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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수의 감정에 의존한 작품 그 무용수가 은퇴하면 무대는 …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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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5호 26면

[CRITICISM]‘스위트 맘보’ 안무가 사후 안무의 미래

피나 바우쉬 탄츠테아터의 2008년작 ‘스위트 맘보’가 3월 24일부터 27일까지 서울 LG아트센터 무대에 올랐다. 무용수 줄리 앤 스탄작이 거대한 흰색 장막 앞에서 연기하고 있다. [사진 LG아트센터]

피나 바우쉬 탄츠테아터의 2008년작 ‘스위트 맘보’가 3월 24일부터 27일까지 서울 LG아트센터 무대에 올랐다. 무용수 줄리 앤 스탄작이 거대한 흰색 장막 앞에서 연기하고 있다. [사진 LG아트센터]

독일 안무가 피나 바우쉬(Pina Bausch· 1940~2009)의 위력은 사후 8년이 지난 지금도 대단하다. 그녀가 감독했던 무용단인 부퍼탈 탄츠테아터는 지난 3월 홍콩-사이타마-서울에서 각각 ‘카페 뮐러’(1978)-‘봄의 제전’(1975)-‘카네이션’(1982)-‘스위트 맘보’(2008)로 아시아 투어를 했는데, 전 지역 전 공연이 매진이었다.

피나 바우쉬 사후 8년 지나도 #매진 행렬은 계속되지만 #체계적 교육으로 전수 안 해 #앞으로 무대 이어질지 우려

같은 시기, 영국의 잉글리시 내셔널 발레(ENB)도 지난달 23일부터 1일까지 런던 새들러스웰스에서 윌리엄 포사이스-한스 판 마넨 작품과 바우쉬의 ‘봄의 제전’을 묶은 트리플 빌을 상연했는데, 역시 모든 좌석이 팔렸다. 바우쉬의 ‘봄의 제전’은 그동안 부퍼탈 탄츠테아터와 파리 오페라 발레단을 제외하면 공연권을 갖지 못했지만 타마라 로호 현 ENB 감독의 끈질긴 설득으로 바우쉬 재단이 라이선스를 허락한 덕분이다.

2004년 가을 피나 바우쉬는 이듬해 초연이 예정된 한국 관련 신작을 만들기 위해 통영과 곡성을 방문했다. 당시 필자는 그에게 ‘봄의 제전’을 왜 부퍼탈 이외에 파리 오페라 발레에만 허락하는지 물었다. 바우쉬는 “내가 믿을 만한 사람이 그곳(파리)에 있기 때문”이라고만 했을 뿐, 자세한 이유를 밝히진 않았다. 2005년 파리 오페라 발레가 글룩의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체’(1975)를 초연 30년 만에 레퍼토리에 신규 편입할 때도 바우쉬는 발레단원들을 직접 인선하면서 작품의 질을 유지했지만, 이제 지금은 어디에서도 본인이 그럴 수 없다.

무용수와 강력한 상호작용으로 신작을 만든 안무가일수록, 사후에 자신의 작품이 변형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올해 칠순에 접어든 체코의 안무가 이르지 킬리안은 네덜란드댄스시어터(NDT)를 떠나면서 35년의 감독 기간에 만든 작품들의 공연권을 회수하고 있다.

바우쉬의 작품이 계속 흥행하고는 있지만, 크리에이티브진은 매 순간 저 세상에 있는 피나 바우쉬와의 대화가 필요하다. 지난달 24~27일 LG아트센터에서 열린 ‘스위트 맘보’를 바라보는 비평적 시선은 바우쉬 사후 그녀의 춤은 어떻게 될 것인가에 모아졌다.

“과거를 재현하라”는 공연 시장의 요구

1 40년차 탄츠테아터 단원인 헬레나 피콘의 연기. ⓒBettina Stoß

1 40년차 탄츠테아터 단원인 헬레나 피콘의 연기. ⓒBettina Stoß

2002년 바우쉬는 국립무용단 창단 40주년 기념 강연에서 “21세기 무용은 사람과 사람, 사람과 문화를 이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바우쉬가 연결하는 대상에는 관객도 포함된다. ‘스위트 맘보’에서도 무용수들은 실제로 관객이 공연에 개입할 여지를 마련했다. 행동을 따르라는 무용수의 권유나 방백 차원을 넘어, 관객이 손으로 무용수의 옷을 여미고, 댄서의 몸에 손을 대면서 육체가 현실이고, 객석이 육체를 느낄 수 있도록 무대를 열었다.

