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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호메트 풍자 만화를 보는 두 시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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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번 사태의 발단은 4개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해 9월 덴마크 최대 일간지인 윌란스 포스텐에 실린 12컷짜리 만화 때문이다. 심지에 불이 붙은 폭탄 모양의 터번을 쓴 마호메트의 캐리커처가 실렸다. 터번의 중앙에는 이슬람 종교관의 핵심인 '알라 외에는 신이 없고 마호메트는 알라의 사도다'라는 아랍어 문구가 적혀 있다. 자폭 공격으로 죽어 천당에 온 '순교자'들에게 "처녀가 다 떨어졌다"고 말하는 모습도 그려져 있다. 명백히 이슬람의 폭력성을 냉소적으로 표현한 만평이다.

신문은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위해 이런 만평을 게재했다고 주장했다. 이슬람권은 강력히 반발했다. 마호메트의 초상을 그리거나 조각하는 것은 신성모독이기 때문이다. 이슬람권에서 신성모독은 사형으로 다스려지는 범죄다. 신성모독조차 일종의 개인 혹은 언론의 권리로 생각하는 유럽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이 권리를 옹호하기 위해 유럽 7개국 12개 매체는 1일, 12컷의 만평 전부 또는 일부를 지면에 실었다. 최근 폭력 사태의 직접적 원인이다. 윌란스 포스텐이 사태 확산을 우려해 사과성명을 발표한 바로 다음날이었다.

이번 사태는 1988년 이란 출신 영국 작가 샐먼 루시디가 '악마의 시'를 출간했을 때를 연상시킨다. 루시디의 소설에는 마호메트를 빗대어 설정한 '마호운드'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마호운드는 여신을 인정하고 창부로 설정된 여러 아내를 두기도 한다. 당시 이슬람권은 이 소설의 판매와 번역을 금지했다. 이란은 89년 2월 루시디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현상금도 걸었다.

이번 사태는 루시디 사건보다 파장이 더 크다. 시대적 상황 때문이다. '우는 아이 더 혼내기'와 같다. 이슬람권은 90년대 초반부터 확립된 미국의 단극(單極) 패권체제에 피해의식을 갖고 있다. '문명충돌론'이 등장하고 공산주의를 대체하는 '서구 자유주의의 적'으로 자신들이 제단에 올려졌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나 이란 핵 문제도 이 같은 시각에서 해석돼 왔다.

풍자만화는 중동의 테러 문제를 부각하려는 한 유럽 언론사의 의도에서 비롯됐다. 사실 중동권도 '중동=테러리즘'이라는 공식을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는다. 테러의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는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슬람=테러리즘'의 등식은 다른 얘기다. 이 등식에는 분노만이 존재한다. 알카에다 등 이슬람 무장단체들이 대서방 테러를 본격화한 것은 91년 걸프전 이후였다. 그해 미국은 이슬람의 성지인 사우디아라비아에 주둔하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이번 사태는 이슬람권 내 일종의 '문화적 봉기'를 야기하고 있다. 유엔 결의에도 불구하고 점령지에서 철수하지 않고 있는 이스라엘, 국제사회의 반대에도 미국에 점령당한 이라크, 핵 문제로 유엔 제재 위기에 몰린 이란 등 민감한 사안에 대해 무기력하게 당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상당수 무슬림은 인정한다. 힘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들의 신념과 종교를 모독하는 행위만큼은 참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문화적 봉기' 여론이 형성되면 과격 무장단체들의 테러는 정당성을 갖게 된다.

테러는 정당화될 수 없다. 하지만 테러의 빌미를 제공하는 행위도 자제돼야 한다. 과격한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을 비판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대다수 온건한 무슬림을 테러리스트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서로의 문화와 도덕, 신념과 종교의 가치를 이해하는 것은 공존의 기본 원칙이다.

서정민 카이로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