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는 일직선으로만 뜬다? 편견을 버리세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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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5호 12면

원형 활주로 가능할까 

공항 활주로는 반드시 일직선이어야 하는가. 아닐 수도 있다. 영국의 BBC가 최근 원형 활주로에 대한 아이디어를 소개했다. 네덜란드 항공우주센터의 끝없는 활주로(Endless Runway) 프로젝트다. 유럽 집행위원회(European Commission)의 재정 지원도 받고 있다.

네덜란드 항공우주센터 연구 중 #직선 활주로 3개 면적에 4개 효과 #이착륙 시 위험한 옆바람 원천봉쇄 #활주로 진입방향 맞출 필요도 없어 #조종사 저항, 교육비 증가 등이 난관

이 연구를 5년째 하고 있는 행크 헤셀링크는 “원형 활주로는 직선 활주로보다 환경 친화적이며 경제적이고 무엇보다 바람이 많이 불어도 이착륙이 가능한 획기적인 아이디어다. 급진적인 계획이지만 늘어나는 여행 수요를 충족시킬 진취적인 방법”이라고 BBC에 말했다.

원형 활주로의 지름은 약 3.5㎞다. 활주로는 사이클 벨로드롬이나 자동차 경주장처럼 주로의 바깥쪽이 높은 형태다. 빠른 속도로 달려도 활주로를 이탈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18개의 접근 포인트가 있고 이를 통해 비행기 3대가 동시에 이착륙이 가능하다. 원형 활주로에 필요한 면적은 직선 활주로 3개 정도다. 시뮬레이션 결과 직선 활주로 4개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헤셀링크는 말한다.

공항은 안전이 가장 중요하다. 헤셀링크는 측풍에 밀려 위험하게 착륙하는 비행기를 보고 연구를 시작했다고 한다. 착륙할 때 옆바람이 강하면 비행기가 흔들려 활주로에서 중심을 잃을 수 있다. 대형 사고가 나거나 착륙을 못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원형 활주로는 접근로가 다양하다. 바람이 약할 때는 가장 가까운 코스로, 강풍이 불 때는 안전한 맞바람이 부는 코스로 진입해 착륙할 수 있다.

또 활주로 진입 방향을 맞추기 위해 공항 주위를 선회해야 할 이유가 없다. 떠날 때도 목적지 쪽으로 이륙하면 된다. 그만큼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다.

소음 문제도 줄어든다. 현재 공항들은 접근 항로 지역의 소음이 극심하다. 공항은 이런 소음 지역의 집들을 구매하거나 소음방지시설을 만드느라 어려움을 겪는다. 원형 활주로는 비행기가 사방에서 날아들기 때문에 소음이 고루 분산된다.

원형 활주로를 만들려는 시도가 처음은 아니다. 한국에서 3·1운동이 나던 1919년 미국의 과학잡지 파퓰러 사이언스는 대도시 고층 빌딩 위에 동그랗고 경사가 진 활주로를 만드는 아이디어를 보도했다. 사람들이 활주로에서 사무실로 직행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였다.

성공적으로 테스트된 적도 있다. 반세기 전인 1965년 미국 해군은 원형 활주로가 다양한 비행기의 이착륙에 적당하다는 결론을 냈다고 시카고 트리뷴이 보도했다. 신문이 인용한 해군 보고서는 작은 공간, 다양한 접근로, 측풍 이착륙 가능 등 원형 활주로의 장점을 소개했다.

그러나 해군 보고서는 단점도 밝혔다. 원형 활주로에 대한 조종사들의 저항이 크다. 조종사들은 원형 활주로는 직선 활주로처럼 선이 아니라 점에 떨어져야 하기 때문에 갑자기 강한 뒷바람이나 맞바람이 불면 대형 사고가 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타이어의 마모, 교육비 등 비용 증가도 문제라고 봤다. 결과적으로 이 아이디어가 실현되지는 않았다.

전문가들은 21세기 다시 나온 원형 활주로 아이디어에 대해 기술적으로는 가능하다고 봤다. 그러나 곧 실현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다. 김응태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항공연구본부장은 “공항 구축의 근본 개념부터 달라지는 문제다. 공항 하나만 원형으로 만들기 어려워 현재로선 미래 기술로서 연구를 해 보는 차원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유단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는 “이런 공항을 만들려면 곡선 활주로에 착륙할 수 있도록 비행기 구조도 일부 바뀌어야 하며 조종사들의 저항도 있을 수 있고 활주로 하나에 18개나 되는 관제시스템을 만드는 것도 상당히 복잡한 과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백호종 한국항공대 항공교통물류우주법학부 교수는 “일단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미국 연방항공국(FAA) 등에서 표준화 및 허가를 받아야 한다. 미국의 보잉 등 메이저 비행기 제작회사가 운항, 관제, 공항 건설 등을 실질적으로 컨트롤하기 때문에 미국이 주도하지 않으면 현실성이 줄어든다”고 말했다.

성호준 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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