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전 대통령 '불복'에 고뇌에 빠진 유승민…“매우 충격적이고 안타깝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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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지켜보며 옛 여권의 정치인 중 가장 복잡한 심경을 느꼈을 사람 중 하나가 바른정당의 유승민 의원이다.

유 의원의 호칭은 여전히 '박 전 대통령'이 아닌 '박 대통령'

박 전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 시절 비서실장을 지냈고, 2007년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 전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선 후보 자리를 놓고 경선을 했을 때 소위 물불을 가리지 않고 박 전 대통령을 위해 싸웠던 사람이 유 의원이기 때문이다. 박 전 대통령을 돕던 유 의원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유 의원이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를 위해 이가 빠질 정도로 열심히 일했다”고 회고한다.

물론 2015년 국회법 개정안 협상과 지난해 총선 공천 과정을 거치면서 박 전 대통령과 유 의원의 거리는 멀어질대로 멀어졌다.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이 10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소추안 인용 결정을 받아들여 줄것을 요구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이 10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소추안 인용 결정을 받아들여 줄것을 요구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그런데도 유 의원은 지난 10일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 이후 이런 발언을 했다. 대선주자 중 처음으로 공개적으로 입장 발표를 하면서다. 유 의원은 “남들이 뭐라고 해도 대통령을 생각하면 저는 인간적으로 깊은 회한과 안타까움에 마음이 아프다. 이 나라를 위해, 또 대통령을 위해 저는 진심으로 마지막 호소를 드린다. 같은 국민들끼리 서로를 향했던 적대감을 녹일 수 있도록, 대통령께서 국민의 상처를 치유해 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이 이틀 뒤인 지난 12일 서울 삼성동 사저로 복귀하면서 사실상 헌재 결정에 불복하는 듯한 발언을 하면서 유 의원도 충격을 받은 모양새다. 유 의원은 13일 바른정당 회의에서 “박 대통령이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했다. 3월 10일 발표 이후 12일까지 대통령이 헌법재판소 결정에 침묵하는 동안 3명이 숨졌다. 지지세력을 달래고 헌법재판소 승복 메시지를 기대했는데 사실상 불복한 것은 매우 충격적이고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 대통령께서는 저의 마지막 기대까지 저버렸다. 정치인 박근혜에 대한 국민의 평가는 2007년 승복연설 때 있었다. 개인이 아니라 대통령으로서 국민통합을 끝까지 외면하며 얻을 게 무엇인지 물어보고 싶다. 대통령이 최고헌법기관의 결정에 따르지 않으면 국민 누가 법원의 판정에 승복하겠는가”라고 물었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유 의원의 호칭은 ‘전 대통령’이 아닌 여전히 ‘대통령’이었다. 유 의원이 언제까지 ‘박 대통령’으로 부를지는 모른다. 하지만 대선 출마를 선언한 유 의원의 지지율 상승을 가로막는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는 박 전 대통령 지지세력의 “배신자” 공격이다.

10년 전 한나라당 경선 때 박 전 대통령과 유 의원은 졌다. 10년 후 이번 대선에서 두 사람이 모두 지는 길로 가지 않기를 유 의원 주변에선 바라고 있다.

허진 기자 b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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