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코아 업체들 줄줄이 법정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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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밸런타인 데이가 1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올해는 초콜릿 맛이 그리 달콤하지 않을 것 같다. 초콜릿이 어린이 노동 착취의 산물이란 사실을 떠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최신호(13일자)에서 네슬레, 카길, 아처 대니얼스 미들랜드 등 주요 초콜릿 회사에 코코아를 공급하는 업체들이 6일 줄줄이 법정에 섰다고 보도했다. 이들 회사는 미국 로스앤젤레스 법정에 출석, 서아프리카 지역의 코코아 농장들이 어린이를 노예처럼 부리며 노동력을 착취했다는 혐의에 대해 진술했다. 서아프리카에서는 전세계 코코아의 70%가 생산된다.

◆ 눈물 젖은 초콜릿=이번 재판은 국제노동권리기금(ILRF)이 이들 코코아 공급업체를 상대로 지난해 소송을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ILRF는 6일 인터넷 홈페이지(www.laborrights.org)에서 "최근 우리의 지원을 받은 사진작가가 코트디부아르의 코코아 농장에서 소년들이 노예처럼 일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찍어 왔다"며 아직도 어린이 노동착취가 근절되지 않고 있음을 지적했다.

◆ 코코아 농장의 어린이들=초콜릿 원료인 코코아 생산 과정에서 아동 노동 착취가 행해진다는 사실은 2001년 처음으로 세계에 알려졌다. 당시 영국 BBC방송은 서아프리카 코코아 농장 아동들의 비참한 생활상을 생생하게 다룬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다. 많은 시청자는 자신이 즐기는 달콤한 초콜릿이 아홉 살 안팎의 어린 소년들이 인간 대접도 못 받으며 거둬들인 '비윤리적인 코코아'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받았다. 2003년의 한 조사 결과에서도 상황은 개선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코트디부아르를 중심으로 나이지리아.가나.카메룬 등에서 코코아 농장에서 일하는 어린이 노동자가 30만 명에 이르렀다. 이 중 64%가 14세 이하였으며, 심지어 일꾼으로 팔려와 가족과 연락조차 되지 않는 아이들이 1만2000명이나 됐다. '어린이 노예'(child slavery)란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각국 초콜릿 업체는 2002년 국제노동기구(ILO)의 권고에 따라 주주.제조업체.소비자그룹.시민단체 등이 참여하는 국제코코아재단(ICI)을 만들어 아동 노동 착취 근절을 위한 각종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9월 파이낸셜 타임스(FT)가 직접 찾은 서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 남부의 코코아 농장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FT는 "초콜릿 제조업체들이 보다 근본적인 문제해결을 외면하고 있다"며 "이곳에서 13만 명의 어린이가 여전히 노동 착취를 당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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