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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 큰 가짜 대위 시청 농락 사건 관료제 허점 조롱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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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1호 면

[ 경영, 인문학에 길을 묻다]
카를 추크마이어의 『쾨페니크 대위』

연극 ‘쾨페니크 대위’의 한 장면. 베를린 쾨페니크시 극장

연극 ‘쾨페니크 대위’의 한 장면. 베를린 쾨페니크시 극장

카를 추크마이어(Carl Zuckmayer·1896~ 1977)는 1920년대부터 활동해 명성을 떨친 독일의 극작가다. 그가 1931년에 쓴 희곡 『쾨페니크 대위 (Hauptmann von Kopenick)』는 독일 베를린에서 초연됐으며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 작품은 오늘날에도 공직사회를 풍자하고 경고하는 드라마로 세계 곳곳에서 인기리에 공연되고 있다.

『쾨페니크 대위』 1931년 초판본

『쾨페니크 대위』 1931년 초판본

추크마이어의 대표작 『쾨페니크 대위』는 베를린에서 벌어진 실화를 연극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사건은 19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독일 제국의 빌헬름 2세 황제가 군부와 관료제를 양축으로 한 절대권력으로 통치하고 있었던 때다. 제국은 통일 이후 정치적으로 안정되고 경제적으로도 발전하고 있었다. 10월 16일 제국 수도 베를린 외곽 쾨페니크 시청에 대위 계급장을 단 한 장교가 무장군인들을 대동하고 나타났다. 그는 황제의 명령이라고 강조하면서 쾨페니크시의 시장과 재정담당관을 공금 횡령죄로 체포하고 군 병력을 동원해 시청을 접수한다. 그는 곧장 시 금고에 있는 3357마르크 (오늘날 가치로 약 2만2000 유로·약 2600만원)를 자루에 넣고 나오면서 자신의 소속부대와 이름을 명기한 영수증을 써주고 병사들은 그대로 둔 채 위풍당당하게 떠났다. 그런데 사건의 진상은 몇 시간 후 드러났다. 상부에서는 그런 명령을 내린 사실이 없었고 동원된 병사들은 진짜였지만 대위는 가짜였다. 쾨페니크 시청은 한 사람의 가짜 장교로부터 철저하게 농락을 당한 것이었다.

국왕 명령 사칭해 병력 동원 #시청에 보관된 현금 털어 도주 #비선 실세 유니폼 입은 민간인 #대기업 돈 뜯어낸 스캔들 연상 #촘촘한 수직적 계급 구조 허물고 #결재 단계 줄인 수평조직 만들어야 #부당한 지시 거부하는 용기 필요

고물상서 산 대위 복장에 농락당해

희대의 사기 사건은 언론에 대서특필됐다. 사람들은 그 가짜 대위를 ‘쾨페니크 대위’라고 명명하고 경쟁적으로 사건을 보도하기 시작했고 독일은 물론 외국에서도 이 사건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게 되었다. 사건 발생 후 열흘 만에 범인이 체포되면서 기상천외한 사기사건의 진상이 드러났다. 범인은 베를린에 거주하는 57세의 무직자 프리드리히 포이크트로 밝혀졌다. 그는 구두수선공의 아들로 태어나 절도와 문서위조로 어린 시절 4번이나 투옥된 경력이 있다. 41세가 되던 해에 한 지방법원의 금고를 털다 잡혀 15년 형을 살고 1906년 출옥했다. 그 후 여러 곳을 전전하며 구두수선 일을 하려고 했지만 그가 전과자라는 사실이 밝혀져 당국으로부터 거주허가를 얻지 못하고 추방당하기 일쑤였다. 그는 누나가 살고 있는 베를린 근교에 임시로 거처하면서 일자리를 구하려고 했으나 그에게 일자리를 주는 고용주는 없었고 다른 지역이나 외국으로 나가려고 해도 전과자라는 이유로 여권발급도 거부당했다.

현재 베를린 쾨페니크 시청 입구에는 쾨페니크 대위 동상이 세워져 있다.

현재 베를린 쾨페니크 시청 입구에는 쾨페니크 대위 동상이 세워져 있다.

