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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제국주의로 가나" 논쟁 확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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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최근 미국에선 이 나라가 '제국'이 돼가고 있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돼 논란이 뜨겁다. 진보적 학자들 사이에선 이미 해묵은 주제이지만 이번엔 공화당의 일부 '골수 보수주의자'들까지 나서 논쟁을 달구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는 10일 "싱크탱크가 주최한 포럼이나 라디오 토크쇼에서 그리고 클리블랜드 공원의 저녁 식사자리에서 미국이 이 나라의 건국자들이 그토록 싫어했던 '제국'이 돼가고 있다는 논란으로 뜨겁다"고 보도했다.

이 같은 논쟁을 활성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공화주의자 위원회'같은 모임도 등장했다. 이 모임의 구성원들은 조지 부시 전 대통령 시절 백악관 보좌관을 했던 보이든 그레이, 이전 사우디아라비아 주재 대사를 지냈던 찰스 프리맨 등 '흠잡을 데 없는 보수주의자'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최근 작성한 성명서 초안에서 "미국은 세계를 힘이 아닌 모범으로써 이끌어가던 전통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며 "미국인들에게 제국의 위험성과 건국 초기의 전통과 가치로 돌아갈 필요성을 교육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시절 고위 관리였고 현재 워싱턴의 경제전략연구소장인 클라이드 프레스토위츠는 최근 '깡패 국가'라는 저서에서 '자신은 아닌 척하지만 모든 이들이 그렇게 느끼는 제국'이라고 비판했으며, 워싱턴에 있는 닉슨센터의 소장 디미트리 심도 '곤경에 처한 미 제국'이란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자유주의적 전통이 강한 케이토(CATO)재단의 외국정책 연구 담당자인 프레블은 "국내에서는 작은 정부이면서 밖에서는 전 세계의 군사 수비대를 고집할 수는 없다"며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이 처한 딜레마를 꼬집었다.

물론 아직까지 대부분의 보수주의자들은 이 같은 비판에 크게 개의치 않는 듯이 보인다. 브루킹스 연구소의 수석 연구위원인 이보 달러는 "케네디와 윌슨은 국제조직을 통해 세계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수호하고자 했으나 신보수주의자들은 미국이 홀로 임무를 수행하기를 원하는 민주주의적 제국주의자들"이라고 설명했다. 심지어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역사학자인 니알 퍼거슨은 최근 한 강연에서 "미국은 제국이며 그러해야 한다"며 "지난 세기 대영제국이 그랬듯이 진보와 번영을 세계에 퍼뜨려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공화주의자들 사이의 이 같은 동요는 아직까지 조용한 편이지만 "어떤 제도를 세우는 것보다 나쁜 놈을 죽이는 것이 민주주의를 만드는 길"이라 여기는 미국의 신보수주의적 민족주의자들이 중요한 도전을 받게 된 것은 확실해 보인다.

윤혜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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