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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74년외교문서공개] 동유럽 외교 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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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정부는 특히 소련과의 관계 개선에 주력했다. 주일 한국대사관이 73년 9월 4일 김용식 외무장관에게 보낸 문서에 따르면 정부는 모스크바에 통상대표부 설치와 신문사 특파원 상주를 제안했다. 그러나 당시 소련의 반응은 탐탁지 않았다. 주일 한국대사관은 문서에서 "소련은 북한이 두 개의 한국에 반대하고 있다는 이유로 (한국 정부의 제안에 대한 수용은) 북한의 태도에 달렸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보고했다.

정부의 동유럽 외교는 남북한 교차 승인을 통한 유엔 동시 가입 노력으로 모아졌다. 정부는 74년 인도네시아 마리크 외무장관의 소련 방문, 벨기에-소련 외무부 국장급 회의, 소련 그로미코 외무장관의 독일 방문 등을 활용해 '남북한 동시 유엔 가입과 무역.문화 등 비정치적 교류 우선 추진' 등을 소련에 타진했다. 정부는 인도네시아 외무장관의 소련 방문에 앞서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해서는 남북한 동시 유엔 가입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도네시아 고위층에 설명할 것을 외교 라인에 지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로미코 외무장관은 당시 겐셔 서독 외무장관에게 "시급한 문제로 보지 않는다"는 등의 반응을 보였다. 정부는 소련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던 인도를 통해서도 적극적인 외교전을 폈다. 외무부는 74년 5월 주인도 한국대사관에 보낸 문서에서 "인도 외무성과 주모스크바 인도 대사관을 활용, 소련의 한반도에 대한 정책 등을 입수할 것"을 지시했다.

이런 외교 노력은 결실을 보았다. 74년 9월 16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유럽공동체 9개국(EC) 외상회의에서 EC 국가들은 소련을 포함한 유럽제국의 한국 승인을 촉진하도록 노력한다는 데 의견 일치를 본 것이다. 소련을 비롯한 동유럽과의 관계 개선 노력은 10여 년이 지난 80년대 후반 결실을 보기 시작했다. 남북 유엔 동시 가입도 91년 9월 이뤄졌다.

김민석 군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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