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자립형 사립고 늘리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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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서울시장이 시민들의 최대 관심사인 교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다. 그러나 계획의 주도권과 관련해 서울시와 서울시교육청 및 교육부 간에 불협 화음이 들리는 것 같다. 발표 내용과 시점이 사학법 문제가 걸려 있고,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앞두고 있어 정치적으로 풀이되기도 한다.

그런데 자립형 사립고 제도는 행정적.정치적 사안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교육적 사안이다. 따라서 문제를 파악하거나 해결 방안을 강구함에 있어, 이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자립형 사립고는 학교 운영의 자율성과 교육의 다양성 및 특성화 방안의 하나로 1995년 5.31 교육개혁안에서 제안됐다. 그러나 고등학교 체제의 근간을 이루는 평준화 정책과 배치되고 소위 귀족학교가 됨으로써 계층 간 위화감을 조성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시행을 미루고 2002년부터 3년간 6개교를 시범적으로 운영하게 됐다.

시범 운영에 대한 평가는 지난해 8월 한국교육개발원에 의해 이뤄진 바 있다. 평가 결과에 의하면 자립형 사립고 제도는 고등학교 선택 기회를 확대했다. 또 학교 행정과 운영의 자율성을 신장시켰다. 자립형 사립고에서는 교육과정이 다양해졌고, 특색 있는 교육이 이뤄졌다. 자립형 사립고 제도 도입 논의 당시부터 제기돼 온 귀족학교화에 대해선 '강력한 증거'를 발견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저소득층 자녀의 입학이 실질적으로 힘든 것으로 나타났다.

시범 운영 기간 3년에는 새로운 학교 운영을 위한 기초를 제대로 다지기에도 부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범 학교에서 나타난 다음과 같은 결과는 대단히 고무적이다. 시범학교 학생들의 만족도가 높고, 학부모들이 자녀가 다니는 학교에 대해 긍지가 매우 높으며, 교사들의 가르치는 보람도 높다는 것이다.

일선 학교의 교육력은 구성원들의 활력(活力)에 의해 결정된다. 나는 지난해에 서울의 초.중등학교 300여 곳을 방문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같은 서울이라 하더라도, 이들 학교 간의 교육 여건과 환경의 차이는 정말로 엄청났다. 그러나 이보다 중요한 것이 있음을 재확인했다. 그것은 학교의 자생적인 활력인 것이다. 우리의 교육 정책은 일선 학교의 활력을 키우는 데에는 소홀했다. 학교는 교육 기관이 아니라 말단 행정 기관으로 취급돼 왔다. 학교는 지원과 조성의 대상이 아니라 통제와 지시의 대상이었다.

한편 자립형 사립고는 교육비가 많이 들면서 교육의 질이 높은 학교라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현재의 교육비만으로는 많이 부족하다. 시범 학교의 학급당 학생 수는 특수한 경우인 민족사관고등학교의 14.5명을 제외하면 29.2명에서 34.5명이다. 이런 여건 속에서 그래도 다양화가 이뤄지고 특성화가 이뤄졌다니 그것은 구성원들의 열성과 헌신의 결과가 아닐까.

이제 우리의 교육정책은 일선 학교의 자생적 활력을 키우는 데 초점을 둬야 한다. 자립형 사립고 제도는 일선 고등학교의 자생적 활력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그것의 함양을 위한 제도적 장치의 하나다. 시범 기간 중 발견된 문제점을 보완해 확대 실시하는 것을 망설일 이유는 없다.

진동섭 서울대 교수·교육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