무대 위에서 무용수 간의 접촉은 더욱 수위가 높았다. 여성 무용수는 드레스의 어깨끈을 풀어 등을 노출하고 남성 댄서가 턱과 손, 얼굴로 애무했다. 남성의 무릎 위에 앉은 여성 댄서가 성행위를 이끄는 장면도 역시 바우쉬식 접촉의 일면이었다. 반응의 주도권을 여성 무용수(7명)가 쥐고, 남성 무용수(3명)가 일제히 반응하는 구조는 1980년대 중반부터 20여 년간 바우쉬와 부퍼탈이 이행한 ‘도시-국가 프로젝트’의 일관된 흐름과 이어지는 것이다.

‘스위트 맘보’는 무용수들이 자신의 정념을 개별적으로 표출하는 장면을 콜라주로 이어 붙였다. 바우쉬의 탄츠테아터에 군집 형태로 한목소리를 내는 모습이 드문 건 1940년대 독일 표현주의 무용의 흐름을 계승하기 때문이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관련 행사에서 군무와 매스게임 연출에 동원됐던 안무가들은 1940년대 솔로 댄스로 제 목소리를 냈고, 이는 과거사 반성의 발로였다. “과거를 답습하지 말라”는 독일 표현주의 안무가들의 주장은 2차 대전 이후 고유의 메소드나 체계적인 시스템을 만들지 않는 것으로 이어졌다.

바우쉬 사후 2009년 설립된 피나 바우쉬 재단은 역설적으로 바우쉬와 함께했던 “과거를 재현하라”는 시장의 요구에 직면해 있다. 1977년작 ‘푸른 수염’부터 바우쉬는 댄서에게 질문하는 방식으로 작품을 만들었고 ‘스위트 맘보’도 마찬가지다. 정해진 움직임이 아니라, 무용수의 감정을 존중하는 이들의 아카이브는 한동안 노장 무용수의 주도로 원형이 유지될 것이다.

문제는 그들이 은퇴한 이후, 바우쉬 춤의 운명은 교육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점이다. 가령, 한국을 소재로 한 ‘러프컷’(2005)에서 우리말로 자장가를 부르던 한국인 단원 김나영이 무용단을 나가면 이를 대체할 인력은 내부에 없다. 체계를 세우고 이를 전수하는 행태는 바우쉬가 춤 인생 동안 기피해 왔다는 점에서 부퍼탈 탄츠테아터는 난제를 안고 있다.

재현 공간을 넓히고 무용수에게 자유를 준 건 영화감독 빔 벤더스였다. 2009년 바우쉬가 갑작스런 죽음을 맞기 전까지, 무대 밖에서 집중한 작업이 벤더스와 함께하는 3D 다큐멘터리 제작이었다. 벤더스는 안무가가 영감을 얻는 원천이 도시에서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임에 주목하고, 무용수를 데리고 부퍼탈 도심으로 데리고 갔다. 한정된 공간에서 벗어나자 무용수들은 자연에 도전했고 과감하게 움직였다. 원형을 보이라는 극장 관객의 요구에서 벗어나자 개인의 상상력이 발현됐다.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라”는 바우쉬의 요구를 카메라가 되돌린 셈이다. 첨단 기술에 유연했던 바우쉬가 3D에 관심을 보인 이유를 부퍼탈은 궁리해야 한다.

‘스위트 맘보’는 로마에 머물며 만든 ‘빅토르’(1986)부터 인도 캘커타 배경의 ‘뱀부 블루스’(2007)까지 안무가와 무용단이 여행일기처럼 작성한 제작 형태에서 벗어났다. 안무가의 죽음을 예감할 만한 코드는 보이지 않고 무드 음악에 몸을 실어 드레스 차림의 여성들이 노래하거나 소리 내지만 상대가 들을 수 없는 불통 과정이 도입을 채운다. 인간 소외는 도시-국가 프로젝트에서 자주 보던 제재인데 공간적 배경이 증발하니 무용수들의 개인 역량이 두드러졌다. 초연에 비해 여성 무용수가 한 명 더 늘어난 것도 작품이 보강된 증거다.

