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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팬들 날밤 새우며 ‘음원 지붕킥’ … 차트 1위 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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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음원 시장 왜곡을 낳는다는 비판을 받아온 실시간 차트 기준이 최근 개편됐다. 하지만 팬덤 강한 아이돌 음악의 차트 점령은 여전하고, 음악계에선 “실시간 차트 자체를 폐지하라”는 주장이 커지고 있다.

실시간 음원 차트 폐지론 왜 #아이돌·팬덤 위주로 음원시장 왜곡 #신곡 자정 발매 관행 없애기 위해 #집계 방식 바꿨지만 부작용 여전 #톱10 들면 대중 관심 끌기 쉬워져 #특정 세대 취향 음악만 확산 우려 #빌보드·UK차트엔 실시간 순위 없어

멜론의 실시간 점유율 그래프. 곡의 다운로드 및 스트리밍 실적이 높아 그래프의 최고점을 찍으면 “지붕킥을 날렸다”고 한다. [멜론 홈페이지 캡처]

멜론의 실시간 점유율 그래프. 곡의 다운로드 및 스트리밍 실적이 높아 그래프의 최고점을 찍으면 “지붕킥을 날렸다”고 한다. [멜론 홈페이지 캡처]

국내 음원 시장은 실시간 차트 중심이다. 스트리밍(실시간 재생) 서비스가 보편화 되면서 2000년대 후반 등장한 실시간 차트는 1시간 단위로 실적(다운로드+스트리밍)을 매겨 음악을 줄 세운다. 한데 지난달 27일 멜론 등 국내 음원사이트들이 실시간 집계 기준에 변화를 줬다. 오후 7시~다음날 오전 11시까지 발매한 곡의 실적은 돌아오는 오후 1시부터 실시간 차트에 반영한다는 내용이다. 복잡한 듯하지만 간단히 말하면 ‘자정 음원 발매를 막겠다’는 취지다.

그간 유명 가수들은 관행처럼 자정 발매를 해왔다. 일반 이용자가 적은 새벽에 팬들의 도움으로 쉽게 차트를 ‘점령’할 수 있기 때문이다. 팬들도 좋아하는 가수의 곡이 공개되는 날이면 스트리밍 곡 목록이 담긴 ‘음원총공(총 공격) 가이드’를 공유해 밤새 음악을 재생한다. 그저 한두곡이 순위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음반 수록곡 대부분이 차트를 도배하는 ‘줄세우기’가 탄생하는 과정이다. 실시간으로 순위가 바뀌니 팬덤 간 경쟁심은 극대화된다. 방탄소년단 팬클럽 아미 회원 김모(17)양은 “지난달 14일 엑소 백현이 곡 ‘비가 와’를 공개했는데 그날 새벽은 전쟁이었다”며 “하루 전 발표한 방탄소년단 ‘봄날’과 매시간 1위가 바뀌면서 ‘전투력’이 극에 달했다”고 말했다.

특히 실시간 음원 실적을 그래프로 공개하는 멜론의 ‘지붕킥’ 그래프는 팬덤의 경쟁을 부추기는 대표적 요소로 꼽힌다. 또 다른 아이돌 팬은 “특정 수치 이상이 되면 그래프 수치가 멈추는데, 이를 일컬어 ‘지붕킥을 날렸다’고 한다”며 “이 수치가 계속 유지돼 그래프가 일(一)자를 그리면 ‘지붕을 걷는다’고 말하는데, 팬들은 지붕을 걷기 위해 스트리밍을 반복한다”고 털어놨다.

‘비투비’의 6일 복귀에 앞서 팬들이 공유한 곡 스트리밍 목록. [SNS 캡처]

‘비투비’의 6일 복귀에 앞서 팬들이공유한 곡 스트리밍 목록. [SNS 캡처]

일단 이번 개편으로 자정 발매 관행에는 브레이크가 걸렸다. 실제 비투비는 6일 오후 6시 미니앨범 ‘Feel’eM(필름)’을, 걸그룹 여자친구는 6일 정오에 미니앨범 ‘THE AWAKENING(디 어웨이크닝)’을 발매했다. 문제는 그럼에도 팬덤들의 새벽 시간 음원 ‘총공’은 그대로라는 점이다. 한 음반회사 관계자는 “자정 발매만 막았을 뿐 발매 다음 날부터는 기존처럼 새벽 시간대 차트 선점이 가능하다”며 “여전히 한 아이돌의 곡들이 실시간 차트를 도배하고 있는데 이는 팬덤 개입 없인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7일 오전 3시 기준 멜론 실시간 차트 10위까지 곡 중 5곡이 ‘비투비’ 곡이었으며, 나머지도 대부분 팬덤을 확보하고 있는 아이돌 곡이었다.

선점된 차트는 일반 이용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대중음악평론가 김작가는 “일반 이용자들의 경우 노래를 적극적으로 찾아듣기 보다 ‘TOP 10 곡 듣기’ 등 음원 사이트의 차트 목록을 일종의 추천곡 삼아 듣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대중의 음악소비를 특정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고 말했다. 즉 인기 있는 곡이 차트에 반영되는 게 아니라 차트에 반영된 곡이 인기를 끌어 시장이 왜곡되는 ‘역전 현상’이 일어난다는 얘기다. 홍대 공연장 벨로쥬 박정용 대표는 SNS에 “우리는 30년 전 3월 첫째주 빌보드 차트 1위 곡에 대해 이야기하곤 한다. 국내 차트도 불가능하진 않지만 (실시간 차트라는) 매일의 문제가 쌓여 차트 자체의 신뢰가 이미 무너진 상태”라고 지적했다. 한국과 달리 미국 빌보드 차트, 영국 UK 차트, 일본 오리콘 차트에는 실시간 차트가 없다.

이규탁 한국조지메이슨대 국제학과 교수는 “음원사이트들이 팬덤간 경쟁을 유도해 이용자 수를 극대화하고 업계 영향력 확대를 노리고 있다”며 “하루동안 음악 듣는 사이클이 다른 이용자들의 실적을 합산한 일간 차트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했다. 하박국 대중음악평론가(영기획 대표)도 “음원 사이트들은 실시간 차트 대신 빅데이터를 활용해 취향에 맞는 다양한 곡을 제공하는 서비스를 확대해야 한다”며 “실시간 차트로 인해 특정 세대의 취향만 반영된다면 다양한 취향이 사라지거나, 사이트의 확장력을 잃어 산업적으로든 문화적으로든 손해”라고 지적했다.

노진호 기자 yesn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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