인생의 막장으로 내몰린 그는 기상천외한 범행을 계획하게 된다. 당시 무소불위의 권력계층으로 부상한 군 장교 행세를 해 인근 시청에 가서 여권을 발급받고 금품을 훔쳐 베를린을 떠나 자유로운 곳에 가서 새 출발을 하는 것이 그의 계획이었다. 그는 한 고물상에서 장교 군복과 모자, 그리고 대위 계급장을 사서 복장을 갖추고 베를린 외곽의 한 군부대 앞에서 보초 교대를 마치고 나오는 경비병들을 불러 세웠다. 그는 다짜고짜로 황제의 명이라며 10명의 교대병들에게 쾨페니크로 동행할 것을 명령했다. 병사들은 영문을 몰랐지만 상관의 명령이었기 때문에 그를 따라 쾨페니크로 갔다. 병사들이 시청을 포위한 가운데 범인은 먼저 여권과에 가서 여권발급을 시도했으나 아쉽게도 조그만 쾨페니크 시청에는 여권발급 기능이 없었다. 다음 목표로 그는 시 금고에서 상당한 공금을 탈취하고 유유히 도주하게 된 것이다.

작품이 발표될 당시 독일 국민들은 ‘어떻게 군부대도 아닌 시청에서 장교 유니폼을 입은 한 사람이 고위공무원을 감금하고 금고를 털어 돈을 훔칠 수 있는가’라는 문제점을 지적하며 독일제국의 군국주의와 관료제의 병폐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아무리 전과자라고 해도 생업을 위해 일을 하려는 한 시민에게 거주허가나 여권을 발급하지 않아 입에 풀칠도 못하게 만드는 국가행정의 비인도성을 비판하는 여론이 고조되면서 범인 포이크트는 국가권력의 피해자로서 대중의 동정을 받는 사태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황제가 포이크트 사건이 군의 제복과 계급의 권위가 견고하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고 칭찬하며 포이크트에게 특별사면을 명하였고 그는 4년 징역형 중 20개월만 복역하고 풀려났다. 석방된 그는 다시 대위 제복을 입고 코미디 무대에 출연해 대중들을 웃겼고 가는 도시마다 큰 인기를 모았다. 제복을 입은 사진이 찍힌 자신의 엽서와 자서전을 팔아 큰돈을 번 그는 룩셈부르크로 이주했고 그곳에서 1922년 숨질 때까지 여생을 보냈다.

군국주의와 관료제 병폐 신랄히 비판

이 ‘쾨페니크 대위’ 사건은 관료제의 병폐를 잘 설명해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관료제는 19세기 말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가 세습권력의 전통적 지배에 의한 불합리한 관료조직의 지배구조와 운영체계를 바로 잡기 위한 합리적이고 이상적 제도로 제안했고, 독일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에서 이 제도를 받아들여 국가운영의 기조로 삼았다. 조직구조의 대세로 등장한 바 있는 관료제의 장점은 권한의 계층화, 사람중심이 아닌, 직무중심의 인사관리와 조직관리, 규칙과 절차에 의한 행정, 과업의 분업화, 전문적인 관료의 양성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관료제의 효율성 못지않게 병폐도 지적된다. 가령, 목표와 수단의 전도현상, 즉 목표보다는 수단인 규정을 더 중시하는 현상이라든지, 규칙과 규정의 남발, 권력의 상부집중, 아웃사이더(국민)의 소외와 좌절을 들 수 있다.

권력자에게 아부하는 조직, 신뢰 잃어

110년 전에 독일에서 발생한 기상천외한 ‘쾨페니크 대위 사건’은 오늘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주요 정부기관의 관료들이 ‘비선 실세’라는 유니폼을 입은 민간인에게 금고를 열어주고 사사건건 지시를 받는, 드라마 같은 일들이 일어났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온 국민은 큰 충격을 받았다. 한국판 포이크트는 공직사회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굴지의 재벌기업 총수에게까지 손을 뻗쳤고 그들은 경쟁을 하듯이 정체도 알 수 없는 재단에 거액을 바쳤다. 승승장구하던 그녀는 자신이 고용한 부하들에 의해 정체가 외부로 탄로남으로써 다행히 국가적인 대재앙은 피할 수 있었다.

