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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파일] 울지 않는다, 죽음도 삶의 일부니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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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프랑스의 프랑수아 오종 감독은 이제 자신을 더 이상 '악동'이라 부르지 말아 달라고 하는 듯하다. 그의 새 영화 '타임 투 리브'( 9일 개봉)는 잔혹 혹은 그로테스크함과 동의어였던 이전의 오종표 영화들과 확연히 갈라선다. 살인과 폭력, 섹스와 근친상간, 관음증으로 '비릿했던' 예전 작품에서는 쉽게 감지되지 않았던, 삶과 죽음에 대한 빼어난 인문주의적 통찰이 담겨 있다. 감독 자신의 말을 빌리면, 남편의 부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중년 여인의 이야기인 '사랑과 추억'(2000년)을 필두로 한 '죽음 3부작'의 하나다. 물론 오종은 '사랑과 추억'이후에도 '8명의 여인들'(2002년), '스위밍풀'(2004년) 등 예의 오종스타일 영화들을 만들어 왔지만, 이 영화로 악동의 타이틀을 확실히 반납하고 성숙한 어른의 세계로 성큼 뛰어든 것처럼 보인다.

게이 사진작가인 로맹(멜빌 푸포)은 어느 날 말기암 선고를 받는다. 일체의 치료를 거부한 그는 가족과 주변에 사실을 숨긴 채 혼자 주변정리에 나선다. 동거 중인 남자친구에게 결별을 통보하고, 어린 시절부터 앙숙이었던 여동생과 화해한다. 또 아버지 되기를 거부했던 게이이지만, 불임남편을 대신해 정자를 제공해 달라는 한 카페 여종업원의 제의를 받아들여 그녀의 남편과 함께 트리플섹스를 하고, 그렇게 생긴 아이를 자신의 상속자로 지정해 모든 재산을 넘긴다.

영화의 놀라운 점은 죽음을 바라보는 성숙하고 담담한 시선이다. 시한부로 죽어가는 젊은 남자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는 죽음 앞에 울부짖기보다 죽음을 삶의 또 다른 형태로 받아들이며, 자신의 최후를 스스로 선택하는 한 개인을 부각시킨다. 살 권리와 마찬가지로, 죽을 권리 혹은 어떻게 죽을지 까지도 선택한 로맹은 끝내 혼자서 '개인주의자'로 죽는다.

영화의 엔딩은 생명력이 넘치는 한여름 바닷가를 찾은 로맹이 해가 지고 사람들이 하나 둘 빠져나가자 홀로 남아 앙상한 몸을 바닷가에 누이는 것이다. 로맹은 해가 진 바닷가에 마치 자연의 일부처럼 벗은 몸을 편히 누이고, 암전되는 카메라 속으로 사라져 간다. 이 마지막 장면은 로맹이 스스로에게 행하는 '안락사'처럼 보일 정도다.

영화의 또 다른 명장면은 로맹이 할머니를 찾아가 처음으로, 그리고 유일하게 자신의 죽음을 털어놓는 장면이다. 이 할머니는 왕년의 명배우 잔 모로가 연기했다. "왜 나에게 비밀을 털어놓느냐"는 할머니의 질문에 로맹은 "우리는 같아요. 할머니도 이제 금방 죽을 거잖아요"라고 답한다. 오종 감독은 "실제 나이 많은 잔 모로에게 이런 대사를 시키는 것은 잔인한 일이고 그래서 편집과정에서 잘라낼까 고민이 많았다"면서도 "영화에서 아주 중요한 이 장면처럼 진실은 잔인한 경우가 많지 않은가"라고 반문했다. 국내 팬들에게는 낯설지만, 감독의 분신과도 같은 매력적인 외모의 사진작가 로맹을 연기한 멜빌 푸포는 감독이 시나리오 이전 단계부터 점찍어 두었다던, 프랑스 영화계의 기대주다.

양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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