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말 들으면 손해 볼 일 없다” 말에 불 지른 40대 징역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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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말 들으면 손해 볼 일 없다고요? 내가 엄마 말 잘 들었다가 이 모양 이 꼴이 됐는데….”

 

 

지난 1월 20일 오후 5시경 서울 성북구의 한 편의점에 불을 지른 박모(48ㆍ남)씨의 어이없는 범행 이유다.한 달 전 “여자 말을 들으면 손해를 볼 일이 없다”고 말한 주인 배(60ㆍ여)씨에게 앙심을 품은 것이다.


황당한 방화 사건의 시작은 지난해 12월로 거슬러 올라 간다. 박씨는 화장지를 사기 위해 집 근처 편의점에 들렀다. 낱개의 화장지를 들고 계산대에 서자 주인 배씨가 “화장지는 낱개로 사는 것보다 다발로 사는 게 더 경제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자 말을 들으면 손해 볼 일이 없다”고 덧붙였다. 그게 화근이었다.

이를 마음에 둔 박씨는 한 달 후 편의점을 다시 찾았다. “내가 지금까지 엄마 말을 잘 들으며 열심히 살았는데 삶이 이 모양 이 꼴”이라고 화를 냈다. 즉시 사과할 것을 요구했지만 배씨는 “내가 잘못한 게 없는데 무슨 사과를 하느냐”고 반박했다.  

박씨는 사과를 받아내지 못하면 불을 지르겠다고 결심했다. 바로 라이터 1개를 구매하고, 이어 편의점 인근 주유소에서 휘발유 3000원 어치를 샀다. 휘발유 통을 들고 편의점을 다시 찾은 박씨는 “아직도 여자 말 들으면 손해가 없습니까”라고 물었다. 배씨가 “그렇다”고 하자 휘발유를 붓기 시작했다. 사과할 것을 재차 요구했지만 끝내 거부당하자 박씨는 불을 질렀다. 이 방화로 물건ㆍ계산대 등이 불에 타 300만원 상당의 재산 피해가 났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박씨를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사건을 조사한 경찰은 “박씨는 평소 정신 질환을 앓아 치료받은 전력이 있다”며 “직업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현존건조물방화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박씨는 지난달 31일 서울 북부지법 형사합의11부(부장판사 이성호) 재판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불길이 자칫 건물 전체로 번져 큰 인명 피해나 재산상 피해를 일으킬 수도 있었던 만큼 매우 위험한 범죄”라고 밝혔다. 다만 “박씨가 범행을 모두 인정하고 있고 다행히 불길이 편의점 안에 진열된 일부 물건에만 번졌을 뿐 크게 확대되지는 않았다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양형 사유를 덧붙였다.
김준영 기자 kim.ju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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