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손실만 3조, 다시 불거진 산은 무용론 “이럴 거면 민영화 해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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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4호 22면

산으로 가는 기업 구조조정

지난 23일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에서 열린 대우조선 구조조정 추진방안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 [뉴시스]

지난 23일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에서 열린 대우조선 구조조정 추진방안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 [뉴시스]

‘산업은행 무용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23일 금융위원회와 KDB산업은행을 비롯한 채권단은 대우조선해양에 2조9000억원의 신규자금을 또다시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2015년 10월 대우조선이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을 포함한 채권단으로부터 4조2000억원을 수혈받은 지 불과 1년 5개월 만이다. 산은은 금융위 안에 따라 이번에도 1조4500억원을 추가 투입해야 한다. 한때 900%대까지 낮췄다던 대우조선해양의 부채비율은 2732%까지 치솟았다. 금호타이어 지분 매각 과정에서도 산업은행은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내세우는 ‘표(票)의 논리’에 휘말리고 있다.

대우조선에 물린 여신만 5조원 #해운·조선업 지원 여파로 손실 #임직원 연봉은 9000만원 수준 유지 #“박근혜 정부에서 관치금융 도구로” #금호타이어도 법정 공방 조짐 #“호남 정서 살피느라 원칙 훼손”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경제학)는 “대마불사의 논리가 대우조선 추가 지원으로 명백히 밝혀졌다”며 “정경유착의 고리를 원천적으로 차단한다는 점에서 산은의 민영화까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2013년 박근혜 정부가 신산업 육성, 중소기업 지원 등을 명분으로 백지화했던 산은 민영화를 검토해야 한다는 의미다.

외환위기 이후 최대 규모 손실

산업은행의 2016년 순손실 추정치는 3조원에 달한다. 국제통화기금(IMF)발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4조8900억원) 이래 최대 규모의 손실이다. 2015년 1조원을 넘는 순손실을 기록한 데 이어 그 다음해 적자 폭이 오히려 배 이상 늘어났다. 금융감독원이 최근 발표한 ‘2016년 국내은행 잠정 영업실적’에서도 산업은행을 비롯한 특수은행 5곳의 손실액은 총 3조5000억원으로 집계됐다. 특수은행에는 산업은행을 비롯해 수출입은행·수협·NH농협은행·IBK기업은행 등 다섯 곳이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농협·기업은행 등 지난해 플러스 실적을 낸 은행을 제외한다면 산업은행의 지난해 손실액은 3조5000억원 수준까지 올라갈 것”이라고 귀띔했다.

산업은행 사태의 근본적 원인은 ‘정책금융기관’이라는 명분으로 부실 기업에 아낌없이 자금을 지원해줬다는 데 있다. 현재까지 대우조선과 관련해서만 3조5000억원의 손실을 봤다. STX그룹 구조조정에도 1조2000억원을 쏟아부었고 한진해운이 청산되면서 9000억원 손실을 입었다. 조선·해운업 부실에 따른 자금 지원에만 5조6000억원을 산업은행 혼자서 투입한 셈이다. 여기에 지난해 ‘빅배스(누적손실을 한꺼번에 털어내는 회계기법)’로 9000억원의 부실을 털어낸 대우건설 역시 실적에 영향을 미쳤다.

한 국책은행 관계자는 “산업은행도 자발적으로 부실 기업에 돈을 쏟아붓고 싶었겠느냐”며 “결국 정부의 명을 어길 수 없으니 부실을 끌어안은 산업은행만 망가지는 꼴”이라고 설명했다.

대선 앞둔 정치 논리에도 흔들려

산업은행은 주요 채권단으로서 명백히 구조조정 주체다. 그렇지만 최근 구조조정 과정에서 문제가 된 대우조선과 금호타이어는 산업은행에 ‘특별한 배려’를 요구하고 있다. 각각 부산·경남(PK)과 호남이라는 지역적 연고를 무기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3일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는 대우조선 사태와 관련, “지금 불황만 이겨내면 조선업은 다시 한국경제와 지역경제의 효자 노릇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내 경쟁주자인 이재명 성남시장도 사무직 구조조정을 비롯한 대우조선 자구안에 반대하고 있다. 결국 대우조선은 1년 5개월 만에 또다시 2조9000억원의 추가 자금을 채권단으로부터 지원받게 됐다.

금호타이어 매각 문제와 관련해선 이미 시장 원칙에서 한걸음 물러섰다. 순리대로 흘러갈 듯 보였던 금호타이어 매각이 꼬인건 지난 13일부터다. 이날 채권단은 중국 타이어업체 더블스타에 금호타이어 보유지분(42%)과 경영권을 9550억원에 넘기는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했다. 동시에 박삼구 회장에게 우선매수청구권 행사 조건(9550억원+1주)을 통보했다.

그렇지만 박 회장 측이 시장가격 외에 호남 정서와 반중국 정서를 자극하자 산업은행은 지레 겁을 먹었다. 정치권도 동조했다.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는 “만약 중국으로 회사가 넘어갈 경우 방산기술을 넘겨주는 위험천만한 처사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산업은행은 지난 20일 박삼구 회장이 전략적 투자자(SI)를 확보하면 컨소시엄을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키로 입장을 선회했다.