남녀가 시선을 교차하지 않고 주로 여성 뒤에서 남성이 목덜미에 키스하는 방식은 여러 작품에서 보이는데, 부퍼탈 단원들이 2인무 제작에서 내놓는 감정 표현의 양태가 좁아진 느낌이다. 하얀 천에 바람이 불고 그 안에서 감각적인 테크닉의 솔로가 이어지지만 ‘봄의 제전’ 시절의 고난도 기교에 비할 수준은 아니다. 별다른 극적 영향이 없이 아름다운 장면이 반복됐고 전반부와 후반부 역시 데칼코마니처럼 같은 이야기가 되풀이되면서 두 시간이 흘렀다.

바우쉬가 보여주고 싶었던 무대란

2 두 남성 무용수에 의해 떠밀려 가는 무용수 줄리 섀나한. ⓒUrsula Kaufmann

2 두 남성 무용수에 의해 떠밀려 가는 무용수 줄리 섀나한. ⓒUrsula Kaufmann

바우쉬가 작품에서 자신의 주장을 펼친 공간은 중앙 스크린에 영사된 흑백 영화였다. 빅토르 투르얀스키(Victor Tourjansky) 감독의 1938년작 ‘푸른 여우’는 자신에게 관심을 잃은 남편을 대신해 새로운 남성을 찾는 헝가리 여인의 이야기를 담았다. 여성과 남성 사이에 위험한 감정을 대하는 차이를 영상으로 쏘고 무용수들의 춤으로 되짚었다. 22일 공연 관계자 프리뷰 공연에선 잘 보이지 않았지만, 25일 공연에선 희미하게 바우쉬의 의도가 잡혔다.

어린 시절, 바우쉬에게 전쟁의 상흔은 정해진 운명이었다. 방공호에 대피해 모두가 생존을 위해 숨죽이는 것을 봤고 생애 내내 우리와 우리를 둘러싼 세계에 대한 바우쉬의 시선은 따뜻했다. ‘스위트 맘보’를 올리는 무용단도 우리들처럼 위기가 함께한다. 생전의 바우쉬였다면 출구가 어딘지 모르지만 새 길을 가야하는 근원적인 동기를 알려주지 않았을까. 남녀의 갈등, 개인과 사회의 대립, 자연과 인간의 공존 같은, 현대무용에서 진부한 소재들을 가지고 피나 바우쉬는 사회와 시대를 비추는 미디어가 됐다. ‘스위트 맘보’도 그 변주곡 중 하나일 터다.

커튼콜에 무용수들이 등장하지만 바우쉬는 보이지 않고 관객은 그녀의 부재를 다시 확인한다. 역삼동 LG아트센터는 바우쉬 사후에도 부퍼탈 탄츠테아터의 아카이브를 통독했다. 2000년대 서울에 부퍼탈과 서구의 현대무용을 공급한 LG아트센터는 2020년 마곡으로 이전한다. 생전의 바우쉬가 ‘도시-국가 프로젝트’를 만들면 세계 저명 아트센터와 무용극장이 제작비를 분담하고 투어의 여정을 나눴지만, 이제는 옛날 일이다. 한국 관객의 열정이 강남에서 일어난 한동안의 호사로 끝난다면 누구보다 아쉬워하는 건 하늘에 있는 피나 바우쉬일 것이다.

피나 바우쉬는 1970년대 부퍼탈 탄츠테아터에서 성숙한 작품을 일구기까지 다양한 소양을 미국 줄리어드 유학 이전 조국의 예술교육 체계에서 쌓았다. 폴크방 예술고등학교에서 익힌 음악과 오페라, 연극과 무용, 회화와 조각, 사진과 디자인이 오늘날 그녀의 예술에 켜켜이 녹아 담겨 있다. 독일에서 막 이름을 얻기 시작한 신인 시절의 바우쉬에게 실패를 허용하고 다시 무대를 제공한 건 파리 시립극장이다. 영재 예술교육의 폭과 재목을 알아보는 기획자의 안목 역시 바우쉬의 유산을 살피면서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이다.

한정호 공연평론가

imbreeze@naver.com
한정호
월간 ‘객석’에서 클래식과 무용을 담당했고 공연기획사 빈체로에서 기획 및 홍보를 맡았다. 일본 오케스트라 연맹에 재직했고 런던 시티대 예술정책 석사 과정을 졸업했다. 국립무용단 자문위원을 지냈고 KBS 클래식 FM ‘스테이지 인사이드’ 코너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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