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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진표 짜이는 내달 초 중도보수 후보 단일화 고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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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3호 05면

김종인이 펼치는 ‘빅텐트’ 어떻게 되나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대위 대표(왼쪽)와 정운찬 전 총리가 지난달 28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경제 관련 토론회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대위 대표(왼쪽)와 정운찬 전 총리가 지난달 28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경제 관련 토론회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1. 중국 춘추전국시대 종반전. 동쪽으로 세력을 확대하는 강국 진(秦)에 맞서 연(燕)·제(齊) 등 6개국이 뭉쳤다. 진으로부터 공격을 받을 때 전력을 파병키로 하는 공수 동맹을 맺었다. 그러자 진은 전력의 우열을 지렛대로 삼아 이들 6개국과 양자 동맹을 맺었다. 약자들을 뿔뿔이 흩어놓는 전략이었다. 지리적 위치 등에 따라 진의 위협을 안보 위기로 인식하는 정도가 달랐던 틈새를 파고든 것이다. 이후 진은 6개국을 차례차례 무너뜨린 뒤 대륙에 첫 통일 왕조를 열었다.

“빅텐트는 종쳤다” 비관론 확산에 #김종인·정운찬 연대로 동력 키우며 #현역의원 20여 명 추가 합류도 기대 #안철수 가세 여부가 분수령 될 듯

#2. 한(漢) 말기 조정을 장악한 대군벌 동탁에게 맞서 지방 각지의 군벌들이 연합했다. 원소가 일으킨 ‘반동탁연대’에는 손견·조조·유비 등 군웅이 가세했다. 연합군은 수도 낙양을 점령하는 등 승승장구하며 동탁을 내몰았지만 승전을 앞두고 돌연 무너졌다. 대권이 눈에 들어오자 연합 지휘부가 내분으로 와해되면서다.

#3. 진 멸망 후 권력이 진공 상태에 빠지더니 최대 군벌 항우의 독주가 시작됐다. 군소 군벌이었던 유방은 지방 제후들을 연합해 항우에 도전장을 냈다. 유방은 진시황의 절대권력에 거부감이 컸던 민심의 흐름을 앞세워 이해관계가 제각각이었던 제후들을 설득해냈고, 결국 항우와 유방의 쟁패전은 유방의 승리로 끝났다.

절대 강자에 맞서기 위해 중국 역사에서 자주 등장하는 합종연횡 사례들이다. 공통점은 연대를 이끄는 지도자 역량에 따라 성패가 엇갈렸다는 점이다. 최근 국내 대선정국도 이와 비슷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독주가 이어지는 대선판의 사실상 ‘마지막’ 변수가 ‘빅텐트’로 불리는 반문연대 성사 여부로 모아지면서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불출마 선언 이후 물밑으로 가라앉았던 연대론은 지난 7일 김종인 전 민주당 비대위 대표의 탈당으로 다시 살아나는 모양새다. 김 전 대표는 국민의당·바른정당 대선후보와 자유한국당 이탈 그룹, 제3지대의 정운찬 전 총리 등을 묶어 중도보수를 기반으로 하는 반문연대의 밑그림을 그리려 하고 있다. 이를 활성화하는 촉매제는 연정과 개헌이다.

김종인 출마 시사로 연대 움직임 주춤

김 전 대표의 탈당과 맞물려 부각되고 있는 ‘친문 패권주의’에 대한 공세도 연정을 부각시키는 불쏘시개다. 바른정당 관계자는 “김 전 대표 측근으로 분류되는 인사들이 일제히 안희정 캠프로 몰려가고 문 후보와 김 전 대표 사이의 얘기들이 폭로되는 게 우연의 일치 같진 않다”고 말했다. 실제로 김 전 대표 탈당을 전후해 측근으로 불리던 박영선 의원과 변재일·박용진 의원 등이 안희정 캠프에 합류했다. 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때 김 전 대표에게 비례대표 2번을 제안한 것은 문 후보였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정치권에서는 금명간 김 전 대표와 가까운 민주당 현역의원 한두 명이 탈당하고, 반문연대의 한 축인 외부 세력을 묶는 작업이 궤도에 오르면 측근들의 추가 탈당이 이어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문제는 김 전 대표가 킹메이커나 막후 조정자가 아니라 직접 등판할 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던지면서 연대의 탄력이 잘 붙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김 전 대표가 추진한 지난 16일 조찬 라운드 테이블 회동이 무산된 것도 김 전 대표의 대선 출마 의지 때문이란 해석이 지배적이다. 막판에 무산되지 않았다면 손학규 국민의당 후보와 유승민·남경필 바른정당 후보, 정 전 총리, 정의화 전 국회의장 등이 함께 손을 맞잡는 ‘이 한 장의 사진’을 통해 유권자들의 뇌리에 반문연대의 메시지를 강하게 각인시켜줬을지도 모른다.

