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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클릭] 몸짱 되려다 섭식장애까지…사람 잡는 ‘헬스타그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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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 오마이걸의 멤버 진이가 2016년 8월 거식증을 이유로 활동을 중단했다. 그해 11월에는 유명 유투버 다또아가 섭식장애에 시달려왔다고 고백했다. 그는 “건강해지려고 다이어트를 한 게 아니라 ‘살이 찐 게 죄’라고 느껴져 억지로 다이어트를 했다”고 말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15년 섭식장애로 치료를 받은 전체 환자 수는 1만 2468명. 이 중 여성이 1만44명이고 20~29세 여성은 2384명이었다. 상황이 심각해지기 전까지는 병원을 잘 찾지 않는 질병이라는 걸 감안한다면 실제 환자는 더 많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헬스타그램 보면 식욕 사라져요” #다이어트 강박이 섭식장애로 이어져 #'씹뱉' '폭토' 등 신조어까지 등장

섭식장애는 흔히 외모에 민감한 여성 연예인 등 유명인이 겪는 병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위의 통계처럼 우리 주변의 평범한 사람도 많이 겪고 있다. 특히 사생활을 적극적으로 노출하는 인스타그램(이하 인스타)류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보편화하면서 젊은 여성들이 거식과 폭식의 늪에 빠지고 있다.

다이어트 식단 이미지 [중앙포토]

다이어트 식단 이미지 [중앙포토]


대학생 김모(26)씨는 3년 전 살을 조금만 뺄 생각으로 SNS를 통해 다이어트 정보를 검색했다. 인스타엔 체계적으로 식단을 관리하는 유명 다이어터가 많다. 늘씬한 몸매의 사진을 계속 올리며 1일 섭취 영양소와 식사량을 그램(g) 단위까지 철저히 계산해 식사를 하는 사람들이다. 한 끼 식사로 닭가슴살 소시지 1개, 단호박 반 개, 채식빵 조금, 케일 3~4장을 먹는 식이다. 김씨는 처음엔 참고만 하려고 했지만 점차 강박이 생겼다. ‘저렇게 마른 사람도 절제된 식사를 하는데 내가 더 먹어도 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꾸만 그 사람들이 정상, 스스로는 비정상이라고 느껴졌다. 결국 밥을 조금만 많이 먹어도 하루 섭취량을 넘겼다는 생각에 구토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김씨는 “구토를 시작하고 나니 ‘어차피 토할 거 먹고 싶은 음식을 다 먹자’는 생각이 들면서 식탐을 주체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섭식장애(eating disorder)란 체중이나 체형에 과도하게 집착한 나머지 비정상적인 섭식 행태를 보이는 질병이다. 음식물 섭취를 극도로 거부하는 거식증(절제형 섭식장애), 또는 음식물 섭취에 죄책감을 느끼고 보상심리로 하제(설사약)·이뇨제를 복용하거나 구토를 하는 폭식증(제거형 섭식장애) 등의 형태로 나타난다. 김씨 사례는 섭취한 음식물을 몸에서 제거하는 ‘제거형 섭식장애’에 해당한다.

김씨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다이어트를 시작했다가 섭식장애를 앓는 젊은 여성이 적지 않다. 섭식장애 관련 정보를 교환하는 온라인 커뮤니티 ‘소금인형’은 회원 수가 2만8000여 명에 달한다. 많은 환자들이 공통적으로 지목하는 섭식장애 계기는 SNS다. 인스타나 유투브 등을 통해 접하는 극도로 절제된 다이어트 정보가 강박을 유발한다는 것. 섭식장애 클리닉을 운영하는 자하연한의원 임형택 원장은 “섭식장애는 모르면 안 걸리고 알게 되면 생기는 ‘유행병’”이라며 “씹뱉(씹고 뱉기), 폭토(폭식하고 토하기) 등의 신조어가 퍼지면서 구토를 통해 살을 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 사람들이 걸리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정상체중에 한참 미달하는 빼빼 마른 몸매가 미의 기준으로 자리잡게 된 원인에는 여성 연예인이 있다. 패션쇼를 소화하기 위한 모델들의 깡마른 몸매나 핫팬츠를 입은 걸그룹의 ‘극세사 다리’는 다이어트를 자극하는 1등 공신이다. 그런데 왜 연예인 대신 SNS를 섭식장애의 주범으로 지목하는 걸까.

SNS로 인한 다이어트 강박이 연예인 동경과 다른 점은 개인의 일상에 보다 구체적으로 관여한다는 점이다. 연예인들은 몸매가 완벽해지는 과정을 속속들이 공개하지 않지만 SNS 인플루언서들은 다르다. 10~20kg씩 감량에 성공한 다이어터들의 영향력은 연예인못지 않다. 완벽하게 관리된 몸매 사진을 올린 계정은 수 천·수 만 명의 팔로어를 자랑하며 스타로 대접받는다. 이들은 단순히 몸매만 자랑하는 게 아니다. 자신이 무엇을 먹고 어떤 운동을 하는지 꼼꼼하게 기록하고 변화하는 과정을 공유한다. 인스타에서 ‘다이어트하는 사람’을 뜻하는 해시태그 #다이어터는 약 120만개, 운동하는 사진과 함께 붙는 #헬스타그램은 약 150만개가 등록돼 있을 정도다. #눈바디가 포함된 게시물도 9만4000여 개나 된다. 눈바디란, 피트니스센터에서 체성분을 분석해주는 기계 인바디 대신 눈으로 몸의 상태를 기록한다는 의미의 신조어다. 주로 몸매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운동복을 입고 거울에 비친 모습을 찍은 사진이다. 

