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는 일본형, 법대로 하는 필리핀형, 맞장 뜨는 베트남형의 복합처방 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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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의 한반도 배치 결정에 대한 중국의 보복조치는 국제사회에서 데자뷰(Deja vu·최초의 경험임에도 이미 본 적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나 환상)를 불러일으킨다. 그 만큼 외교안보 사안으로 인한 중국의 보복은 상습적이었다. 이를 먼저 겪은 나라들의 대응 노하우를 살펴봐야 하는 이유다.

이와 관련,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7일 “우리보다 앞서 외교안보 사안으로 인해 중국으로부터 보복조치를 당한 나라들이 있다. 그런 사례들을 보며 우리가 참고할 점과 유의할 점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피해를 입었던 나라들에게 직접 어떻게 이를 극복했느냐고 문의도 했다”면서다.

일본은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문제로 중국의 전방위적 보복에 시달렸다. 2012년 일본이 센카쿠열도를 국유화하자 중국 내에선 반일시위와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번졌다. 일본 재무성에 따르면 2011년 일본의 대중 수출액은 1620억 1300만 달러였지만, 2012년에는 1441만 7400만 달러로 전년 대비 11.0% 감소했다. 2013년 수출액은 1290억 9300만 달러로 줄었다.

중국은 지금 한국에 하는 것처럼 일본 관광 중단 등 인적 교류도 제한했다. 일본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 수는 2012년 142만 5100명이었지만, 2013년엔 131만 4437명으로 7.8% 줄었다.

당시 이런 중국의 보복 조치에 어떻게 대응했냐는 한국 측의 문의에 일본 정부 당국자들은 하나같이 “버티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외교부 당국자는 “중국과 일본도 무역관계와 이해관계가 많이 얽혀있는데, 일본이 피해를 다소 감수하고 버티니 중국 측의 손해도 발생하기 시작했다고 하더라. 자국의 피해가 커지기 시작하면서 중국도 결국 문제 해결을 위한 대화에 나오기 시작했고 서서히 보복조치를 거둬들였다고 한다”고 전했다.

일본은 중국의 희토류 수출 금지 조치(2010년)에 대해선 국제규범에 따라 대응했다. 2012년 6월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해 2년 뒤 승소 판결을 받아냈다. 그 과정에서 일본 정부는 희토류 수입처를 인도, 베트남, 카자흐스탄 등으로 다변화하는 방안도 병행했다.

필리핀은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로 보복을 당했다. 2009년 중국은 필리핀의 수출 주력 상품 중 하나인 바나나 수입 금지 조치를 내렸다. 바나나 병충해를 근거로 들었지만, 실제 원인은 남중국해 분쟁이었다. 2012년에는 필리핀에 여행경보를 발령했다.

필리핀은 ‘법대로’ 대응했다. 2013년 1월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를 15개 항목으로 나눠 네덜란드 헤이그의 중재재판소에 제소했다. 처음엔 대국인 중국에 대항하는 것이 계란으로 바위치기 아니냐는 관측이 우세했다. 중국 역시 무시 전략으로 일관했다. 재판관 선임부터 변론까지 모든 과정에 불참했다.

하지만 지난해 7월 중재재판소는 필리핀의 손을 들어줬다.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은 근거가 없고, 중국의 인공섬 건설이 필리핀의 주권을 침해한다는 게 요지였다. 외교가 소식통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처럼 한마디로 필리핀의 완승이었고, 중국은 외교적으로 엄청난 타격을 받았다. 중국 내부적으로 국제법 학계를 손봐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됐을 정도”라며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어떤 주권적 주장을 하더라도 불법이란 근거가 마련됐던 것”이라고 전했다.

중국과 전통적인 애증관계를 갖고 있는 베트남은 경제 협력은 하면서도 중국이 압박하면 상응하는 대가를 돌려주는 식으로 뚝심으로 맞서왔다. 양국 사이엔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도 걸려있다. 2014년 5월 베트남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파라셀 제도 인근에 중국이 10억 달러짜리 석유시추 장비를 설치했다. 이에 베트남은 초계함을 보내 철수를 요구하고 30여척의 어선을 동원해 작업을 방해했다. 이 과정에서 중국 군함 및 어선과 물리적 충돌까지 벌어졌다.

열흘 동안의 대립 과정에서 베트남 경비대원들이 다치고 어선이 파손당하자 베트남에서는 폭력 반중 시위가 발생했다. 중국 상점이 불타고 중국인들이 탈출하는 사태로 이어졌다. 중국은 결국 7월 시추설비를 철수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양국이 원수처럼 돌아선 건 아니었다. 이듬해인 2015년 양국 정상이 교환방문을 하고, 무역 교류 등을 늘리기로 합의했다.

현재 한국은 3국의 대응에서 교훈을 얻는 복합적 처방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국제규범과 원칙에 의거한 신중한 대응이 관건이다. 성균관대의 이희옥 성균중국연구소장은 “감정적 대응을 자제하고 안보적 판단을 차분하게 우리 뜻져가야 중국이 ‘한국은 힘으로 누르거나 분열시킬 수 있다’는 오판을 하지 않게 만들 수 있다”며 “이번 위기를 기회로 삼아야 한다. 지금 잘 대응하면 중국의 비합리적인 압박을 원칙에 입각해 이겨낸 나라라는 브랜드를 갖게 되고, 이는 이후에도 한중관계와 동북아 역내 역학구도 속에서 우리의 소중한 외교적 자산으로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유지혜·백민경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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