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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원전이다" 세계 각국, 고유가 속 '자원 패권주의'에 충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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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1986년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전의 방사선 누출 사고 이후 한동안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던 원자력 발전소가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다. 고유가가 장기화하고 중동 정세가 불안해지면서 세계 각국이 원전에 눈을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가스 공급 중단으로 상징되는 '자원 패권주의' 경향도 이 같은 움직임을 가속하고 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국정연설에서 "미국은 석유에 중독돼 있다"는 강한 표현을 써가며 원전 건설 재개 방침을 시사했다. 이와 함께 유럽과 러시아.중국.인도 등도 원전을 현실적인 대안으로 새롭게 평가하며 추가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세계적인 원전 건설 붐이 일고 있는 것이다. 프랑수아 루스 프랑스 산업장관은 최근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과의 인터뷰에서 "모든 나라가 핵 에너지를 화석 연료의 대안으로 다시 고려하는 분위기"라고 밝혔다.

◆ 미국.유럽 새로운 원전 붐=부시 대통령이 국정연설에서 '탈석유' '탈중동'의 대안으로 꼽은 것 중에는 에탄올 등 대체에너지도 있다. 문제는 현실성이다. 에탄올만 해도 생산 단가가 높고 운송 파이프 설치가 어렵다는 등 난제가 적지 않다. 자연히 관심은 원전으로 향한다. 이미 지난해 부시 대통령은 30년간 중단됐던 원전 건설을 2010년까지 재개하겠다고 선언했다. 업계도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현재 3개의 컨소시엄이 미국 동남부에 14기의 원자로를 새로 짓기 위해 허가를 신청해 놓았다고 최근 보도했다.

원자력 발전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여온 유럽의 태도도 바뀌고 있다. 올 초 러시아가 일방적으로 천연가스 공급을 중단한 사건이 결정적이었다. 반원전 정책을 이끌어 온 독일에서조차 우호적인 반응이 나오고 있다. 독일은 애초 원자로 18기를 2020년까지 모두 폐쇄할 예정이었지만 가스 공급 중단 사태 이후 계속 사용해야 한다는 여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북해 유전.가스전을 보유한 산유국인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도 지난해 말 "원전 건설을 재검토할 때가 됐다"며 운을 뗐다. 최근 북해 천연가스가 차츰 고갈되면서 영국의 러시아 가스 의존도는 점차 높아지고 있다. 전력의 78%를 원전에서 생산해 원자력 의존도가 세계 최고인 프랑스도 제3세대 원자로를 새로 건설하기로 했다.

◆ 중국.러시아도 가세=급속한 경제발전을 하고 있는 중국.러시아.인도도 원전 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세르게이 키리옌코 러시아 원자력청장은 1일 "40기의 원자로를 새로 지어 핵에너지 비중을 높여야 한다"며 "이를 위해 2011~2012년부터 매년 2기의 원자로를 지어야 한다"고 밝혔다.

에너지 확보를 국가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는 중국도 동부 해안지방을 중심으로 대규모 원전 건설에 착수했다. 중국은 현재 9기인 원자로를 15년 안에 40기로 늘릴 계획이다. 인도도 2012년까지 17기를 추가 건설해 현재 3%인 원전 의존율을 30%로 크게 늘릴 계획이다.

◆ 건설비 비싼 게 흠=하지만 원자력이 석유의 대안이라는 주장에는 여전히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우선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다. 전력 1㎾의 생산 비용은 천연가스를 사용할 경우 4.1센트인 데 비해 원자력은 6.7센트다. 고유가로 인한 착시현상 때문에 원자력이 싸 보이지만 실상 석탄이나 가스보다 비용이 더 먹힌다는 주장이다. 원전 건설비용도 천문학적이다. 현재 핀란드에서 짓고 있는 1600㎿급 원전의 경우 건설비로 32억 유로가 투입될 예정이다. 같은 용량 화력발전소의 두 배 규모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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