반문연대가 주춤하면서 부정적 시각도 커지고 있다. 정두언 전 의원은 “빅텐트는 이미 종 쳤다”며 “국민들은 김 전 대표가 누군지도 잘 모른다. 대선판을 흔들 힘과 권위가 없다”고 꼬집었다. 민주당 내에서도 ‘문재인은 안 된다’는 것 빼고는 이념 지향과 지지층·지역 등 공통점이 희박한 각 정파가 오직 대선 승리를 구심점으로 뭉치긴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게다가 반문연대의 주요 기반이었던 개헌도 자유한국당·국민의당·바른정당의 합의안이 실효성 논란과 함께 ‘하루 천하’로 끝나면서 동력을 잃어가는 모습이다.

반문연대 급물살 땐 TK 가세 기대

그런 가운데 김 전 대표는 정 전 총리와 공동 보조를 취하며 다시 단추를 꿰고 있다. 정 전 총리는 “수도를 세종시로 옮겨야 한다”며 충청권 민심을 다지고 있다. 충남 공주 출신인 정 전 총리는 민주당 경선에서 안 후보가 탈락할 경우 충청 표심이 출렁일 것으로 보고 때를 노리고 있다는 전언이다.

정 전 총리 측근도 “반문연대와 연정에 대해 김 전 대표와 깊숙이 교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같은 건물의 같은 층에 사무실을 두고 있는 두 사람은 최근 공·사석에서의 만남을 이어가며 한때 소원했던 관계를 빠르게 회복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종인-정운찬 조합을 발판으로 반문연대의 한 축을 형성하면 다음 수순은 세 불리기다. 특히 한국당 비박계와 충청권 의원들이 주된 접촉 대상이다. 당 주변에서는 대선 대진표가 짜이는 다음달 초 최대 20명의 의원들이 집단 탈당할 수 있다는 얘기도 돌고 있다.

김 전 대표가 구상하는 반문연대 성패의 핵심 키는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쥐고 있다. 빅텐트에서의 후보 단일화 성사는 민주당을 제외한 대선후보 중 지지도 1위를 달리는 안 후보의 참여 여부가 분수령이 될 것이란 전망이다. 이와 관련, 김 전 대표도 국민의당과 핫라인을 유지하며 물밑접촉을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에서는 반문연대가 급물살을 타게 되면 대구·경북(TK) 민심의 균형추도 기울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연민을 느끼는 전통적인 보수 지지층이 전략적으로 반문연대 기치에 호응할 수 있을 것이란 분석이다. 서성교 바른정책연구원장은 “최순실 사건이 언론의 주목을 받은 이후 김 전 대표가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공격적인 발언을 삼갔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이는 보이지 않게 보수 지지층 관리를 해왔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김 전 대표는 이번 주초 반문연대 회동을 다시 추진키로 하는 등 반등을 모색할 계획이다. 대선 대진표가 짜이기까지 남은 기간은 앞으로 2~3주. 그때가 되면 김 전 대표도 두 갈래 길 앞에 서게 될 전망이다. 연대에 실패해 진에 무릎을 꿇은 춘추전국시대 6개국과 내분으로 자멸한 원소의 길, 그리고 끝까지 연대를 고수해 천하를 통일한 유방의 길이 그것이다.

정용환 기자 cheong.yongw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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