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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시내 고서점에서 무료 숙박 하는 방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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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설립된 이후 약 3,000여 명의 작가 및 예술가가 방문한 파리 도심의 고서점,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사진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페이스북]

1951년 설립된 이후 약 3,000여 명의 작가 및 예술가가 방문한 파리 도심의 고서점,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사진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페이스북]

유명 작가를 다루는 영화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장면이 있다. 당대 이름난 예술가들이 술집에 모여 새벽까지 이야기를 꽃피우는 모습이다. 프랑스 파리에는 작가들과 밤새 책 수다를 떨 수 있는 낭만적인 공간이 여전히 존재한다. 바로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Shakespeare and Company)’ 서점이다.

1951년 지어진 이 서점에는 옛 것의 정취가 그대로 남아 있다. 빼곡이 들어선 책장에는 손때 묻은 앤티크 서적들로 가득 차 있다. 마치 골동품을 구경하듯 방 구석구석을 둘러보다 순간, 책장 밑에 침대가 숨겨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서점을 처음 열 때부터 작가들에게 숙박을 제공하기 위해 마련된 공간이다.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서점에는 책들만 빼곡히 쌓여 있는 게 아니라 책장마다 간소한 매트리스도 마련되어 있다. 작가와 예술가들을 위해 마련된 임시 거처로, 투숙객들은 기간 제약 없이 무기한 머무를 수 있다. 다만 매일 책 1권을 읽고, 서점 일을 몇 시간 도와주고, 자기소개서 1장을 남겨야 한다. [사진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페이스북]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서점에는 책들만 빼곡히 쌓여 있는 게 아니라 책장마다 간소한 매트리스도 마련되어 있다. 작가와 예술가들을 위해 마련된 임시 거처로, 투숙객들은 기간 제약 없이 무기한 머무를 수 있다. 다만 매일 책 1권을 읽고, 서점 일을 몇 시간 도와주고, 자기소개서 1장을 남겨야 한다. [사진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페이스북]

‘텀블위드(Tumbleweed)’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현재 작가가 아니더라도 이 침대를 사용할 수 있다. 파리 시내 한 가운데서 무료 숙박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그것도 유명한 서점에서 오래된 책에 둘러싸인 채 하룻밤을 보낼 수 있으니, 이 얼마나 낭만적인가.

단 조건이 있다. 숙박자 모두 하루 1권의 책을 읽어야 하며, 서점일을 몇 시간 도와야 하고, 퇴소 전까지 자기소개서 1장을 써내야 한다. 투숙객들은 주로 가게 내에 위치한 타자기를 사용해 빈티지한 푸른색 종이 위에 자신의 행적(자기소개서)을 남긴다.

면접 심사도 아니고 어째서 퇴실 전 자기소개서를 남기라는 걸까. 서점 주인 실비아 위트만은 그 이유를 “이곳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이야기를 털어 놓을 수 있는 특별한 장소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그녀는 2016년 9월 몇 천 건에 달하는 자기소개서를 바탕으로 회고록을 출간했다. 『내 마음의 넝마와 뼈의 책방(The Rag and Bones Shop of the Heart)』이란 제목의 회고록에는 이 서점에서 한때 같은 시와 책을 읽었던 젊은이들이 몇 십년이 지난 지금 어떤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지를 솔직하게 조명한다. 


위트만은 “작가가 작품을 쓸 때 챕터 별로 이야기를 쌓아가는 것처럼 이 서점을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사람들이 책을 읽으며 그 상상력의 세계에 빠져드는 것처럼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에서도 방마다 각기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상상력의 나래를 펼치는 것이다.

오래되고 희귀한 서적들로 가득찬 서점 내부 [사진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텀블러]

오래되고 희귀한 서적들로 가득찬 서점 내부 [사진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텀블러]

텀블위드 프로그램의 장점은 무료 숙박뿐만이 아니다. 최대 6명까지 수용 가능한 작은 공간에서 책에 둘러 쌓여 동료들과 늦게까지 책과 예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또한 매 주 월요일 7시에는 음악과 함께 캐주얼한 신인 작가 독서토론회도 열리고 일요일에는 소소한 티 파티까지 열린다.

위트만에 따르면 지금까지 서점을 거친 지식인은 비트제너레이션을 이끈 미국의 유명 작가 앨런 긴스버그를 포함해 약 3000여명에 이른다. 처음 텀블위드 아이디어를 떠올린 사람은 실비아 비치. 그녀는 1919년 원조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를 세운 인물이다. 그녀는 서점을 당대 유명 작가였던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스콧 피츠제럴드 등 다양한 예술인들의 모임장소로 만들었다. 하지만 독일의 프랑스 점령 이후 서점이 문을 닫자 위트만이 이름도 똑같은 지금의 서점을 세운 것이다.

어느새 66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위트만의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서점은 파리에서 꼭 방문해야할 장소로 꼽힌다. 독일의 문제 극작가가 베르톨트 브레히트, 망명 화가 막스 에른스트 등에게 예술가의 둥지를 제공한 것은 물론 서점을 중심으로 파리의 정치 급변을 꿈꾸는 사회주의자들이 모이기도 했던 역사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또한 특유의 예술적 분위기와 옛 것의 느낌 덕분에 영화 ‘비포 선셋’과 ‘미드나잇 인 파리’ 배경으로도 등장했다. 

텀블위드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싶다면 news@shakespeareandcompany.com 주소로 Tubleweed라는 제목과 함께 문의 메일을 보내면 된다. 서점에 머무는 사람들이 더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누고 싶다하면 서점 위에 위치한 아파트 공간도 내어준다. 낭만과 예술의 도시 파리. 이곳의 아름다움에 한껏 더 취하고 싶은 사람에겐 멋진 경험이 될 것이다. 

이자은 인턴기자 lee.jaeu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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