인스타, 블로그, 유투브에서 '제이제이'라는 이름으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헬스트레이너 박지은(33)씨. 그는 다이어트 전후 몸매의 변화와 운동 과정을 솔직하게 공개했다. [사진 박지은]

인스타, 블로그, 유투브에서 '제이제이'라는 이름으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헬스트레이너 박지은(33)씨. 그는 다이어트 전후 몸매의 변화와 운동 과정을 솔직하게 공개했다. [사진 박지은]

팔로어들은 다이어터들의 군살이 빠지고 복근이 생기는 등 체형이 달라지는 모습을 눈으로 확인하면서 식단과 운동법을 그대로 따라한다. 삼시세끼 식단까지 친절하게 공개하니 따라하기는 어렵지 않지만, 그들만큼 완벽하게 지키지 못했을 때에는 심한 자책감에 시달린다. 중학교 3학년 때 친구로부터 "너 좀 살쪘다"는 말을 듣고 다이어트를 시작했다는 고등학생 강모(17)양은 거식증에 걸려 2016년 폐쇄병동에 입원했다. 강양은 “인스타에 올라오는 몸매 사진들을 보면서 미친듯이 운동을 했고, 다이어터의 식단과 내 식단을 비교할 때마다 스스로 ‘돼지같다’는 생각이 들어 괴로웠다”고 말했다.

팔로워 5만 9000여 명을 보유한 다이어터 '수지'가 인스타에 공유한 점심 식단. 사진과 함께 올라온 글에는 아침, 간식, 점심, 저녁 식단 정보가 g단위로 꼼꼼하게 기록돼있다. [사진 lovely_szi 인스타그램]

팔로워 5만 9000여 명을 보유한 다이어터 '수지'가 인스타에 공유한 점심 식단. 사진과 함께 올라온 글에는 아침, 간식, 점심, 저녁 식단 정보가 g단위로 꼼꼼하게 기록돼있다. [사진 lovely_szi 인스타그램]

다이어트 블로거 ‘제이제이’로 잘 알려진 헬스트레이너 박지은(33)씨는 "극단적인 식단과 운동법을 무작정 따라하는 것은 정말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박씨는 “유명한 인플루언서 중에는 공공연하게 ‘나는 밥을 아예 안 먹는다’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다”면서 “정말 SNS에 공개하는 식단과 운동만으로 몸매를 유지하는 것인지는 본인들밖에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식습관을 바꾸는 것은 신체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는 변화이기 때문에 개인의 체질과 생활 습관에 따라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1년 가까이 폭식증세를 앓고 있는 윤모(28)씨가 인스타그램에서 운영 중인 섭식장애 극복계정. 식단, 운동기록과 함께 본인의 심리적인 변화도 공유한다.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1년 가까이 폭식증세를 앓고 있는 윤모(28)씨가 인스타그램에서 운영 중인 섭식장애 극복계정. 식단, 운동기록과 함께 본인의 심리적인 변화도 공유한다.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한가지 다행스러운 점은 섭식장애를 고칠 수 있는 방법도 SNS에 충분히 많다는 것이다. 폭식증 환자인 김씨는 인스타에서 ‘섭식장애 극복 계정’을 운영하며 다른 환자들과 식단을 공유하고 있다. 강양 역시 인스타에 본인의 식단과 병원 치료과정을 올리고 있다. 강양은 “섭식장애라는 병을 이해해주고 같이 힘내는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이 치료에 도움이 된다”면서 “나 또한 같은 증상을 겪는 환자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다”고 말했다. 자신들을 힘든 유혹에 빠지게 했던 SNS를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다. 거식증을 겪어 ‘살 찌우는’ 식단을 운영 중인 블로거 주혜(21)씨는 “인스타를 이용하면 다이어터들의 식단과 몸매 사진을 어쩔 수 없이 보게 돼서 다시 다이어트 유혹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아예 이용하지 않는다”며 “섭식장애를 겪고 있는 8명의 지인들끼리만 네이버 밴드를 이용해 식단을 공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블로거 주혜(21)씨가 작성한 섭식장애 극복일기. 거식증을 앓았던 주혜씨는 하루 세끼 균형잡힌 식단을 남기지 않고 먹고 있다는 기록을 남긴다. [사진 주혜 블로그 캡처]

블로거 주혜(21)씨가 작성한 섭식장애 극복일기. 거식증을 앓았던 주혜씨는 하루 세끼 균형잡힌 식단을 남기지 않고 먹고 있다는 기록을 남긴다. [사진 주혜 블로그 캡처]

서울백병원 섭식장애 클리닉의 김율리 교수는 “섭식장애는 심리적인 강박과 불안이 행동으로 드러나는 질병인데, 인스타나 블로그에 꼼꼼하게 식단을 공유하고 다른 환자들과 소통하는 활동 역시 강박적인 성향이 행동화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면서 “하지만 이를 꼭 나쁘게 볼 필요는 없다. 환자가 갖고 있는 강박적인 성향을 억누르기보다는 이해하고 활용하는 치료법이 해외에서도 보편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SNS를 이용한 식단관리와 소통이 도움이 된다면 꼭 병원을 찾을 필요는 없지만, 대부분 섭식장애를 겪으며 식습관 자체가 무너졌기 때문에 정상화를 위한 식단 운영은 전문가의 가이드를 받는 편이 좋다”고 조언했다.


백수진 기자ㆍ이자은 인턴기자 peck.soo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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