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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 자주파 조직적 공세 가능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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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 외교안보 주도권 둘러싼 암투인가=사태의 본질은 노무현 정부 집권 후반기의 외교안보 주도권을 둘러싼 이종석 차장의 파워를 견제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치열한 권력 암투가 이성을 잃은 공격으로 비화하는 모양새다. 그 뿌리는 북한 문제를 전공한 학자 출신의 이종석 통일부 장관 후보자가 현 정부 들어 NSC 사무차장으로 기용돼 외교안보 분야의 핵심으로 부상하는 국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노무현 정부 초기 외교안보팀의 구도는 이 차장을 중심으로 하는 NSC와 정권 창출에 기여한 386세대 그룹, 기존의 한.미동맹 도식에 익숙한 외교.국방부의 관료 집단으로 양분되기 시작했다. 이른바 '자주파'와 '동맹파'로 불리는 구도다. 물론 이 차장은 스스로를 '실용파'로 정의해 왔다. 현 정부 초반 이 차장에게로 힘이 쏠려간 것은 사실이었다. 2003년 이라크 파병을 둘러싸고 첫 마찰이 생겼다. 국방부 쪽에선 1만 명 이상 파병을 제안했다. 하지만 현 정권 지지계층에선 파병 반대 여론이 드셌다. 이 차장은 결국 '비전투병 3000명 파병'의 절충안을 내 관철시켰다.

용산기지 이전 협상은 또 다른 갈등을 낳았다. 2004년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은 청와대 공직기강 비서관실이 작성한 '2003년 11월의 용산기지 이전협상 평가 결과보고'를 공개했다. 이 문건에는 "노무현 대통령이나 NSC 인사들이 반미주의자이므로 이들의 개입은 최소화한다는 점을 전제로 외교부가 협상을 진행했다"는 내용이 있었다.

당시 노 대통령은 출입기자단과의 오찬에서 "외교부를 좀 개혁하라고 윤영관 장관을 보냈는데 기존 관료에 업혀다니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이 와중에 북미국 간부의 노 대통령, 이 차장 폄하 발언 사건이 터졌다. 이후 윤영관 장관과 북미국장을 비롯한 외교부 인사들이 대거 경질됐다. 여기까지는 자주파의 승리로 평가됐다. 외교.국방부 관료 집단의 이 차장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도 점차 사그라졌다.

◆ 강경 자주파의 이 차장 공격 모양새=그러자 이번에는 오히려 자주파 내부에서 이 차장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는 구도가 만들어졌다. 주한미군을 한국 밖으로 이동할 수 있게 해달라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를 둘러싸고서였다. 2005년 4월 청와대 국정상황실에서 "이미 미국에 전략적 유연성을 합의해 주고도 NSC가 대통령에게 보고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문제제기를 했다. 최 의원이 최근 공개한 외교부의 '전략적 유연성 지지' 외교 각서 교환을 겨냥한 것이다. 미국의 요구를 다 들어주겠다는 저자세 외교를 이미 해놓고도 왜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았느냐는 힐난인 것이다. 당시 천호선 국정상황실장은 대통령의 386세대 참모였다. 이 차장은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문재인 민정수석, 천 상황실장이 참석한 가운데 청문조사를 받아야 했다. 당시 청와대는 "협상 과정에 문제가 없었다"고 사건을 마무리했다. 그렇지만 여권의 386세대 의원과 청와대 참모 그룹에서는 "이 차장이 친미 쪽으로 기울어 가는 게 아니냐" "분명한 컬러를 보이지 않는다"는 볼멘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10개월 뒤인 이달 들어 통일부 장관 후보자인 이 차장의 국회 청문회(6 ~7일)를 앞두고 이 문제가 갑자기 불거졌다. 그것도 NSC의 내부 기밀문건이 통째로 넘어가는 모양새를 통해서였다. 급기야 3일에는 국정상황실의 문건까지 인터넷 매체로 누출됐다. 문건을 폭로한 최 의원 또한 진보적 성향을 보여온 여당 의원이었다. 사태의 핵심은 누가 이 문건들을 유출했느냐에 모이고 있다.

결국 이 차장이 통일부 장관과 함께 NSC 상임위원장으로 외교안보 분야의 사령탑을 맡는 국면에서 이 후보자를 중심으로 짜일 외교안보시스템에 대한 견제를 시도하는 세력의 조직적 공세가 아니겠느냐는 여권 내 분석이 나온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이 후보자가 이념적 극단 세력의 양쪽으로부터 공세를 받는다는 상황은 오히려 그가 균형잡힌 시각을 유지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지 않겠느냐"고도 주장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이 차장은 특정 세력의 비열한 공격을 받고 있는 피해자"라며 특정인을 죽이기 위해 국가 기밀문서를 유출하는 세력은 국가 기강확립 차원에서 반드시 색출돼야 한다"고 말했다.

최훈.오영환.채병건 기자

◆ 전략적 유연성=주한 미군을 포함한 전 세계 주둔 미군을 특정 지역 '붙박이 군대'가 아닌 기동성과 신속성을 갖춘 기동타격군으로 바꾸겠다는 것. 미 국방부가 추진하는 글로벌 군사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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