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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기득권층의 천국, 영국을 해부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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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책 속으로

책 속으로

기득권층
오언 존스 지음
조은혜 옮김, 북인더갭

528쪽, 1만9500원

정경유착·회전문인사 일상화 #법이 부패를 보장하는 나라 #작은 정부 표방하며 기득권 보호 #하이에크 신자유주의에 일침

‘이스태블리시먼트(The Establishment)’는 우리말로는 흔히 기득권층·지배층으로 옮긴다. 영영사전을 찾아보면 “어느 특정 그룹에서 권력이나 통제력을 지닌 구성원들”(웹스터 사전), “변화에 저항하는 것으로 인식되는, 사회에서 정책이나 취향에 권력과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룹” (옥스퍼드 사전) 등으로 정의된다.

영국의 기득권층의 실상을 해부한 『기득권층: 세상을 농락하는 먹튀의 귀재들(The Establishment: And How They Get Away With It)』은 우리 독자들을 묘한 상념에 잠기게 만들 책이다. 영국은 프랑스·미국과 더불어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본향이다. 우리나라가 민주화가 된 것은 30년밖에 안됐다. 『기득권층』은 민주주의 원조 영국이나 ‘민주주의 청년’ 한국이나 도긴개긴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자부심을 느껴도 되겠다. 우리는 영국이 300년 동안 이룬 것을 30년에 해치웠다.

이 책을 읽은 영국 독자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독자들 또한 분노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어떤 ‘보이지 않는 손’이 자꾸 오늘의 한국 상황을 떠올리도록 유도한다. 저자는 기득권층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부유한 엘리트가 민주주의 체제 내에서 자신의 이익을 방어하는 제도적·지적 수단.” 전작인 『차브』(2011)에서 희생자들인 노동자들을 악마화 시키는 기득권자들을 맹공했다.

영국은 왕의 나라도, 귀족의 나라도 아니다. 주권재민의 민주국가다. 하지만 기득권층은 진화를 거듭하며 자신의 이익을 지킨다. [중앙포토]

영국은 왕의 나라도, 귀족의 나라도 아니다. 주권재민의 민주국가다. 하지만 기득권층은 진화를 거듭하며 자신의 이익을 지킨다. [중앙포토]

『기득권층』은 이런 내용을 담았다. 저자에 따르면 영국은 세계에서 가장 부패한 나라 중 하나다. 법이 부패를 보장하는 나라다. 알고 보면 영국은 정경유착, 회전문 인사의 나라다. 기득권층은 국민의 ‘혈세’로 망해가는 기업을 살린다. 또한 영국은 엄청난 친미 국가다. 영미동맹은 기득권층의 권력 기반이다. 황당한 일도 있다. 대형 회계 회사들은 정부가 세제 정책을 꾸리는 데 도움을 준다. 회사들의 제안이 법이 되고 정책이 된 다음에 그들은 기업들에게 ‘합법적인 탈세’ 기법을 일러준다.

영국 기득권층은 계속 진화한다. 영국 기득권층에게 ‘출신’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사상’이다. 공통의 이익을 수호하기 위해서다. 사상에 답이 있다. 현재 영국 기득권층의 이데올로그는 오스트리아 출신 영국 경제학자·정치철학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1899~1992)다. 그는 신자유주의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다. 저자가 ‘앞잡이(outrider)’라 부르는 하이에크의 후예들은 사회민주주의에 기반한 영국 기득권의 컨센서스를 대체했다. 정치인·관료·경찰·금융인·언론인·종교인 등으로 구성되는 영국 기득권층은 작은 국가·정부를 표방한다. 하지만 이들은 동시에 국가의 최대 수혜자다. 그들은 보다 공정하고 평등한 사회를 바라는 국민·유권자의 꿈을 짓밟는다.

저자 또한 기득권층에 속한다. 그는 옥스퍼드대 출신이며 좌파의 아성 가디언의 칼럼니스트다. BBC에도 단골 출연한다. 하지만 그는 폭로하는 내부자다. 그는 이 책을 쓰기 위해 수많은 기득권자들을 인터뷰했다. 그들 또한 기득권층에 대한 비판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이 점에서 영국 기득권층은 건강하다.

사실 따지고 보면 한국과 영국은 역사적으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다. 고구려·백제·신라 통일은 668년, 그레이트브리튼 섬의 통일은 1707년에 성취됐다. 민주주의 종주국 영국이 누리던 헤드스타트는 이제 거의 사라졌다. 한국과 영국은 이제 출발선에 나란히 섰다. 앞서 나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영국이나 한국이나 기득권층의 적폐를 쓸어내야 하지 않을까. 저자는 이대로 가면 기득권자들이 영국의 미래까지 조작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S BOX] 기득권층이 잘한 건 없었나?

오언 존스의 주장에도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솔직히 이 책은 좀 편향된 것도 사실이다. 저자는 보수주의자들을 싫어한다. 『기득권층』이 출간된 후 좌파는 찬사, 우파는 비판을 쏟아냈다. ‘저자가 너무 어려서 잘 모른다’는 식의 치졸한 비난도 있었다. 일리가 있는 의문도 제기됐다. 비평가들은 다음과 같이 존스에게 묻는다. ‘기득권층의 장점·강점, 잘한 것도 있지 않은가.’ ‘마거릿 대처가 등장하기 전의 영국은 과연 문제가 없었을까.’ ‘선진국 기득권층이 신봉하는 신자유주의 덕분에 수십억 세계 인구가 가난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도 사실 아닌가.’ 저자는 ‘민주주의 혁명’에서 해답을 찾는다. 대중의 활동과 노조의 강화 등을 통해 부(富)를 재분배하는 혁명이다. ‘나이브하다’ ‘새로울 게 없다’는 평가도 있었다.

김환영 논설위원 whan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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