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방경위등 의문투성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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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지난달 27일 도재승서기관의 석방소식 1보가 전해진후 제네바공항에 처음 모습을 나타낼때까지의 5일간, 그리고 프랑크푸르트를 거쳐 김포로 귀국하기까지의 3일간등총 8일간의 일정은그자신도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하지 못할, 또한차례 생사의 고비를 넘는 긴박한 상황의 연속이었겠으나 그의 존재를 추적해온 취재기자 또한 마치 악령과의 싸움이나 같은 시달림을 겪어야 했다.
그것은 도서기관의 위치확인이 되지않은채 오리무중속의 숨바꼭질이 한동안 계속됨으로써 빚어진 초조함과, 그뒤 서울까지의 귀국동승과정에서 깊은 심신의 상처를 입은 그에게 또다시 취재원이 당할수밖에 없는 고통을 안겨주어야 했었기때문이다.
영화『빠삐용』의 절해고도를 연상시키는 절망적인 감금상태에서 풀려나 그것도 스스로 걸어나올수 있을 정도의 건강함을 보이면서 아전귀환이 이루어진 것만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도서기관이 하루라도 빨리 평범한 정상인의 생활로 되돌아가 과거의 악몽을 깨끗이 떨쳐버리게 되기를 바라는것은 비단 그 가족만의 염원은 아닐것이다.
그러나 이번사건을 줄곧 지켜본 기자로서는 죽음보다도 더 고통스러웠을 상황을 끈기있게 버텨낸 도서기관과 또 그를 구해낸 협상의 성과를 거둔 정부당국의 노력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한가지 숙제가 남아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수 없다.
그것은 도서기관의 석방과정에서 『1백만 달러의 몸값이 지불된데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는「나비·베리」레바논법무상의 기자회견 발언이 던진 불행한 선례다.
그는 물론 누가 그런 몸값을 지불했는지 밝히지 않았고 한국정부 소식통들도 몸값을 지불하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그래서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이 문제가 얼버무려질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몸값이 실제로 지불되었느냐는 「사실여부」와는 별관계없이 그런 의혹만으로도 기분나쁜 선례가 될수있다는 우려를 떨쳐 버릴수가 없다.
이런 선례는 국제 테러범들이 앞으로 비슷한목적을 위해 한국인을 인질의 대상으로 삼지 않을까하는 두려움을 갖게한다.
그렇기때문에 우리 당국자는 하루 속히 도서기관의 석방교섭의 전모를 분명하게 밝혀줘야 할것 같다.
단순한 부인성뎡만으로 세계에 나도는 풍문을 가라앉히기는 어렵다. 이번 사건에 임했던 당국의 태도를 떳떳하고 분명하게밝힐수 있어야 진정한 국민보호는 이루어 질수 있지않을까.
또 한가지는 도서기관이 장기간의 극한상황을 이겨낸 의지가 인간승리의 산 표본이 되고도 남으리라는 뜻에서 그가 겪어온 21개월의 감금생활이 자신의 입을 통해 상세히 공개되었으면 하는바람이다.
그를 동행한 동료공관원의 말을 빌지 않더라도 그가 이번 석방을 통해 몸만 빠져 나왔을뿐 마음은 아직도 악몽속을 헤매고 있다는 것이 표정에 역력하지만 그에게 가해지는 또한번의 괴로움이 만인의 용기를 북돋울수도 있다는 점에서 그가 지녔던 인간한계의 극복의지가 전해지기를 기대해 본다.【홍성호 파리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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