한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박 회장의 요구를 수용할 경우엔 더블스타가 산업은행을 상대로 계약을 어겼다는 국제 소송을 진행할 가능성이 크다”며 “정권 교체 가능성이 커진 만큼 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호남을 기반으로 한 금호타이어의 매각 작업에서 새 정권의 눈치만 보고 있다”고 말했다. 금호타이어는 2010년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워크아웃에 들어가며 9조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해 정상화시킨 기업이다.

정치권 출신 낙하산 인사 문제도

산업은행이라는 틀 자체는 과거 1970년대 중화학공업을 육성해야 했던 관치금융 시대의 유산이다. 시장과 전문가들 사이에서 국책은행을 통한 구조조정 시스템 자체가 한계에 달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빈기범 명지대 교수(경제학)는 “산업은행을 통해 망할 기업을 도와주다 보니 기업들의 도덕적 해이를 조장해 온 측면이 크다”며 “더 이상 기업에 나쁜 사인을 주지 않도록 하루속히 산업은행에 주인을 찾아줘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2008년 6월 이명박 정부는 세계적 투자은행(IB) 설립을 목표로 산업은행 민영화 계획을 발표했다. 산업은행을 정부 품에서 떠나보내 골드먼삭스·메릴린치 등 글로벌 투자은행과 경쟁할 수 있는 한국 대표 메가뱅크로 만들어야 한다는 논리였다. 2009년 10월에는 정책금융공사를 분리했다. 총재라는 수장 직함도 민영화 논의에 발맞춰 회장으로 변경했다. 2011년 5월에는 당시 기획재정부 1차관이었던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산업은행 민영화에 대해 정부 스탠스가 바뀐 것은 없다”며 “언제까지 정부소유로 놔두겠느냐”고 말했다. 진보적인 경제학자 사이에서도 당시 산업은행 민영화에 호의적인 의견이 많았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무역학)는 “정권이 바뀌며 도로 원위치 됐지만, 경제상황이 정상적이라는 것을 가정한다면 이명박 정부에서 추진했던 정책금융공사·산업은행 분리 후 산업은행 민영화 방안이 가장 이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산업은행 민영화 계획이 뒤집어진 건 2013년 들어선 박근혜 정부 때였다. 메가뱅크 설립론은 중소·벤처 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바뀌었다. 4년 만에 정책금융공사와 산업은행은 재통합했다. 박근혜 정부 시기 산업은행에는 낙하산 인사 문제도 불거졌다.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대통령직 인수위원을 거쳐 2013년 4월부터 약 3년 간 산업은행 수장을 지낸 홍기택 전 회장이 대표적이다. 검찰에 따르면 홍 전 회장은 대우조선이 2015년 5월 회사 내 회계 비리 정황을 파악해 3조원대 손실을 공개했음에도 제대로 된 회계 감사를 실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해 10월 대우조선해양에 2조2000억원을 지원해 산업은행에 손실을 끼친 혐의를 받고 있다.

낙하산 인사 문제는 산업은행의 역량 부족과도 직결된다. 최근 산업통상자원부는 대우조선이 법정관리에 가더라도 전체 손실 규모는 최대 17조6000억원에 그칠 것으로 결론내렸다. 23일 금융위원회와 산은을 비롯한 채권단이 추가지원을 결정하며 근거로 내세운 추정손실액(59조원)의 30%도 안되는 수준이다. 현재 만들고 있는 배를 완성해 인도할 경우 손실 규모가 확 줄어든다는 것이다. 지난해 법정관리에 들어간 STX조선은 일부 발주 취소가 있었지만, 수주 잔량(56척) 가운데 75%(42척)을 예정대로 건조하고 있다. 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국책은행이 업계 사정을 너무 모르거나 아니면 금융당국이 과장해 만든 수치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박근혜 정부 때 무리하게 부실기업을 떠안은 것도 여전한 문제거리다. 지난달 말 기준 산업은행이 보유한 비금융 자회사는 38곳이다. 여기에는 한국GM(지분율 17%)·대우건설(50.8%)·한국우주항공산업(19%) 등 금융업과 관계없는 계열사들도 다수 포함돼 있다. 임직원 수 역시 2012년 2640명 규모에서 지난해 말 3325명으로 5년째 증가했다. 평균 연봉 역시 9385만원으로 4대 시중은행 평균(8240만원)보다 1000만원 이상 높다.

시중은행장을 지낸 금융권 고위 인사는 “시장의 역량과 준비가 덜 된 것은 사실이지만 고통스럽더라도 이번 기회에 산업은행을 없애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그는 “산업은행이라는 큰 버팀목이 없어지면 죽으나 사나 시장에서 구조조정을 할 수밖에 없다”며 “이 틈을 타 외국계가 시장을 잠식하고 혼란이 생기겠지만 이는 감내해야 할 과도기의 아픔”이라고 말했다.

김영민 기자 brad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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