관료제의 병폐 가운데 가장 나쁜 점은 목표와 수단의 전도라고 생각한다. 공직 조직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국민을 섬기는 일이며, 민간기업의 목표는 소비자 등 이해당사자들의 만족도를 높이는 것이다. 관료가 타락하면 상부의 명령에 맹목적으로 복종하는 획일적인 사고가 만연하면서, 관료제의 목표는 사라지고 수단만 살아남게 된다. 그렇게 되면 관료제는 국민을 억압하고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방해하는, 갑질의 먹이사슬로 변할 수 있다. 상부 권력자에 아부하고 중심과 목표를 잃어버린 폐쇄적인 관료제 조직은 국민이나 직원들을 섬기는 조직이 되지 않고 이너서클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한다. 그러면 결국 심판을 받고 일반 대중으로부터 버림을 받게 된다는 것이 이번 국정 농단 사건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그런데 이 와중에 문화체육관광부의 50대 관료가 비선 실세에 의해 사주를 받은 차관의 여러 차례 압력에 맞서 수백억대의 정부 예산이 새나가는 것을 막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영혼이 있는 공무원’이 우리나라의 타락한 관료제하에서도 ‘살아있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위로를 받았다. 국가의 사업이 부적절한 민간재단에 넘어가게 된 위기상황에서 소신을 굽히지 않고 차관의 부당한 지시와 협박에 굴하지 않아 국정 농단을 막은 그 공무원의 용기있는 행동에서 우리는 미래의 희망을 본다.

개방적·포용적 사회돼야 관료제 실패 치유

최근 삼성그룹은 조직분위기 일신을 위해서 직원들의 직급호칭을 파괴하여 대리·과장·차장·부장이라는 직책명을 없애고 OOO님으로 통일한다고 한다. 호칭파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촘촘한 수직적 계급구조로 되어 있는 관료제 조직을 허물어 결재 단계를 2~3개로 줄이는 수평조직을 만드는 일이다. 페이스북이나 구글처럼 조직 내 위계가 거의 사라지고 말단 직원이 임원들과 직접 소통하는 그러한 수평적이고 개방적인 조직이 되어야만 관료제의 병폐를 철저히 분쇄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쾨페니크 대위』 사건과 유사한 사건이 이승만 정권시절 말기에 발생한 바 있다. ‘가짜 이강석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한 사기꾼이 대통령의 양자인 이강석이라고 행세하면서 지방을 돌며 도지사와 경찰서장들을 농락하고 금품과 향응을 받다가 들통이 난, 이른바 ‘귀하신 몸’ 사건이다. 이를 보면 우리나라에서 ‘쾨페니크 대위’ 사건은 앞으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비선 실세라는 권력의 유니폼을 입은 또 다른 배우가 무대에 화려하게 등장할 수 있다.

관료제 조직의 실패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게임의 규칙(rules of game)’을 바꾸어야한다. 과도한 규제를 통해 지대(地代·rent)를 추구하면서 기득권을 보호하는 쪽으로 굴러가는 게임의 룰을 혁파하고 개방적인 행정과 포용적이면서도 공정한 제도를 시행하고 성과에 따른 신상필벌, 자신이 결재한 업무에 대해서 철저히 책임지는 관료조직을 정착시키는 방향으로 게임의 룰을 바꾸어야 관료사회가 국민의 신뢰와 존경을 받을 수 있다. 존스 홉킨스 대학 프랜시스 후쿠야마 교수는 “신뢰(trust)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기능하고 경제가 발전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전제”라고 역설한 바 있다. 오늘날 대한민국에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신뢰가 아닌가 한다.

우리나라에서 앞으로 문체부 서기관처럼 상사의 부당한 지시에 용감하게 저항하는 의로운 관료들이 많이 나올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부정부패가 초기에 근절될 수 있다. 국정 농단은 한 사람의 ‘쾨페니크 대위’에 의해서 저질러질 수도 있지만 양심적이고 국민을 섬기는 데 충실한 한 공직자에 의해서 차단될 수 있다.

김성국 이화여자대학교 경영대학장
김성국 서울대 인문대 졸업, 독일 만하임대 경영학박사, 베를린 자유대 등 객원교수 역임. 대한리더십학회 초대 회장, 한독경상학회·한국인사조직학회및 아시아-유럽미래학회 회장, 한국경영대학·대학원협의회 이사장. 『인적자원관리 5.0』 『모멘트 리더십』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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