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는 놈 위에 나는 놈…보이스피싱 피해자 가장해 돈 뜯는 사기범 단속한다

중앙일보

입력

A씨는 한 인터넷 불법 도박 사이트에 들어갔다. 운영자 B씨의 계좌번호를 확인하고 그 계좌로 5만원을 보냈다. 그리고는 은행에 보이스피싱을 당했다며 전화로 계좌 지급정지 신청을 했다. A씨는 B씨에게 전화를 걸어 “지급정지를 취소시켜 줄 테니 돈을 달라”고 요구했다. B씨는 억울했지만 불법 도박 사이트 운영자이다 보니 경찰에 신고하기가 어려웠다. 울며 겨자먹기로 돈을 주고 지급정지를 풀었다. A씨는 이같은 수법으로 12명에게 약 1000만원을 뜯어냈다.

자료: 금융감독원

자료: 금융감독원

 금융감독원은 21일 A씨처럼 “보이스피싱 피해자를 사칭해 돈을 뜯어내는 사기 행위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며 “수사기관과 적극 협력해 보이스피싱 피해 구제제도를 악용한 허위신고에 엄정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금감원, 보이스피싱 허위신고 엄정 대응 방침 #3년간 20회 이상 지급정지 신청 70명 달해 #계좌 명의인이 신고 못하는 약점 노려 돈 갈취

 금감원은 현재 ‘보이스피싱 피해금 환급제도’를 운영 중이다. 이 제도를 이용하면 사기범에게 속아 돈을 보냈다고 하더라고 돈이 빠져나가기 전에 재빨리 송금 계좌에 대한 지급정지를 요청하면 별도의 소송절차 없이 돈을 돌려받을 수 있다. 해당 계좌의 주인이 2개월 동안 지급정지에 대한 별도의 이의제기를 하지 않는다면 피해금을 그대로 돌려받을 수 있다. 만약 해당 계좌의 주인이 ‘이 계좌는 사기 이용 계좌가 아니다’는 사실을 입증하면 보이스피싱 피해자는 피해금을 돌려받지 못한다.

 문제는 지급정지 신청을 전화로도 간단히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재빠른 대처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만든 조치인데 이를 악용하는 이들이 있다. 보이스피싱 피해자가 아닌데도 소액을 입금한 후 지급정지를 신청하고, 계좌 명의인에게 지급정지를 취소하는 대가로 돈을 요구하는 경우다.

 금감원에 따르면 2014~2016년 보이스피싱 피해를 이유로 20회 이상 전화로 지급정지를 신청한 이들이 70명에 달했다. 100회 이상 신청한 이들도 3명이나 됐다. 70명이 지급정지 신청한 6922개 계좌 중 서면으로 피해구제를 신청한 계좌는 722개(10.4%)에 불과했다. 나머지 6200개 계좌는 합의금을 받고 지급정지를 취소시킨 것으로 추정된다. 사기가 의심되는 부분이다. 그나마 722개 계좌의 평균 피해구제 신청금액도 132만2000원으로 지난해 전체 계좌에 대한 피해구제 신청 평균금액(419만5000원)의 3분의 1에도 못 미쳤다.

 금감원은 “보이스피싱 허위신고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으며 사기ㆍ공갈 등의 행위에 대해서도 형사 처벌이 가능하다”며 “허위신고자에 대한 수사기관 협조는 물론이고 금융거래시 불이익을 받는 ‘금융질서 문란 행위자’ 등록까지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고란 기자 ne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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