 소위 교차압력 (cross pressuer)을 받게된다.
실제로는 미국에서도 흑·백인사이의 인종적 기준이나, 특히 남부·서부·북동부·중서부 등등 지방기준이 합리적 차원을 넘어 몰표현상을 나타내는 것도 사실이다.
한국정치에 있어서 투표행위의 한 준거기준으로서의 「지방기준」이 아닌 지역감정이나 지방색은 미국에 비해도 그 정도나 열기뿐만 아니고 그 뿌리가 훨씬 깊다. 역사적으로는 영남세의 배경에는 6·25전쟁 복구 및 외국원조과정에서의 편파적 배분등은 물론 조선조·고려시대의 지배층 충원과정, 심지어는 후삼국시대, 삼국시대에로까지 거슬러 올라갈수도 있다.
사적증거물로는 백제인 고위 관리 등용을 억제한 고려대조 왕건의 십훈요 8조가 그 대표적인 보기다.
정치·사회적인 측면에서 보면 미국과는 달리 한국은 고도의 동질문화·민족사회이기 때문에 다른 어느 기준보다 지역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 같다.
더구나 일본·한국과 같이 당은 비좁고 자리는 적고 원하는 사람은 많고 하는 특수성은 소위 지맥·인맥·학맥이라는 「삼재」 현상을 낳았고 이것이 악용·오용될 때는 정치의 「삼재」가 될수도 있다. 보다 직접적으로 「동서현상」문제는 제3, 제4공화국의 주역 박정희대통령의 정치와 정책이 영·호남 지역감정을 더욱 조장하고 첨예화했다는 점에서 그의 가장 큰 과오의 하나다.
순수한 지방기준이 아닌 지역감정이 정치무대를 흐리는 경우엔 대통령선거전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후보간 정책대결을 뒷전에 처지게 할 뿐 아니라 지역대표성만을 갖는 인물 위주의 대결로 지역적 3분단·4분단의 「쪼개기전략」으로 타락, 국민·국가 화해·화합을 좀먹게하며 더구나 인구·물적자원등에서 유리한 특정지역이 엘리트 충원과정에서 뿐만 아니라 대권마저 계속 누리게 된다는 「구조적 결정론」에 휘말릴수도 있다.
순수한 지방기준의 지역감정화나 특정지역에 기반한 중앙권력의 횡포를 막기 위해서는 우선 선거과정에서 1차적 관심과 초점이 후보간의 정책대결과 경쟁이 되는 것이겠다. 제도적으로는 지방자치제도의 조속한 실시로 「지방은 지방이」 대표함으로써 대통령과 같은 중앙권력기구의 지나친 지방의 존·편재경향을 막아야한다. 정치운영차원에서는 형평의 원칙에 입각해 「지역안배」 (부통령제 부활등으로)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한다. 마찬가지로 엘리트충원과정의 누작된 지역적편견· 편파성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흑인차별문제의 해결원칙으로서의 소위 긍정적 행동지침 (affirmative action program)같은 것도 참고의 대상이다.
요컨대 다가오는 대통령선거에서 후보의 자격요건으로 분단현실, 통일조국에 대한 청사진, 군정종식과 민간·민주정부의 수립, 당내 권위주의적 독재성의 지양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긴급한 것은 순수한「지방기준」이 아니고 편견·차별대우 및 정책으로까지 악화·악용된 동서현상, 3분단· 4분단 지역성 정치현실을 긍정적·건설적으로 해소·극복할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 제시다.
미우주비행사 「프랭크· 보먼」은 달쪽에서 지구를 보니 지구가 꼭 동전만 하더라고 했다. 우주시대의 이 작은 지구 위에서, 더구나 그 지구에서도 아주 작은 한 모서리에 자리잡은 반조각 한반도라는 촌락에서 다시 3분단·4분단하며, 내 동네·네 동네 찾으며 서로 헐뜯고 윽박지르는 악의에 찬 지역감정은 한국정치발전의 큰 장애물이다. 따라서 만약 투표권자로 대통령후보를 선택하는데 있어서 고려해야할 여러 가지 준거기준을 무시·배제하고 「지방기준」만이 유 일 의 행동지침인 것처럼 자신의 투표권을 행사한다면 그의 행위는 지역감정의 노출일뿐 결코 민주시민의 합리적인 권리행사일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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