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아프고 참담한 심정" ...'레이저 눈빛' 거두고 몸 낮춘 우병우

중앙일보

입력

“대통령님 관련해 참으로 가슴 아프고 참담한 그런 심정입니다.”

"자세 낮춘 로키 전략(low-key)으로 전환" 분석

6일 오전 9시 55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앞. 우병우(50)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검정색 차량에서 내리더니 미리 나와있던 검찰 직원에게 여러 번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이어 20 걸음 정도를 걸어가 검찰청사 정문 근처에 표시된 포토라인에 서서 ‘세 번째 피의자 소환조사를 받는데 할 얘기가 없느냐’, ‘국민에게 할 말이 있느냐’는 질문에 이같이 말했다.

‘세월호 수사에 외압을 가했다는 의혹을 인정하느냐’, ‘공무원 인사에 왜 개입했느냐’는 질문에는 “모든 것은 검찰에서 성실히 조사받으며 답변하겠다”고 말했고, ‘최순실은 여전히 모른다는 입장이냐’고 묻자 “네”라고 짧게 답했다.

이후 청사 1층 출입문을 통과해 엘리베이터를 타고 10층(첨단범죄수사 2부) 조사실로 향하는 내내 우 전 수석은 긴장한 듯한 표정이었다.

과거 검찰과 특검팀, 법원에 나왔을 때 보여준 고압적 태도와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지난해 11월 6일 가족 회사 '정강' 자금 횡령ㆍ배임 의혹 등과 관련해 검찰 특별수사팀에 소환됐을 때 그는 각종 질문에 “검찰에서 물어보시는 대로 성실하게 조사를 받겠다”거나 “들어가겠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우 전 수석은 당시 “가족 회사 자금 유용을 인정하는가”라는 질문을 받자 어이없고 불편하다는 듯이 눈을 감았다가 뜨면서 해당 질문을 한 기자를 노려본 뒤 “성실하게 조사 받겠다”고 해 "(눈빛으로) 레이저를 쏜다"는 등 빈축을 샀다.

올해 2월 18일 박영수 특별검사팀에서도 문화체육관광부 인사에 개입한 의혹 관련 질문에 “그런 모든 (의혹에 대해), 오늘 조사를 받겠죠”라고 맞받았다. 아들의 의경 복무 시절 ‘보직 특혜’ 의혹에 대해선 “그동안 충분히 밝혔다”고 말했다.

이어 같은 달 23일 영장실질심사에 앞서 서울중앙지법에 도착해서는 “구속되면 마지막 인터뷰일 수도 있는데 한마디 해달라”고 하자 그는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2초 가량 기자를 아래위로 훑어봤다. 그리고 정면과 기자를 번갈아 쳐다보면서 “법정에서 제 입장을 충분히 밝히겠다”고 답했다.

이 때문에 이날 우 전 수석이 검찰청에 나오기 직전 기자들 사이에선 "이번에는 누가 레이저를 맞는 것이냐"는 말도 나왔지만, 이날 보여준 모습은 달랐다. 우 전 수석이 포토라인에 서서 '참담하다'고 심경을 밝힌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이에 대해 지방의 한 차장검사는 "검찰의 강도 높은 수사가 예상되고, 구속영장 청구 전망이 나오니까 이번에는 몸을 낮추는 로키 전략(low-key)을 쓰는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현일훈 기자 hyun.il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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