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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펄 끓는 유럽] 프랑스 原電 25% 과열로 스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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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올 여름 한국 사람들은 날씨에 관한 한 운이 좋은 것 같다. 말복이 다 되도록 이렇다 할 무더위가 없었던 데다 유럽의 폭염 소식을 접하면 그나마 흐르는 땀도 티 안나게 닦아야 할 판이다.

지난달 말부터 유럽 대부분 지역을 뒤덮은 폭염이 연일 갖가지 기록을 쏟아내고 있다. 기상관측 이래 최고라는 말은 이제 매일 듣는 얘기가 돼버렸으며 유럽에서 보기 힘든 열대야 현상도 나타났다. 더위로 숨지는 사람까지 속출하고 있는 유럽의 폭염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한다.

2주째 계속되고 있는 유례없는 폭염과 가뭄으로 유럽 각국은 '위기관리'에 부심하고 있다. 폭염이 장기화하고 산불.전력 부족에 건강 적신호까지 겹쳐 일종의 '재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프랑스 응급의사협회의 파트릭 플루 회장은 12일 "파리에서만 최소 50여명이 숨지는 등 프랑스 전역에서 폭염과 관련, 1백여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주장하면서 정부의 무대책을 비난했다. 이를 뒷받침하듯 프랑스 최대 장례업체인 PFG는 지난 한주 동안 파리 지역에서의 수요가 50%, 전국적으로는 20%가량 증가했다고 밝혔다. 프랑스에서는 11일 자정의 기온이 1백30년 만의 최고기록인 섭씨 25.5도를 기록하는 등 유럽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열대야 현상까지 기록했다. 유럽의 다른 지역에서도 최소 45명이 더위와 관련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사람 목숨 다음으로 심각한 문제로 부상하고 있는 것은 전기사정이다. 이번 폭염으로 에어컨이 풀 가동되면서 유럽 전체로는 전기 수요량이 10%나 늘어났다.

반면 비가 내리지 않아 수력발전용 물이 부족하고 강물도 데워져 원전에 쓰이는 '차가운' 냉각수를 구하기가 여의치 않아 발전이 적잖은 타격을 받고 있다.

프랑스 파리의 센강 수온은 지난 10일간의 평균 섭씨 23도에서 27.2도로 뛰었다. 프랑스는 폭염이 강타한 11일 전체 58개 원전 중에서 약 4분의1이 멈춰섰다. 원자로가 과열됐기 때문이다.

전력 수요의 70%를 원자력 발전에 의존하고 있는 프랑스는 이날 에너지관련 장관 비상대책회의를 긴급 소집, 규정 냉각온도를 다소 초과할 수 있도록 임시 허용했다. 현재는 섭씨 48도로 돼 있다. 프랑스는 이와 함께 원자력 발전소의 발전량 감소를 충당하기 위해 4개 화력발전소의 가동을 겨울 수준으로 끌어올리기로 했다.

네덜란드 역시 폭염으로 인한 전력수요 증가로 예비전력량이 최하로 떨어짐에 따라 적색 경보를 긴급 발령했다. '적색'은 가장 높은 경보로 9년 전 폭염 이래 처음이다.

정부가 경보를 발령한 것은 휴가에서 돌아온 시민들이 곧 제한 송전이 실시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미리 여러 가지를 대비하느라 갑자기 전기를 많이 사용할 것을 염려한 것이다.

반면 화력발전 의존율이 높은 덴마크는 가뭄으로 인한 수량 저하로 이웃 스웨덴.노르웨이의 수력발전량이 크게 떨어짐에 따라 사상 최대의 전기 수출을 기록하기도 했다.

스페인.포르투갈의 산불은 좀처럼 잡히질 않고 있다. 지난달 말부터 계속돼 최소 15명이 목숨을 잃고 30만ha의 삼림이 소실되는 피해를 본 포르투갈에서는 11일에도 산불이 계속 번져 관광지 알가르브 지역 4개 마을 주민 7백여명이 소개됐다.

소방 관계자들은 연일 계속되는 고온과 시속 25km의 강한 바람이 수시로 방향을 바꿔 산불이 여러 곳으로 옮겨붙는 바람에 진화에 애를 먹고 있다고 말했다.

스페인에서도 이날 북동부 카탈루니아 지방의 산불로 5명의 일가족이 목숨을 잃었다. 독일 또한 브란덴부르크 일대에서 수백ha에 달하는 삼림이 불에 타고 있으며, 이탈리아에서도 사르디니아 지방에서 또 다시 두 건의 산불이 발생했다. 유럽의 기상 전문가들은 이같은 이상고온이 주말까지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파리=이훈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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