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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도 찾는 대학생 앵무새 박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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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앵무새가 힘이 없어 보여요. 무엇이 문제일까요.”

독학으로 배운 목포대 이찬슬씨 #중1 때 자퇴 뒤 대화 상대로 인연 #“앵무새 특성 알아야 멸종위기 막아”

앵무새를 키우는 사람들이 사육 방법이나 훈련 비법을 모를 때 찾아가 상담하는 ‘대학생 앵무새 박사’가 있다. 전남 목포대 무역학과 2학년 이찬슬(22·사진)씨다. 심지어 다른 전문가들도 ‘앵무새 박사’에게 가끔 연락해 앵무새가 보이는 특이 행동의 의미를 묻기도 한다.

이씨는 최근 앵무새를 그려 넣은 물병과 가방을 제작해 수익금을 앵무새 보호에 쓰기로 했다. 이들 상품에는 ‘SAVE THE PARROT’ 등 앵무새 보호 관련 문구가 담겼다. 전 세계적으로 300여 종의 앵무새 가운데 10여 종을 빼면 대부분은 멸종위기종이다.

이찬슬씨. [프리랜서 장정필]

이찬슬씨. [프리랜서 장정필]

지난해에는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동물 매개교육을 무료로 열었다. 아이들은 이씨가 데려온 앵무새들을 직접 보고 만지며 멸종위기종에 대해 공부했다. 2015년에는 ‘멸종위기 동물 앵무새 전-깃털, 그 화려한 비극’이란 전시회를 열었다. 이씨 주도로 목포대 미술학과 학생 등 10여 명이 참여해 회화·조각·도예·설치미술·사진 등의 작품을 통해 앵무새가 처한 멸종위기 상황의 심각성을 알렸다.

이씨와 앵무새의 인연은 중학생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씨는 중학교 1학년 때 자퇴했다. 일률적인 교육 환경, 반복되는 학교 수업에 적응하지 못해서다.

점점 외로웠고 대화할 친구가 간절해졌을 때 떠올린 게 앵무새였다.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아무런 준비도 없이 앵무새 한 마리를 산 뒤 무작정 말을 걸었다. 하지만 앵무새는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주변에 제대로 자문해줄 전문가도 없었다.

이씨는 어머니를 졸라 태국 파타야에 있는 앵무새 농장으로 날아가 사육방식을 배웠다. 이후 앵무새에 푹 빠졌다. 외국 전문가가 쓴 책과 유튜브 동영상을 찾아보며 동물행동학을 공부했다. 이런 과정에서 적지 않은 분양업체들이 앵무새를 돈벌이 수단으로만 생각해 강제로 모이를 먹여 사육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앵무새를 분양받은 사람들이 말을 하지 못하는 앵무새를 보고 금방 싫증을 느낀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앵무새의 행동 특성에 대한 고민과 공부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씨는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앵무새 관련 상담을 시작했다. 현재는 앵무새 사육과 훈련 방법을 알려주고 관련 상품을 판매하는 인터넷 홈페이지도 운영한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에는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대한민국 동물보호대상’을 수상했다. 이씨는 “앵무새를 이해하고 소통하려는 사람들의 노력이 없으면 머지않아 아름다운 앵무새를 더 이상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며 “사람과 앵무새가 진짜 친구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목포=김호 기자 kimho@joongang.co.kr
[사진 프리랜서 장정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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